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경영 칼럼] 횡령을 막는 법
최근 떠들썩했던 기업의 자금 횡령 사건들.
이와 같은 일들은 왜 일어나며,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힌트는 소통 방식이다.
항공기 및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모 회사는 서로 다른 지역에 3개의 공장을 운영 중이었는데, 대규모 계약 2건을 따내지 못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3개 중 두 곳의 노동자 임금을 15퍼센트 삭감하기로 했다. 허나 나머지 하나의 공장은 다른 곳보다 중요한 제조시설이었는지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임금 삭감 조치가 내려진 공장과 임금을 유지키로 한 공장의 차이를 관찰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한 심리학자 제럴드 그린버그는 어떤 상황에서 회사 물건을 훔치는 건수가 증가할지 조사하기로 했다. 그는 회사 경영진을 설득하여 직원들에게 임금 삭감의 배경과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달리 하기로 했다.
•임금 삭감될 A공장 : 사장이 직접 사과하고 임금 삭감의 불가피함을 상세히 설명하고 고통 분담을 이해해 달라고 90분에 걸쳐 호소함
•임금 삭감될 B공장 : 사장이 아니라 그 밑의 부사장이 “앞으로 15퍼센트의 임금 삭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알라”는 식으로 15분 동안 성의 없이 설명함
•임금 유지될 C공장 : 임금이 그대로 유지되니 설명이 필요 없음
임금을 삭감하기 전의 직원 절도율은 세 공장 모두 평균 3퍼센트로 비슷했는데, 이렇게 설명 방식과 성의를 달리하고 나서 A공장과 B공장의 절도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선 A, B 모두 직원 절도율이 급상승했다. 사실 이런 상승은 삭감된 임금을 회사 물건으로 벌충하려는 심리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A공장과 B공장의 절도율 차이는 확연히 달랐다. 사장으로부터 성의 있는 해명을 들은 A공장의 절도율은 평균 4.7퍼센트로 증가했으나, 부사장의 하나마나하고 강압적 통보를 받은 B공장의 절도율은 평균 8퍼센트로 급상승했다. 임금 삭감 조치가 내려지지 않은 C공장은 예전과 동일하게 3퍼센트를 유지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그린버그는 직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충분한 해명을 듣지 못한 직원들은 임금의 불평등에 대해 아주 강한 불만을 나타냈고, 상세한 설명을 들은 직원들은 임금 삭감 조치가 취해지고 나서도 급여의 불평등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차이는 경영진으로부터 ‘어떻게 취급 받느냐’에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첫 직장생활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초에 걸리고 말았다. 내가 다니던 자동차 회사가 부도를 맞았던 것이다. 모 그룹사가 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고 의도적으로 부도를 유도했다느니 하며 말이 참 많았던 시기였다. IMF 위기까지 겹쳐 힘들어진 회사는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부서별로 1~2명씩 내보낼 사람을 적어내라는 하명이 떨어졌다. 다행히 나는 부서의 막내라서 구조조정의 화살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내 사수는 일주일 후 짐을 싸야 했다. 회사는 직원들 월급을 현금으로 직접 주면서 채권단 눈치를 살폈다. 십원 짜리까지 알뜰하게 계산되어 누런 봉투에 담긴 월급을 받아본 것은(그리고 30%가 삭감된 월급을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회사가 어려운 것은 알겠으나 좀 억울했다. 다른 회사에 취업한 대학 동기들은 몇백 퍼센트의 보너스를 받았다고 자랑하는데, 얼마 안 되는 월급도 차감돼야 하다니! 속으로 분한 마음을 삼키는데 복사기 옆에 쌓아둔 A4용지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별 필요도 없는 A4용지 몇 묶음을 몰래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다. 무언가 부당하게 대우 받았을 때 방어적 심리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는 하나 돌이켜 보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고 엄밀히 말해 ‘소확횡(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었다.
절도보다 극적이진 않더라도 일부러 성과를 저하시키는 행동도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의사소통의 산물이다. 1997년 후반에 씨티뱅크는 비용 절감과 혁신을 목적으로 9만 명의 직원 중 9천 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알리면서도 누가 대상인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 씨티뱅크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직원들의 불안감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이야기하지도 않았으며 결국 직원들에게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직원들의 감정은 고갈됐고 성과 창출 의지는 저하됐다. 그리고 실제로도 성과가 떨어지고 말았다.
씨티뱅크의 패착은 직원들의 이런 감정적 고갈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조지 뱅크스는 CWB가 감정적 고갈 상태가 조직과 업무에 헌신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절도와 같은 비윤리적 행동을 자극한다고 말한다. 뱅크스와 그의 동료들은 한국의 모 은행 직원 113명과 그들의 상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였는데, 감정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는 직원일수록 업무에 몰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도, 폭언 등의 비윤리적 행동을 더 많이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감정 고갈이 덜한 직원일수록 조직을 긍정적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 행동과의 관련성이 떨어졌다.
감정이 고갈된 직원이 비윤리적 행동을 저지르는 이유는 그런 행동을 일종의 보상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뱅크스는 말한다. 조직에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범할 때의 쾌감, 소소한 회사 물건을 훔침으로써 자신이 빼앗긴 무언가를 보상 받는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처럼 직원에게 아무 설명 없이 ‘까라면 까라’ 식의 의사소통 태도는 절도의 유혹을 강화시킨다.
같은 해에 씨티뱅크와 완전히 반대로 한 회사가 있었다. 1997년 11월에 리바이스 스트라우스는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씨티뱅크와 달랐던 점은 계획을 발표하는 날에 CEO 로버트 하스가 왜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지 설명함으로써 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누가 해고 대상이고 각자에게 얼마의 위로금이 지급될 예정인지 등을 상세히 알림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계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직원들의 심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반영한 세심한 조치들, 이것이 정리해고 규모가 매우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가 직원들의 동요와 생산성 저하를 최소화하면서 인력 감축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비단 임금 삭감이나 인력 구조조정과 같은 중대한 조치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직원들로부터 협조를 구해야 하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사항에 대해 충분하고 성의 있는 설명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CEO는 임원에게, 임원은 팀장에게, 팀장은 팀원에게 통보하면 된다는 하향식 의사소통이 여전하다. 이런 의사소통 방식은 모래 속에 얼굴을 파묻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안전하다고 느끼는 타조의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
부당하게 대우함으로써 직원들의 분노를 사면 절도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비용이 크게 증가한다. 업무를 게을리 하거니와, 문제가 발생해도 나 몰라라 하거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내놓지 않는다. 이런 눈에 띄지 않는 비용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면 더 크게 반발할 거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직원의 입장에서 상당히 모욕적이다. 직원들을 ‘자기만 알고 돈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은근히 가정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외집단(out-group)이 아니다. 그들을 동료로 생각한다면 힘든 조치일수록 진정성이 우러난 해명과 친절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직원들은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매우 중요시한다. 직원들이 회사 물건을 훔치는 이유도 제대로 자신들의 상황과 감정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모품을 집으로 가져가는 절취는 옳지 않은 짓이고 정도가 심하면 범죄에 해당한다. 직원 절도율이 높아진다면 직원들을 인성을 탓하기 이전에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_ 유정식 / 진행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