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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경제 칼럼 - 상품에 애칭을 달자(장문정)

 

상품언어전문가 장문정 소장

 

애칭 달면 판매에 날개 달린다

 

상품명보다 애칭을 쓰면 고객에게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제 상품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제품 네이밍을 넘어 지금은 애칭 전성시대다. 애칭이 대세다. 

 

 

베니하루카 고구마가 뭐지? 


먼저 퀴즈입니다. 베니하루카 고구마를 드셔보셨나요? 대부분 이 질문을 던지면 못 먹어봤다고 답합니다. 한국 토종 고구마는 진율미, 풍원미 같은 건데 베니하루카는 일본산 고구마 품종입니다. 맛있을까요? 보통 수박, 복숭아가 11브릭스(Brix. 당도 측정 단위)만 나와도 매우 달아서 잘 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베니하루카는 수확 후 2,3개월이 지나면 당도가 무려 27브릭스가 나오는 기존의 그 어떤 고구마도 따라오지 못하는 독보적인 단맛을 내는 고구마입니다.
노랗고 촉촉한 것이 먹어본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달다고 감탄을 합니다. 외관도 울퉁불퉁하지 않고 갸름하면서 매끈합니다. 빛깔 또한 매력적이죠. 말만 들어도 근사하지요? 먹어 보고 싶어 당장 검색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키울 수 없는 절대 반입 불가 품종입니다. 이 역대급 단맛의 고구마를 왜 수입 못할까요? 개미바구미 같은 금지해충이 함께 서식한다는 이유로 그렇습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명칭 꿀고구마!


여기까지만 들었을 때는 슬프고 안타까우실 겁니다. 하지만 미식의 민족,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단맛을 놓칠 리 없지요. 몰래 들여와 현재 국내 고구마 전체 재배면적의 40%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더구나 일부 시·군 농업기술센터는 조직배양해서 적극적으로 보급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면 분명 당신이 먹어봤을 텐데요? 맞습니다. 이미 지금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베니하루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십시오. 연관 검색어로 바로 ‘꿀고구마’가 뜹니다. 
어린 시절엔 퍽퍽한 밤고구마를 즐기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촉촉하고 노란 꿀고구마를 즐기고 계시죠?  바로 우리가 늘 ‘꿀고구마’라고 애칭으로 부르는 것의 본래 네이밍이 베니하루카 입니다. 애칭이 본칭을 앞선 겁니다.

 

본래 이름보다 중요한 애칭 별칭


상품 네이밍(naming)이 중요하다보니 기업이나 개인이나 상품을 놓고 모두가 ‘광명(光明)’을 밝히는 ‘광명(光名)’을 찾고 있습니다. 작년 TOOL지에 실렸던 제 칼럼에서도 ‘작명(作名)에 상품 명줄이 달렸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이름을 짓는데 문제가 2가지 있습니다. 첫째, 좋은 이름은 이미 누군가가 다 꿰차고 있습니다. 몇 해 전 미국 LA에 본사를 두고 있는 뱅크오브호프(Bank of Hope)라는 미국 은행을 컨설팅 한 적이 있었는데요. 특허청에 등록된 120만개 금융회사 이름과 중복되지 않는 이름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둘째, 상품 작명은 법칙과 원칙의 적용을 받는 경우가 많아 이미 정해져 출시되어 현장에서 내 맘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해진 것이 바로 네이밍을 넘어 상품에 애칭(petname) 또는 별칭(epithet)을 다는 것입니다.

 

 

국가기관에서도 애칭을 쓰는 시대


상품명보다 애칭을 쓰면 고객에게 한결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애칭은 상품의 모든 속성을 신속하게 대변하며 직관적으로 소비자에게 인식시킵니다. 이제 상품 이름은 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네이밍을 넘어 애칭 전성시대입니다. 애칭이 대세입니다. 
저는 행정안전부의 마케팅 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나라에서 엄선해서 선정한 분야별 전문가가 20명인데 이들을 일컫는 말을 찾다가 함께 일하는 디지털타임스 기자들의 매체명을 따 ‘디따 해결사’라는 애칭을 쓰고 있습니다. 나라에서도 애칭을 쓰는 시대입니다. 디따 기자들과 상권 분석을 위해 취재동행을 을지로로 나가봤습니다. 을지로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한참 뜨는 힙(Hip)한 곳이라고 해서 ‘힙지로’라는 애칭이 더 자주 사용됩니다. 인터넷에 ‘을지로 맛집’ 보다 ‘힙지로 맛집’이라고 쳐 보십시오. 더 많은 맛집이 뜬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애칭이 강합니다. 

