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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비즈니스 말하기] 고객 불만 잠재우는 눙치기 기술

 

한시간에 200억을 파는 남자 장문정의


고객 불만 잠재우는 눙치기 기술

 

 

 

 

 

하루에도 몇 차례 마주하는 불만 가득한 고객들. 이들의 가시돋힘을 대할 때는 부드러운 응대, 온화한 말투, 풀어서 누그러지게 하는 어휘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켜야 한다. 고객을 말로 에둘러치고 풀어서 누그러뜨리는 기술. 그것이 바로 눙치기 기술이다.

 

불편한 분위기 무장해제시키는 눙치기


눙친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 ‘풀어서 누그러뜨린다’ 또는 ‘에둘러친다’는 뜻이다. 영업현장에서 상대 즉 고객은 늘 우리에게 좋은 말만 던지지 않는다. 불만도 표출하고 여러 뾰쪽한 말들도 던진다. 그럴 때 머뭇거리거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면 결코 안 된다. 오히려 즉시 돌려 치고 풀어서 나, 그리고 고객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좀 더 순화되고 편안함을 주는 말을 써서 날카로워진 상대의 말을 희석시키고 딱딱해진 분위기를 무장 해제시키는 기술이 바로 눙치기 기술이다.   

 

장사꾼 앞에선 망했다는 표현은 금물


말의 방향성은 직선이 아니라 상당히 굴절되어 간다. 또 말은 전달 과정에서 왜곡과 변형에 취약하다. 가령 “예쁘시네요” 라는 진심어린 칭찬이 상대에겐 성적 조롱으로 접수될 수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 앞에서 절대 쓰면 안 되는 표현 하나가 ‘망했다’는 표현일 것이다. 40년 이상 장사를 하신 이모님과 차를 타고 가다 늘 있던 빵집이 옷가게로 바뀐 걸 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전에 있던 빵집이 망했나?”라고 했더니 이모는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막말을 할 수 있냐고 나를 다그치셨다. 장사꾼들 앞에선 망했다라는 표현보다 ‘문을 닫았다’, ‘철수했다’라고 에둘러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눙치기 기술이다.

 

 

언어자폭은 스톱  


눙치기 기술을 쓸 때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하는 것이 ‘언어자폭’이다. 언어자폭이란 나 장문정이 만들어 유행시킨 말인데 ‘자신과 자신의 상품의 결점, 약점, 단점, 치부를 스스로 알아서 드러내는 자살골 같은 자폭성 멘트를 날리는 경우’를 말한다. 운동경기를 하며 자살골을 넣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언어적으로 자살골을 날리는 경우는 매일 듣고 본다.
무한리필 식당에 자랑스럽게 걸어 놓은 ‘음식 남길시 벌금 2천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것보다는 ‘환경 부담금 2천원’이 더 눙친 표현이다. 하지만 그런 정 없는 문구로 손님 놓치는 것보다는 ‘푸짐하고 기분 좋게 맘껏 드세요’로 바꾸고 손님 얻는 게 낫다. 그래도 굳이 잔소리를 쓰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눙치는 문구를 걸어 보자. ‘잔반 남기면 벌금’이 아니라 ‘잔반 남기면 1시간 설거지’라고 걸어 두면 불쾌할 수 있는 문구가 웃고 넘길 수 있는 문장으로 바뀐다. 
내가 자문했던 한 프랜차이즈 주점은 흡연 금지라는 말 대신 ‘99세 이하만 흡연 금지. 백세 어르신부터는 대놓고 피우셔도 재떨이 갖다 드립니다.’라고 재밌게 써 놓게 해서 고객들 웃음을 유발시키고 있다. 


반드시 버려야 할 “비록, ~지만”


언어 자폭 중에 특히 콕 짚고 넘어가고 싶은 표현이 있다. 바로 “비록, ~지만”이란 표현이다. 이런 어투는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상담, 협상, 비즈니스 대화에서 영원히 지워서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려 보내 버려야 한다. 이 말은 지구 멸망까지 쓰지 말아야 한다. 
“제가 비록 잘은 모르지만…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이 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저도 배우고 공부하는 입장이지만….” 이런 말투는 겸손이 아니라 미련이다. 상대에게 불안감만 어필한다.
손님이 공구에 대해 묻고 있는데 “제가 그건 잘 사용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건 별로 취급을 안 하는 거라 잘 모르지만…” 이라고 한다면 맘 놓고 구입할 고객이 있을까? 시작부터 코 빠뜨리는 얘기는 하지 말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공구를 사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업장에서 특히 새로 들어온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런 식으로 응대하지 않도록 꼭 주의가 필요하다.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 면접에 사외 면접관으로 갔던 적이 있다. 정말 언어 자폭이 난무했다. “제가 아직 어려지만…” “제가 비록 나이는 많지만…” 그런 말들보다는 “젊기 때문에 열정이 넘칩니다.” 또는 “나이는 경험과 연륜과 노련미를 말합니다.”라고 눙치는 기술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눙치기 기술에서 중요한 조사 사용


