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공구인 칼럼] 치과의사의 공구상 추억
나의 막내 삼촌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공구상을 운영하고 계신다. 25년 전 치과대학에 합격한 직후의 나는 삼촌의 권유로 공구상에서 일했었다. 25년이 지난 오늘도 삼촌은 그때처럼 화물차를 몰고 공구를 배달하신다. 그래서 공구를 보면 내 가족과 나의 19살이 떠오른다.
나에게는 공구상을 운영하는 삼촌이 있다. 아버지보다 많이 어린 막내 삼촌인 그는 내게 언제나 따뜻하고 친근한 존재였다. 19살 수능을 치르고 치의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자 나는 삼촌네 공구상에서 아르바이트 해볼 것을 권유 받는다. 내가 합격한 치의대학은 우리 가족의 거주지인 인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새로운 지역에서 대학생활과 자취생활이 기대되었지만 또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삼촌이 공구상에서 함께 일 해보자는 말을 하셨던 것은 그런 나를 위해서였을까? 19살의 난 순둥순둥하고 말 수가 적고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언제나 학생들로 가득 찬 교실에서 말 없이 공부만 했던 나는 모르는 사람과 반갑게 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쩌면 아버지와 삼촌은 집을 떠나기 전의 내가 조금이라도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무언가를 배우길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내가 삼촌 손에 이끌려 공구상에서 물건을 나르고 손님을 맞이하고 배달을 하게 되었다.
처음 삼촌의 공구상에 들어갔을 때의 그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릴 적 기억 속의 문방구와 흡사한 느낌이었다. 다양한 공구들이 가득 있어 눈을 돌릴 때 마다 이색적인 공구들이 내 눈에 들어왔었다. 심지어 고개를 위로 돌려 천장을 봐도 다양한 공구가 가득 매달려 있었다. 공구상 풍경은 신기했다. 삼촌과 숙모의 따뜻한 미소와 시선을 돌리는 모든 곳에서 반짝이는 공구들은 공구상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공구상에서 일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의 의지도 있었다. 치과대학에 합격한 사람의 인생은 어느 정도 그 미래가 정해진 인생을 살게 된다. 치의대생은 예과 2년, 본과 4년, 총 6년 치의학 공부를 한다. 졸업 전 국가고시를 치르고 의사가 된 후 남자라면 공보의나 군의관으로 3년간 복무하고 이후 전공의 수련을 하거나 월급 받는 의사로 일하다 개업을 한다. 대학교 1, 2학년 격인 예과 이후부터는 학업과 수련으로 바빠 다른 곳에 관심 가지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었던 19살의 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추운 겨울 아침 해가 뜨기도 전 삼촌네 공구상으로 출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구상에서 판매하는 공구들은 치과 병원에서 사용되는 공구들과 겹쳐지는 것이 많다. 물론 산업용품과 의료용품은 기준규격이 다르거나 인증처가 다르다. 산업용 공구는 산업현장의 문제점을 고치고 의료용 공구는 사람의 치아를 치료하는데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삼촌네 공구상은 숙모님이 거래처로부터 주문 전화를 받으면 삼촌은 가게와 창고에 있는 공구들을 상자에 싣고 나는 그 상자들을 화물 트럭 짐칸에 놓고 삼촌과 함께 배달을 갔었다. 물건을 주문한 공장에 도착하면 나는 화물칸 공구들을 거래처 직원이 요청한 작업 현장이나 창고에 가져다 놓았었다. 삼촌은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쭈뼛 쭈뼛 서 있는 나를 치과대학에 합격한 조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뿌듯해하시는 삼촌의 얼굴과 처음 보는 거래처 어른들의 따듯한 응원과 덕담이 기억난다.
내가 삼촌네 공구상에서 일했던 기간은 대학 입학 전 2달, 그리고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1달 정도였다. 일하는 기간도 짧고 공구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나는 삼촌의 공구장사에 큰 도움을 드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일한 것에 비해 삼촌께 받은 돈이 많아 삼촌이 나에게 주는 용돈 느낌도 있다. 사실 의욕적으로 일하려고 해도 공구상에서 제대로 일하는 직원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손님들이 찾는 공구에 대한 이름도 모르고 그 공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찾는 공구가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잘 알아야 하고 비슷한 공구라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과 품질도 달라진다. 19살 어린 나이에 삼촌 곁에서 맛 본 장사의 맛은 매콤했다. 치과병원도 공구상처럼 운영 지식이 없으면 안된다. 병원도 적자를 보면 오래 유지하기 어렵다. 공구상이 손님의 취향에 맞는 공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병원도 환자의 환경이나 상황에 맞춰 적절한 치료법을 제공해야 한다.
25년 전의 공구상 사장님들은 항상 인사하고 만나면 담배와 함께 믹스커피 마시는 것이 문화였다. 삼촌도 나를 옆에 끼고 거래처에 방문할 때마다 담배와 함께 믹스커피를 마셨고 나도 믹스커피를 많이 마셨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 날 따뜻한 믹스 커피 한잔은 큰 힘이 된다. 그런데 치과의사로서 나는 공구인들에게 담배와 믹스커피를 줄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담배는 구강건강에 안 좋다.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사람은 치아가 누렇게 변한다. 그것을 깨끗하고 하얀 이로 되돌리기는 숙련된 치과의사라도 상당히 어렵다. 또 많은 공구인들이 시간에 쫓겨 양치질을 거르는 경우가 많다. 하루 3번은 번거로워도 하루에 2번만이라도 이왕 하는 칫솔질 가급적이면 오래 정성껏 하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경우 그 부위를 더욱 세심히 칫솔질해야 오히려 잇몸이 튼튼해지고 치아가 건강해진다.
생각해 보면 나의 첫 사회생활은 공구상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과 사회를 조금이나마 배운 것 같다. 삼촌은 항상 여유롭고 기분 좋게 고객을 응대했다. 배송지연, 제품불량, 반품문제 등 공구상이 갑자기 맞이하는 거래처의 다양한 불만을 삼촌은 슬기롭고 여유롭게 대처하셨다. 조카인 내 눈에 보이는 삼촌네 공구상은 마음이 여유로웠다. 갑자기 가까운 곳에 대형 경쟁업체가 나타나도 삼촌은 단골 고객 마음을 얻어 매출을 지키고 찾아온 위기를 극복하셨다. 병원을 운영하는 나도 과거 삼촌처럼 환자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 한다. 물론 엉뚱한 직원을 고용하고 까칠한 환자를 맞이하면 머리가 아파질 때가 있다. 그래도 그럴 때 마다 삼촌네 공구상이 고객을 보며 짓는 미소를 생각한다. 공구상을 찾는 고객도 치과병원 찾는 환자도 어차피 매한가지. 항상 마음 넓게 포근하게 사람을 응대하는 공구인처럼 나도 그렇게 행동한다. 마지막으로 공구인들의 치아를 걱정하는 말을 하고 싶다. 사업이 바빠 정기적인 치과 방문이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1년에 2번은 치과에 방문해 정기적으로 검진과 스케일링 하시길 권유한다. 치아가 건강해야 다양한 음식을 오래 씹을 수 있다. 구강 건강이 신체 건강과 직결되는 이유다. 빨리 치료해야 비용도 적게 든다. 모든 공구인의 치아가 건강했으면 좋겠다.
글 _ 박정우(부평 센트럴 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