COLUMN
[공병호의 경영 한 수] 당신도 ‘에너지 뱀파이어’ 인가요?
남 탓 좀 그만하라
언젠가 페이스북을 하다가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선전하고 있는 한 경영자(김강모 CEO)의 입 바른 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그 분 이야기는 한 마디로 불평이나 불만을 좀 그만하라는 주문이었다.
“흙수저, 헬조선, 열정페이 타령하는 사람 치고 일요일에 자기만의 꿈을 찾아 일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남 탓, 주변 환경 탓을 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그마한 수저가 아니라 집 전체가 흙인 곳에서, 수도도 없는 집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살았고, 내 미래는 내가 개척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한다.”
이 경영자는 성공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말을 한다고 핀잔을 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울림이 있었다.
평소 강연장에서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따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불쑥 던지곤 한다.
“여러분,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다가는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가져본 경험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런 경험을 자주 하는 편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다들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제법 긴 시간동안 침묵이 흐른다. 그 다음에 나오는 반응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렇다’는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는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세상의 진리에 절대적인 답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다소 조심스럽지만 삶의 지혜를 하나하나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타인의 에너지 빼앗는 불행 전염자들
지금 세대의 눈으로 보면 현재는 힘들고 과거 어떤 세대는 편안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생존을 향한 힘겨운 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일은 오십보백보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부모로부터 큰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한 가족을 이루고 이들을 세파로부터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울 수 없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떤 사람이 처한 세대를 두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필자의 부모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을 어둡게 보도록 가르쳐 주시지 않았던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게 됐다. 주변에도 늘 세상을 어둡게 보는 친구들이 있다. 불평불만에 익숙한 사람은 우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호감을 가질 수 없다. 듣는 사람에게 불행이 전염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일, 긍정적으로 보는 일도 모두 어디에 주목하는 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밝고 맑은 면에 주목해야 하고 그런 점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입에서 일체의 불평이나 불만이 가시도록 하라. 설령 그런 것들이 있다면 가능한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 가는 원재료 정도로 활용하면 될 것이다.
항상 타인에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항상 타인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는 사람도 있다. ‘에너지 뱀파이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된다. 미팅을 할 때나 SNS를 통해 허구한 날 부정적인 이야기를 널리 널리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귀한 밥을 먹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활동에 대해서는 사람에게 칭찬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덕담도 전해줘야 한다. 누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칭찬이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돕는 일이겠는가? 절대로 주변에 어둠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판적인 이야기, 비꼬는 이야기, 부정적인 이야기 등은 말이나 글로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작은 일도 소홀하지 않으면 행운으로
필자는 어떤 강연을 들을 때면 가능한 앞자리에 앉는다. 들을 때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듣는다. 작은 일도 소홀히 다루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연을 듣는다는 것은 그 강연에 관한 한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기회를 갖는 것을 뜻한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세상에는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사소한 일은 없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큰 부자가 되는 데는 운이 따라 줘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갖추는 데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투입하는 것에 비례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예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참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어떤 일을 할 수 있지만 폭발적으로 밀어붙이는 시기는 인생의 일정 시기를 벗어나면 쉽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20대에서부터 40대까지 직업인으로서 토대를 만들어 가는 시기에는 어떤 일이라도 무진장 열심히 해야 한다.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열심히 해야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길이 열리고 실력이 쌓인다.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위험한 생각은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매사를 대하면 주어진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더욱이 새로운 일을 찾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새벽에 동이 터오듯 인생의 기회를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대체로 옳다고 믿는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의심해 보고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갖도록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받은 만큼 일하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 담긴 역설은 새로운 일을 찾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다.
긍정적으로 자신 믿어야 기회 생겨… 도전하라!
무엇이든 자꾸 해봐야 기회라는 것이 생겨난다. 기회라는 것은 완전한 모습으로는 절대 다가오지 않는다. 엉성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실천해보는 사람들만이 기회를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기회라고 생각해서 시도해 봤는데 기대한 결실을 얻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손실일 수도 있고 아쉬움을 남길 수 있지만 도전해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경험 목록에 하나가 추가된 것을 뜻한다. 시야를 확장해보면 이런 시도가 앞으로 어떤 기회에 자신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삶이란 무수히 많은 점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가는 작업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연결된 점들이 또 다른 점들과 어떻게 조합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사실 새로운 도전일수록 박수치면서 환영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동안 이런 저런 시도를 할 때마다 늘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은 대체로 무난한 길을 선택하고 그것에 박수를 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을 제대로 해 볼 수 없을 것이다.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하겠지만 도전해 볼만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이와 같은 설렘과 순수함을 갖는 것이 훌륭한 삶의 자세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항상 자신에게 묻는다. ‘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라고 말이다.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면 낙담하거나 체념할 때도 있다. 오랫동안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하게 계속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된다. 그리고 역경이나 고난에 처했을 때도 나름대로 철학이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된다. 훗날 여러분이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잘 나가는 시절만 있었다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사람은 이따금 바닥을 칠 때도 있어야 하고 그곳을 헤쳐 나온 경험에서 인생의 나이테가 더 깊어지게 된다. 인생의 푯대를 높이 세우고 매순간 진하게 살아볼 만한 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