문장에서 조사(助詞)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간결한 문장을 위해 조사를 빼는 것도 방법이지만 눙치기 기술에서 조사는 아주 중요하다. 조사 하나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을 먹다말고 사장님이 말하는 “박실장은 밥을 잘 먹어”와 “박실장은 밥은 잘 먹어”는 정반대의 의미다. 전자는 칭찬이지만 후자는 그거 빼고는 나머지는 다 부족하고 못났다는 말이다. 우리 뭐 먹을까? 라고 했을 때 “햄버거나 먹자”와 “햄버거를 먹자”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전자의 조사는 햄버거는 꿩 대신 닭이요, 몹쓸 음식인데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4시간 거리 VS 4시간 밖에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 모시고 중국 장가계에 가려는데 비행기로 얼마나 걸려요?” 이 질문에 “4시간 거리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4시간 ‘밖에’ 안 걸립니다.” 라고 조사를 살짝 비틀어 말하는 것은 느낌이 아주 다르게 들린다. 거기에 눙치기를 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4시간밖에 안 걸립니다. 도심에서 차가 막혀도 그 시간 걸릴 수 있잖아요. 전에 인천에서 잠실까지 가는데 차가 막혀 4시간이나 걸리더군요. 그 시간을 장가계행 비행기에 들이면 영화 아바타의 촬영장소인 끝내주는 별천지가 펼쳐지는 겁니다. 가시는 거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눈 깜짝할 새예요.” 
4시간이나 걸려요와 4시간밖에 안 걸려요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조사에서 실수하지 말자. 

 

비아그라도 행복하게 팔그라


평소에 편안한 언어로 순화시키고 민망한 표현은 우회해서 표현하는 훈련을 한다면 호랑이 같은 고객도 달래서 얼마든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케이블 방송에서 절대 팔 수 없는 품목이 있는데 그 가운데 성(性)관련 상품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은 판매에 전혀 상관이 없다. CJmall에서 인터넷 생방송을 하는데 한번은 품목이 콘돔이고 하필 미스인 어린 VJ가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게스트로 나온 콘돔회사 사장님이 얼마나 진행을 잘하는지 내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방송에서 비아그라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VJ가 “그건 뭐할 때 먹는 거예요?”라며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당시는 비아그라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생소하긴 할 때였다. 순간 카메라 감독, PD, MD 모두가 숨을 죽였다. 콘돔사장님은 빙글빙글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해지고 싶을 때 드시는 거예요”라고 눙을 쳤다. 참으로 멋진 대답이었다.

 

분필은 떨어진 게 아니라 붙은 것


한 번은 공무원시험 강사가 수업중이었다. 당장 내일 모레가 시험이라 수험생들은 혹시나 시험에 떨어질까 다들 극도로 예민한 상태. 한참 열강을 하다가 분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상황에서 발휘한 강사의 눙치기 기술. “지금 이것은 분필이 바닥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분필이 바닥에 붙은 겁니다.”  
같은 크기의 TV를 말솜씨로 더 커보이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당신은 가전매장 50인치 TV앞에 서 있고 장문정은 그 옆에서 당신에게 TV를 소개한다고 해 보자. 당신에겐 아무래도 TV가 작아 보인다. 그런 당신에게 내가 눙을 친다. “고객님이 50평에 사신다 해도 거실 실평수는 15평이 안 됩니다. 지금 여기 매장은 천 평입니다. 운동장같은 곳에 TV가 덩그렇게 놓여 있으니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죠. 고객님 집에 갖다 놓으면 15평 공간에 이 TV 크기는 상대적으로 완전 커 보입니다. 우리가 고객님들 댁에 설치를 나가보면 열이면 열 ‘아니, 이렇게 컸어?’ 하고 다들 깜짝 놀라십니다.” 

 

콤플렉스를 건강 이슈로 돌리기


가장 좋은 싸움은 말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키높이 구두를 찾는 키 작은 손님이 예쁜 아이템을 발견했는데 안타깝게도 키높이는 아니라 망설인다. 신발 가게 점원이 “그럼 키높이 깔창 하나 까세요” 이러면 그 손님 얼마나 민망할까? 대신 “요즘 키가 크신 분들도 폭신폭신한 고무패드 하나쯤은 받치죠. 온 몸의 체중이 받는 충격은 발로 오기 때문에 쿠션받침은 충격 분산 효과도 있어서 건강 면에서도 좋아요.”라고 키라는 콤플렉스를 건강이라는 이슈로 돌려서 판매할 수 있다. 
일요일 모처럼 가족과 외식을 나왔더니 식당 문에 떡 하니 ‘주일은 쉽니다’라고 붙어 있다. 가뜩이나 헛걸음친 것도 신경질 나는데 무교거나 타종교인이거나 그 종교를 싫어하는 사람이 보면 기분이 어떨까? 영업 현장에서 절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 2가지는 종교와 정치 얘기다. 그런데 내 가게 간판에 ‘나 교회 다녀요, 나 절에 다녀요’라고 광고해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것보다는 “일요일은 더 신선한 음식 만들어 드리고자 전국 지역특산물 사러 직접 내려가는 날입니다.” 라고 우회적 표현을 써 놓는 것이 낫다. 

 

언어의 우회로는 눙치기


눙치기는 아부와는 다르다. 아부만 날리다보면 돈 버는데 급급해서 무슨 말이든 해 주는 장사꾼밖에 안 된다. 더구나 요즘 수준의 똑똑한 고객은 영혼 없는 아부와 진심어린 칭찬쯤은 단박에 구별해 낸다. 눙치기에도 분명 논리가 앞서야 상대의 기분도 합리적으로 풀어진다. 우선 스스로 단점을 공개하는 바보 행위인 언어자폭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니 언어의 자살골들은 걷어내야 하고 고객의 가시돋힘을 부드러운 응대, 온화한 말투, 풀어서 누그러지게 하는 어휘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 

파리는 강한 식초보다 달콤한 꿀로 잡힌다. 도로도 막히면 우회도로가 필요하듯 언어에서도 에둘러치는 기술이 때론 요구된다. 그런 유연함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유연함을 길러야 한다. 언어에 눙치는 솜씨를 담아 보자.
 

 진행 _ 이대훈 / 글 _ 장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