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공병호의 경영 한 수] 첫인상으로 상대 판단하면 내 손해
짧은 만남이든 긴 만남이든 만남은 사람에게 어떠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그동안 만났던 여러 사람들을 잠시 생각해 보라. 특별하게 좋은 인상이나 나쁜 인상이 남아 있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상은 좀처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12년간 일본 특파원을 지냈던 <중앙일보>의 김현기 기자. 그가 만났던 7인의 일본 총리들에 대한 기억담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이 아소 다로(麻生太郞) 수상이다. 2005년 12월 무렵, 그는 인터뷰를 위해 장관 집무실에서 아소 다로 외상을 만났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인터뷰 말미에 “오늘 (교과서, 독도 문제 등) 공격적이고 자극적 주제의 질문만 하게 돼 미안하다”고 예의를 갖추자마자 아소 다로 외상에게서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당신네(한국인)들은 원래 그런 국민 아니요?”라고 비꼬는 말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김 기자는 ‘이 양반이 평소에 한국인을 경멸하는 속내를 갖고 있었구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선입견을 없애려 노력해도 있을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아소 다로 외상이 인터뷰 내내 다소 언짢은 기분이었다 하더라도 속내를 숨기고 ‘수고 많았습니다’ 정도로 넘어갔으면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손실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기록으로써도 오랫동안 남게 되었다.
위 에피소드를 통해서 나는 몇 가지 생각할 소재를 찾아냈다. 하나는 우리가 맺는 다양한 인간관계는 단순한 접촉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은 어떤 모습으로든 인상이나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이라 하더라도 ‘한 인간으로서 괜찮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쑥 던진 한 마디나 무심코 한 행동이 오랫동안 나쁜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언어 습관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는 불필요한 오해를 심어줄 수 있다.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 가운데 특별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업무 추진 능력이나 인간관계에서나 별반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용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 사람은 이런 방식으로 이용하면 어떨까?”라는 표현을 무심코 내뱉는다. 자신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즐겨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이 반복되다 보면 듣는 사람은 ‘저 분은 사람을 모두 이용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다른 하나는 편견과 선입견에 관한 사실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은 흔히 ‘범주적 사고’라 불린다. 어떤 인물이나 현상 그리고 사안에 대해 일일이 생각하기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정한 범주 혹은 분류를 둔다. 범주적 사고는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게 되면 이미 갖고 있는 범주 안에 집어넣고 해석해 버리는 경향을 말한다. 이는 두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절약하고 불확실성을 줄여 준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어떤 사람이다’ 혹은 ‘저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좋다 혹은 나쁘다’와 같은 것들이 모두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선입견은 닫힌 사고를 유도하고 이에 따라 잘못된 행동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 이따금 철이 지난 이데올로기 등에 사로잡혀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도 선입견이나 편견을 고집한다.
일본의 저술가인 시라토리 하루히코 씨는 선입견이나 편견의 문제를 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그는 자칫 ‘개념’이 선입견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개념에 휘둘리지 마라’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주변에서 목격하는 현상 가운데 하나는 생각 속에 개념을 잔뜩 모아서 그 무게에 눌려 버둥거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가 드는 예를 살펴보자.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형적인 예다. 사람들은 끝없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에 집착할수록 자신이 불행하다고 굳게 믿는 꼴이 된다. 부자냐 가난뱅이냐 하는 것도 묵중한 개념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젊음과 늙음, 아름다움과 추함, 성공과 실패,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 어엿한 어른, 가치매김과 관련된 대부분의 개념이 우리의 삶을 괴롭힌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열린 사고를 갖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가능한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닫힌 사고나 선입견은 그냥 개인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조직의 성과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직에서 상사는 부하직원을 바라볼 때 범주적 사고나 선입견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근거해서 동료나 부하들의 업무 태도나 가치관, 성향 등을 토대로 ‘저 친구는 안 돼’ 혹은 ‘저 친구는 돼’ 등과 같은 판단을 일찍부터 내려버릴 수 있다. 이를 두고 인그룹(나와 공통의 코드를 가진 집단)과 아웃그룹(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집단)으로 나누어 버리곤 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어떤 상사는 인그룹과 아웃그룹으로 부하를 판단하는데 불과 5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상사의 섣부른 범주화가 이루어지면 조직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필패 신드롬’이다. 이런 현상을 최초로 가설화한 스위스 IMD 교수인 장 프랑수아 만조니와 장 루이 바루스는 필패 신드롬은 성과가 저조하다고 생각되는 직원들에 대해 관리자가 꼼꼼하게 관리할수록 그 직원들의 성과가 계속 악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필패 신드롬에 따르면 관리자들은 싹수가 보이는 인그룹과 눈 밖에 난 아웃그룹을 대할 때 아주 다른 태도를 보이곤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부하들은 그렇게 빨리 판단해 버릴 수 있을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례들은 자주 일어난다. 인그룹 구성원들에게는 최대한 많은 자율권 주고 무한한 신뢰를 제공하지만 아웃그룹 사람들에게는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간섭하고 트집을 잡고 통제하게 된다. 이는 인그룹에 대해서는 무한한 호의를 그리고 아웃그룹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자기 고집이 강한 상사일수록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거의 확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조정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게 된다.
아웃그룹으로 낙인찍힌 직원들은 상사의 감시와 통제가 계속되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어떤 부하의 성과가 평균보다 떨어질 때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부하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사들은 반드시 체크해 봐야 한다. ‘혹시 내가 필패 신드롬에 빠져서 부하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흥미로운 점은 필패 신드롬이 조직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아버지나 어머니가 있다면 꼭 명심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자식을 키우는 일도 부하를 대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도 저마다 개성과 능력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지만 또 어떤 아이는 실력을 발휘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또한 서로 잘 하는 분야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이때 부모가 취해야 할 태도는 열린 마음이다.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하고, 가능한 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나 미리 ‘저 아이는 안 돼’라는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만남이라도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 나쁜 인상을 남긴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과를 저조하게 만드는 데는 선입견이 크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필패 신드롬과 같은 선입견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직장 생활의 햇수가 늘어날수록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는 상사의 지위에 서게 된다. 자신의 생각이나 언행이 자신의 성과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나 권한의 형식으로 주변 사람들의 성과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글 _ 공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