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비즈니스 말하기 - 작명의 기술
작명의 기술
잘 지은 이름 하나 열 명품 안 부럽다
본죽의 불낙죽은 아니 불(不)에 떨어질 낙(落)을 써서
‘시험에 떨어지지 않는 죽’이란 이름으로 수능 날 무려 2만 그릇을 팔아치웠다.
이처럼 현재는 이름만 잘 지어도 대박을 꿈꿀 수 있는 시대다.
상품 이름에 상품 목숨이 달려 있다
요즘은 한 해에 개명하는 사람이 16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개명 하나로 인생이 달라졌다는 사람도 있고 개명으로 돈도 벌고 결혼도 했다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동일한 논리로 상품의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도 그 상품의 생존줄을 쥐고 있을 정도라 하겠다. 예를 들어 본죽의 불낙죽(불고기 낙지죽)은 아니 불(不)에 떨어질 낙(落)을 써서 ‘시험에 떨어지지 않는 죽’이란 이름으로 이름 마케팅을 하니 수능 날 2만 그릇을 팔아치우는 대박을 냈다. 21세기 지성인들이 죽 한 그릇 먹었다고 떨어질 시험 안 떨어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막상 이렇게 매출액 상승에 기여하는 걸 보면 작명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준다. 그야말로 이름만 잘 지어도 대박 나는 시대다.
작명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동네 설렁탕은 8천원이고 특설렁탕은 9천원이다. 여기서 이름만 살짝 바꾸면 고기 양을 늘리지 않고도 가격은 거의 2배를 받을 수 있다. ‘특’자를 떼고 ‘고기듬뿍’을 붙이면 된다. 실제로 한 설렁탕집은 일반설렁탕은 8천원인데 고기듬뿍설렁탕은 14000원이다. 이름만 바꾸면 상품의 값도 올릴 수 있다.
옛 시절 여의도에 살았었는데 당시 여의도 아파트 이름은 공작아파트, 백조아파트, 장미아파트, 은하아파트 등등이었다. 촌스럽다. 지금 대한민국 대표 건설사의 아파트 작명은 이렇다.
오른쪽 건설사 이름만 놓고 보면 어느 건설사가 좋은 콘크리트 쓰는 좋은 아파트인지 알 길이 없지만 왼쪽 이름만 보면 일단 어떤 아파트인지 금방 그림이 그려진다. 그만큼 작명의 힘은 강하다.
원제목 바꿔 흥행한 영화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한 해에 천 편이 넘는 영화가 개봉된다. 그런데 지난 1년간 개봉했던 영화 이름 가운데 얼마나 기억하나? 개봉 영화의 2%도 기억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기에 영화사들은 홍보에 열을 올린다. 홍보의 중심에는 영화 제목의 비중이 제일 높다. 친한 영화감독이 말했다. 영화 운명을 좌우하는 건 제목이라고. 영화제작자들은 ‘영화제목=관객몰이’로 인식하기에 제목에 목숨을 건다. 앞페이지 표의 왼쪽 영화제목들은 실은 오른쪽이 원제목이다. 이 영화들은 제목 안 바꿨으면 영화 망했을지 모르겠다. 원제목을 바꿔서 오히려 잘 된 경우다.
이름에도 피해야 할 이름이 있다
올해부터 월간TOOL에 칼럼을 쓰기 위해 한국산업공구보감을 한 권 받아 12만7000품목이나 되는 공구들의 네이밍(상품명)을 꼼꼼히 살펴봤다. 솔직히 참으로 개탄스러웠다. 영문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제품의 작명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해진 기준도 원칙도 없으니 마구잡이식 조합을 하기 마련이다. 대개 많이 보는 현상은 이상한 이름을 지어놓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를 쓴다. 반대로 어떤 의미를 정하고 그 의미를 담은 이름을 만들려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해괴하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작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제품 작명 시 피해야 할 이름들의 몇 가지 사례들이다.