 

컵라면 대출과 방판소녀단


애칭으로 통용되는 시대입니다. 공연계에선 뮤지컬, 연극, 콘서트 등을 동일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을 ‘회전문 관객’이라 애칭합니다. “회전문 관람 오신 분은 공연 후 앞쪽으로 모여주시면 선물 드립니다.” 라고 하면 아는 이만 알아듣습니다. 
은행들이 초고속 모바일 신용대출 서비스를 내놓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조회하고 신청하기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 서비스 이름은 염연히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창구에선 ‘컵라면 대출’이라는 애칭을 내세웁니다.
방문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화장품 브랜드 코리아나에 갔을 때 그들을 뭐라고 부를까 고민했습니다. ‘여사님?’ 뭔가 시대에 뒤쳐진 어색한 느낌입니다. ‘사장님?’ 부담스럽습니다. ‘아줌마?’ 말도 안 되죠. 그래서 고민하다가 ‘방판소녀단’ 이라는 애칭으로 불러 드리니까 모두가 정말 즐거워들 했습니다. 

 

무선호출기? 아니죠~ 삐삐!


한국인들도 서양인 못지않게 치즈를 좋아합니다. 한국인 1인당 한 해동안 치즈 섭취량은 3kg이 넘습니다(낙농진흥회 낙농통계연감 2019). 
우리나라 치즈의 첫 역사는 1964년 지정환 신부가 산양 2마리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처음에 한국 사람들은 우유가 걸죽해져 굳어진 것을 상했다며 거부감을 갖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치즈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니까 당연한 겁니다. 그 때 이것은 치즈입니다 라고 학습시키기 보다 ‘우유로 만든 두부’라는 애칭을 써서 반감을 극복했습니다. 
우리가 과거 언제 ‘무선호출기’라고 했나요? ‘삐삐’라고 했죠. 90년대 PCS폰 처음 나왔을 때 LG에서는 계열사 전직원들한테 한 대씩 보급했었습니다. 근데 애칭이 없으니까 PCS라고 잘 불리지도  않았습니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움직이는 사진을 ‘GIF 애니메이션’이라고 정식 이름 말하는 사람 봤나요? 대부분 ‘움짤’이라는 애칭 씁니다. 

 

본칭 아닌 애칭으로 불리는 제품들


와인업계는 와인을 ‘신의 물방울’이라는 애칭을 쓰고 반도체업체는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 애칭합니다. 밥상에서 꼭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산업의 필수라는 비유입니다. ‘제선충’이라는 병명보다 ‘나무의 에이즈’라는 애칭이 더 느낌 옵니다. ‘작은소참진드기’라고 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이 정식명을 두고 ‘살인진드기’라는 애칭을 누군가 처음 한번 썼더니 이제는 살인진드기가 공식 이름인줄 압니다. 모든 뉴스 기사에서 타이틀을 작은소참진드기라고 표현라고 한 경우를 못 봤습니다. 역시 애칭이 본칭을 앞선 겁니다. 
맘스터치 대표 메뉴 ‘싸이버거’는 버거 크기가 입 찢어질 정도로 크다고 ‘입찢버거’라고 부르는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애칭으로 통용되며 사측 홍보도 애칭명을 내세웁니다. 화장품 에스티로더의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를 실제 구매하는 고객은 이 이름보다 ‘갈색병’이라는 애칭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애칭과 상품명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


그래서 요즘은 기업이 정식 상품 이름을 출시하면서 마케팅명(애칭)도 함께 짓습니다. 미국 생활용품 브랜드 존슨앤드존슨은 ‘액티브 키즈 샤이니 샴푸’를 핑크색은 ‘공주샴푸’로 블루색은 ‘용감샴푸’ 라고 부릅니다. 멘톨을 넣어 코를 시원하게 해주는 ‘베이비 수딩 바포 바스’는 ‘감기바스’라 내세웁니다.
추세가 이렇다 보니 아예 상품명 자체를 애칭스럽게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LG하우시스는 층간소음 없애는 두꺼운 바닥재의 이름을 ‘지아소리잠’이라고 지었습니다. 애칭스럽습니다. 농민들에게는 농작물 수확물의 원흉 멧돼지가 골치입니다. 울타리도 소용없고 덫도 소용없습니다. 농자재 전문기업 파인아그로에서 출시한 획기적인 상품이 나왔습니다. 농작물에 뿌리기만 하면 멧돼지가 후각을 자극해서 기피하게 되고 섭취 시 불쾌감을 유발해서 먹지 않게 되는 기피제입니다. 천연소재라서 사람과 작물에 안전하고 토양에 잔류하지도 않고 한번 뿌리면 3달간 유지가 됩니다. 이 제품의 이름은 ‘멧돼지가라’입니다. 애칭과 상품명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마케팅 수업을 하면서 소화기의 애칭을 지어보라 했습니다. 먼저 실제 소방 방재청이 만든 문구인데 ‘큰 불 막는 작은 영웅’이란 문구를 예시로 들었습니다. ‘잠안 자는 24시간 우리집 소방관’부터 다양한 멋진 애칭이 쏟아졌습니다. 
이처럼 이미 정해져 버린 상품 이름은 어쩔 수 없다 생각 마시고 거기에 나만의 멋진 애칭을 달아 보세요. 공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은 그 애칭으로 상품을 판단하고 이해할 겁니다. 당신의 공구상과 당신이 판매하는 공구제품의 애칭은 무엇입니까?

 

 

글 _ 장문정 / 정리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