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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경제 칼럼]이순신의 위기 속 리더쉽

 

이순신에게 배우는 위기관리 리더십

 

우리민족은 반만년 역사 속에서 숱한 외세의 침략과 무수한 위기를 이겨내 왔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조국을 수호하고 국민을 지켜낸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살펴보자.

 

 

피해 최소, 공격은 극대화… 위기 훈련의 힘


1592년 임진왜란이 벌어질 즈음 조선은 연산군의 폭정과 중종, 명종 대를 거치며 네 차례의 사화를 겪는 등 크나큰 국가적 위기 속에 있었다. 국력을 키우기보다는 붕당간의 당파싸움으로 수많은 인재들이 희생되었고, 백성들의 삶은 이미 도탄에 빠져 있었다. 당시 이이 등 현자들은 국가의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자는 주장을 펼쳤으나, 가뜩이나 어려운 정국에 군사력을 키우자는 의견은 묵살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가적인 영웅 이순신이 등장한다. 그는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누구보다도 전쟁을 대비하는 기본적인 군인의 본분에 충실했다. 부임 직후 전선과 무기를 정비하였고, 왜군이 선진화된 무기로 적과 직접 몸으로 맞붙어서 싸우는 전투에 능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포격전’을 비밀병기로 준비했다. 특히 파도로 흔들리는 전선 위의 포사격 훈련에 중점을 두고 수군을 강하게 조련시켰으며,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유리하고 불리한 부분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조선 수군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했다. 또한 기동력과 월등한 무기로 무장한 백병전에 능한 일본군이었기 때문에 지형의 분석에 근거한 유인작전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공격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승전보를 이어갔다.


12척 함대로 대승 거둔 ‘명량해전’


어떠한 위기가 들이닥쳐도 문제될 것이 없던 이순신. 그에게 가장 큰 위기가 있었다면 아마도 전장에서의 패배가 아닌 전시 도중 당시 국왕이었던 선조의 파면 결정이었을 것이다. ‘백의종군(白衣從軍)’으로도 잘 알려진 당시는 전시상황이라는 점에서 국운이 걸린 중대한 순간이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 절명한 위기의 상황 속에서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물며 억울한 누명으로 자신의 모든 직책을 박탈당하고 전시와 같은 풍전등화의 상황에서였을까. 조선 조정은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일본군의 농간에 속아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해임했고 그 자리에 원균을 임명했다. 하지만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왜군에 대패하였고 그 결과 이순신이 어렵게 키워 놓은 조선의 수군은 궤멸 직전에 이르게 된다. 이에 조정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했고 그는 겨우 12척의 함대로 명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니, 그 전투가 바로 ‘명량대첩’이다. 어떻게 보면 국왕 선조에 대한 울분을 조국을 구하는데 쏟아낸 결과가 12(척) : 133(척)의 대승으로 표출된 것이다.

 

 

부하를 우선하는 ‘감화의 리더십’

 

위기 속에 더욱 빛났던 이순신의 성과는 이처럼 철저한 준비의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준비한 자만이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있듯이 언젠가 들이닥칠 미래에 대비하는 개인적인 노력은 리더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자질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성과를 더욱 위대하게 빛내주었던 것은 이순신을 믿고 따랐던 부하들의 팔로워십(followership)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가 전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유능한 부장들을 거느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특히나 이순신의 성과 뒤에는 묵묵히 지휘관을 따라 최선을 다했던 조연들이 역할이 컸다. 지휘관을 향한 진심어린 충정과 진정성 있는 팔로워십이 ‘이순신’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순신은 무엇보다도 사람을 다루는 것에 능통했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전문성과 기술을 지닌 인재를 발탁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역량을 백 퍼센트 이상 발휘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또한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포상이 주어지게끔 끈질기다 싶을 정도로 조정에 이를 건의했다.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계(狀啓)에는 유독 그의 부하들에 대한 칭찬과 포상을 추천하는 내용이 많았음을 통해 그의 인간됨과 리더십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 아래에서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역량을 발휘하고 뽐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신무기 개발에 탁월한 노하우가 있었던 정궐, 화약전문가 이봉수, 남해연안 물길전문가 어영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가 돌아와 일본군 실상의 정보를 제공했던 정보전문가 제만춘 등이 있었다. 
특히 당시의 조선은 신분차별이 심했던 사회였기에 대장장이든 노비든 귀천을 가리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한 것은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혁신적인 사고였다. 말단부하에 이르기까지 자그마한 공이 있는 모든 부하들의 이름을 임금께 보내는 장계에 직접 올렸던 것처럼 자신을 돋보이기 보다는 모든 공을 자신을 위해 싸워준 아래 사람들에게 돌리고 그렇게 그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개인들의 역량을 승리로 연결시켰던 탁월한 감화력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잘못은 엄하게, 목표는 저절로 따르게 하라

 

그렇다고 이순신이 마냥 유하기만 했던 지휘관은 아니었다. 잘못을 저지른 부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엄하게 책임을 물었으며, 특히 군량 횡령, 군 복무 이탈 등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을 통해 군 기강 확립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다만 그 중심에는 ‘군율’이라는 분명한 원칙이 있었다. 무엇보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부하를 대했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부하들이 저절로 따르게끔 했던 ‘감화의 리더십’이 위대한 성과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작정 질책하고 꾸짖는 리더십 또는 무조건 잘해주기만 하는 조직관리로는 부하들의 덕망과 존경을 받을 수 없다. 특히 조직구성원들을 무조건 잘해주기만 할 경우 무난하게 조직을 이끌 수는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기와 관련이 없는 평상시에나 가능한 일이다. 위기가 닥치게 되면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그로 인해 사람들 간의 갈등부터 표출되는 것이 조직의 기본원리이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위기의 상황 속에서 조직원들의 응집과 단결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진정성어린 팔로워십을 이끌어 냈던 감화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이처럼 위기라는 것은 언제나 있어 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가까이 2000년 이후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던가. 하지만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뛰어난 지도자들의 진정성 있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가 주는 감동과 같이 우리 사회의 리더들의 희생적이고 감동어린 리더십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위기들을 극복하고 한층 더 굳건해질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글 _ 윤정원 / 진행 _ 장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