1) 다시 묻게 되는 이름
뻔한 말이지만 상품명은 부르기 쉬워야 한다. 사람 이름 중에도 두 번 묻게 되는 이름이 있다. 초면에 “혜진이요”라고 하면 “혜가 ‘여이’세요? ‘아이’세요?” 라고 되묻는다. 혜원인지 해원인지 두 번 묻게 되는 이런 이름은 평생 늘 다시 되묻고 다시 대답하고 살아가야 되니 얼마나 불편할까? 당신이 판매하는 상품도 그렇지 않으신지. 우리가 남의 이름 기억하려 노력을 기울이지 않듯 고객은 당신 상품 이름도 기억하려 애쓰려 하지 않는다.
2) 약어가 들어간 이름
요즘은 기업명에도 약어가 많다. KTX는 아는데 XTM은 뭘까?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이다. 또 JDX는 또 뭘까? 아웃도어 브랜드다. TS샴푸라고 하면 뭐하자는 샴푸인지 선뜻 와 닿기 어렵고 KGB라고 하면 택배서비스인지 소련 스파이 얘긴지 모르겠다. 이처럼 약어로 갈 때 인지도가 약한 경우거나 설명이 부족할 때 보완하는 방법으로 브랜드 로고와 함께 서브네임이나 태그라인을 함께 쓰면 좋다. JDX는 브랜드 밑에 ‘multisports’이라 적는다. 그러니 다양한 종합 아웃도어 브랜드라는 것을 쉽게 알릴 수 있다.
3) 지나치게 긴 이름
법제처에 들어가 보면 법명이 80자가 넘는 게 있다.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제 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의 시행에 따른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의 관리와 처분에 관한 법률’이다. 판사도 못 외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 5조(부정청탁의 금지)에 의한 금지 행위’라면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김영란법이라고 하면 다 안다. 이 법을 다 읊어대는 사람 없듯 길면 어렵다. 길면 안 쓰게 된다. 법관들 모아놓고 마케팅 교육이라도 하고 싶다.
4) 부정적 어감의 이름
서울시 수돗물 이름 ‘아리수’는 틀렸다. 맛의 표현중에 아리다는 말은 ‘혀끝을 찌를 듯이 알알한 느낌이 있다’는 부정적 뜻이며 사전적 의미도 ‘상처나 살갗 따위가 찌르는 듯 아프다, 고통스럽다’라는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수돗물 먹고 아리다? 좋은 이름이 아니다. 부정적 어감의 단어 뿐 아니라 오해하기 쉬운 발음도 바꿔야 한다. 기아자동차 ‘카니발(carnival)’은 미국에서는 ‘식인종(cannibal)’처럼 들린다고 세도나로 바꿨다. SK그룹도 선경그룹에서 바뀐 이름인데 선경(sunkyoung)이 뭔가 젊음(young)이 가라앉았다(sunk)는 느낌이라 바꾸길 잘했다.
이름 못 바꾸면 마케팅명이라도 바꿔라
공구상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공구 제조사야 작명이 중요하겠지만 나는 상품을 판매할 뿐인데 이미 정해진 상품명을 내가 어찌하리? 천만에. 공구 이름이라는 것이 특별할 게 없다. 내가 이름을 임의적으로 부여(마케팅명)하면 된다. 그런 사례들을 소개한다. 위 표 상품들의 이름은 왼쪽처럼 원래 정해진 이름을 판매 현장에서 임의적으로 바꿔서 성공한 경우들이다.
돈 되는 이름은 있다
낱말 하나로 돈을 벌 수 있다. 한 항문외과 원장이 홍보담당 직원을 내 사무실로 보내서 컨설팅을 받고 싶다고 했다. 한국인 수술 1위는 치질 수술이다. 그러면 수술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병원을 섭외하려 할 때 어떤 키워드로 검색할까? 빅데이터를 보면 의외의 검색명이 있는데 바로 “똥꼬에서 피가”였다. 그래서 이 단어에 해시태그를 달게 했고 그랬더니 조회수가 순식간에 확 늘었고 문의도 늘었다고 했다. 지금도 ‘똥꼬에서 피가’를 입력하면 이 병원 블로그가 여기저기서 먼저 뜬다. 결국 이런 한마디 말들로 돈을 번다.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은 ‘돈 되는 이름’를 찾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 멋진 이름 뺏기지 말자.
진행 _ 이대훈 / 글 _ 장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