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비즈니스 칼럼
2024년도 하반기에 접어들어서일까? 요즘 들어 일주일이 굉장히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일은 많고 의욕은 생겨나질 않으니 마음만 바쁘다. 팔에 힘이 하나도 없고 어깨는 어른 몇 명을 업은 듯 무겁다. 이럴 때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는다고 일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럴 때 필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다. 취미 삼아 하는 정원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물조리개에 물을 가득 받아 장미나무와 수국에 흠뻑 물을 준다. 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장미 밑에 잡초가 수북이 자라있다. 잡초를 뽑아내고 진드기 약을 친다. 전정가위를 들고 바깥으로 마구 삐져나온 장미 가지를 자른다. 이렇게 하다 보니 대략 30~40분이 걸렸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개운해진 머리를 재부팅한다. 한 글자도 타이핑하기 힘들었던 싫증이 사라지고 단숨에 몇 페이지를 써내려갈 만큼의 힘을 얻는다.
좋은 취미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행복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370명의 미니아폴리스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원 가꾸기 같은 취미가 도시 주민들의 행복감 증진에 가장 좋은 취미라고 한다. 같은 정원 가꾸기라 해도 장식용 가드닝보다 야채 키우기가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고 혼자 사는 사람에게도 좋은 취미라고 한다. 그러나 취미 즐기기는 공짜가 아니다. 무언가를 생산할 시간을 취미 생활에 쏟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일을 하면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쉬지 않고 일하면 당장은 성과가 높아지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커다란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면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해보겠다. 키아라 켈리(Ciara M. Kelly)라는 경영학자는 달리기, 공예, 암벽등반, 스탠드업 코미디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129명의 일반인을 모집해 7개월간의 연구에 참여시켰다. 그리고 취미생활을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즐기고 있는지, 취미생활에 얼마나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지를 1개월마다 한 번씩 질문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생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믿음, 즉 ‘자기 효능감(self-efficacy)’를 측정했다. 분석을 해보니 보통 수준보다 취미생활에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그리고 자신의 취미를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일수록 자기 효능감(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증가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우리의 상식과 일치하는 결과다.
하지만 여기에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다. 켈리는 각자의 취미가 업무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즉 유사성을 따로 조사했는데, 취미 생활이 자기효능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업무와 유사하지 않은 취미’를 진지하게 즐길 때였다. 반면에 ‘업무와 유사한 취미’를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들의 자기 효능감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는 역효과가 관찰됐다. 예를 들어 직업이 경영자인 사람이 경영서적을 탐독하는 것을 취미로 즐긴다면 독서 생활은 ‘내가 훌륭하게 조직을 경영하고 있다’는 믿음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 격투기 선수가 취미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것, 가수가 악기 연주를 취미로 갖는 경우도 비슷할 것이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취미가 업무와 유사하면 같은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취미와 업무가 서로 다투는 형국이 된다. 이럴 때 취미는 레저 생활이라기보다 업무의 연장일 뿐이다. 수의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에게 반려동물 돌보기는 엄밀히 말해 취미가 아니다. 산업 디자이너가 풍경 수채화를 즐기는 것 역시 취미가 아니다. 과학자라면 암벽 등반이 좋은 취미이고, 경영자라면 그림 그리기가 좋은 취미다. 필자와 같은 자칭 ‘경영 작가’에게는 작은 마당 가꾸기나 워크맨 수리가 제법 훌륭한 취미가 된다. 자신의 업무를 ‘완전히’ 잊어버리도록 해주는 ‘엉뚱한 활동’이야말로 업무의 고됨을 씻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취미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하지 않는 수준에서 리더는 직원들의 취미가 무엇인지도 세심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취미가 없는 직원에게는 좋은 취미를 소개하면 어떨까? 주말에 직무와 관련해 이런 저런 학습 동아리에 참여하는 직원에게는 업무와 무관한 취미를 ‘오히려’ 권장하면 어떨까? 개인 생활에 대한 간섭이라기보다 조직의 장기적 생산성 향상의 일환으로 필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아니, 리더 본인부터 좋은 취미를 갖는 것이 먼저다. 본인이 먼저 경험해야 직원들을 향한 조언에 진정성이 담기는 법이다. 밤에도, 주말에도 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리더야말로 마이크로 매니저일 뿐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어제 도착한 정크 워크맨을 분해해 수리했다. 돋보기를 들여다보며 녹아 붙은 고무벨트를 닦아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지만, 그 덕에 이 글을 빠르게 쓸 수 있었다. 자기 효능감도 1퍼센트쯤 높아지지 않았을까.
글 _ 유정식 / 진행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