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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구인 칼럼] 공구인, 참고 또 참아라

 

공구상 일을 하는 것은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업이라기보다 온갖 종류의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업이라 하겠다. 그만큼 사람 대하는 것이 업무 스트레스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공구인이라면 참는 것만이 자신의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다.

 

 

공구인(忍), 참고 또 참아라! 

 

 

한 달 만에 그만둔다고?

 

군대에서 운전병 출신이라 그래도 스스로 공구는 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회에서 첫 직장이었던 공구상에서의 내 모습은 탭과 엔드밀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그야말로 완전 공구 초년병이었다. 게다가 말귀도 못 알아듣고 엉뚱한 물건 납품하고 손님에게 욕먹고 공구상 사장님에게 혼나고 정말 매일이 눈물 나는 날들이었다. 그 시기, 가장 큰 두려움은 막무가내 억지 쓰는 손님 대응하기였다. 분명히 내가 판매한 물건이 아닌데 나한테 샀다고 무조건 바꿔달라고 하거나, 내가 추천한 제품이 영 마음에 안 든다고 매장에 찾아와 소리치거나, 심지어는 좋다고 해서 써 보니 형편없는 물건이었다고 내 멱살을 쥐어 잡는 손님까지…. 이런 진상(?) 손님들을 대하려니 그 시절 어린 나이의 나는 자존심이 상하는 건 둘째 치고 하루 하루가 공포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 견디겠다고 한 달도 안 돼서 그만두려는 나에게 “고작 한 달도 못 하고 그만두면 세상에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라시던 아버지의 말씀은 내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 끝까지 가 보자. 최소한 3년은 꾹 참고 공구 일을 해 보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

 

제일 불쌍한 공구상 월급쟁이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월급쟁이들이 있다. 대기업을 다니는 월급쟁이도 있고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월급쟁이도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공구상에서 일하는 월급쟁이들이라 생각한다. 공구의 종류는 수십만 가지에 달한다. 그 수많은 공구 종류 가운데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찾아주려면 그것들을 전부 꿰뚫고 있어야 한다. 3년은 참아보자 마음먹은 나는 각종 카탈로그들을 읽으면서 수박 겉핥기식 공부를 했다. 궁금한 점이 생길 때마다 주변 분들에게 질문해 가며 지식을 쌓았다. 책 그리고 공부와 담 쌓고 살아왔던 내가 밤늦은 시간까지 공구책자나 카탈로그를 읽고 공부하는 내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공구에 대한 지식은 얕게나마 쌓았지만 낮은 임금과 막무가내 손님들 대응, 그리고 일하던 공구상 대표님들의 낡은 생각에 비가 오면 밖에 내놓았던 공구들을 안으로 들여놓으며 비는 쫄딱 맞고 그렇다고 빨간 날에 쉬기는 하는지…. 정말 공구상 직원은 월급쟁이 중에서 제일 불쌍한 월급쟁이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목표했던 3년을 넘어 무려 19년 동안 8곳의 공구상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다. 그리고 작년 3월, 드디어 내 가게를 차렸다. 내 인생 아홉 번째 공구상이자 이제는 직원이 아닌 대표가 되어 운영하는 만만종합공구를 말이다. 
월급쟁이 생활 안 해본 사장님들이 직원들의 애환을 알기나 할까. 나는 반드시 직원들에게도 잘 대해 주고 쉴 땐 쉬게 해 주고 힘든 일도 안 시킬 테다!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공구상 대표가 되어 일하다 보니 대표도 대표 나름의 힘든 점이 있더라. 월급 받는 직원은 그래도 날짜가 되면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지만 대표는 누가 월급을 주기나 하나, 매출이 적은 날도 있고 허겁지겁 결제 하고 매입해야 하는 날도 있고 그야말로 롤러코스터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 ‘야생(野生)’의 한 마리 연약한 사슴과도 같았다.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땐 ‘3개월을 넘길 수나 있을까? 내일이라도 망하면 어쩌지? 매입처에 결제는 해 줘야 하는데….’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라는 게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공구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대표로서 공구상을 운영하다 보니 예전 직원으로 있을 때와는 고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엔 그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로만 생각됐던 손님들이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이웃, 한 가정의 아버지, 나의 삼촌뻘 형님뻘 되는 분들로 생각되었다. 공구상을 찾는 손님들은 절반 이상이 막노동을 하는 분들이다. 담배 냄새와 땀 냄새에 찌들고 말도 거칠고 성격도 급한 분들. 처음엔 이 분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 분들도 말이 거칠어서 그렇지 속마음은 비단결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가게를 찾아와 푸념을 늘어놓거나 화를 내시는 분들에게 먼저 미소 짓고 웃으며 차를 한 잔 권하면, 찻잔을 받는 거친 손의 주인들은 언제나 웃음으로 대답해 주신다.
오만 짜증을 내는 손님을 웃으면서 대하고 처신을 잘 하면 그 손님은 분명 단골손님이 되어 돌아온다. 공구가 고장 났다고 화를 내는 손님도 수리를 마친 후에 왜 고장났는지를 차근히 설명해 주면 오히려 미안해하시는 경우가 많고 또 이런 손님도 단골이 된다. 먼저 이해하고 공감을 해 주는 것이 손님을 대하는 방법인 것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명언이 있다. 지금 여러 공구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 여러분들도 공구상 개업에 뜻이 있다면 절대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차근히 잘 준비해서 도전해 보라. 길은 찾다 보면 저 멀리에서 나타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글_오창용  만만종합공구 대표 · 진행_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