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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구인 칼럼] 방열복 회사로 간 축구선수



방열복 회사로 간 축구선수

인생이란 그렇다. 꿈을 향해 달리던 중 불의의 좌절을 겪을 수도 있고, 삶 앞의 갈림길에서 방황의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 어둑어둑한 미명의 시간. 그러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여명은 찾아온다.


축구선수를 향한 꿈… 
발등 골절로 좌절
 
처음 축구를 시작했던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겨우 아홉 살 나이에 숙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크게 반대하시던 부모님을 붙잡고 허락해 달라며 엉엉 울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축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골을 넣고 싶어 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나는 좀 달랐다. 이상하게도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보다 골을 막아내는 골키퍼가 더 빛나 보였다. 골을 넣어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골을 막아 내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축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 집은 정말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 다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집. 그런 평범한 집에서 축구선수를 꿈꾸는 나를 위해 물질적인 지원을 엄청나게 해 주셨으니 어린 나이에도 나는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에 늦잠 한 번 잔적 없이 항상 부지런을 떨었다. 다행히 중학교 시절 스카우트되어 서울로 전학을 갈 수 있었고 오로지 프로리그 골키퍼라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하루도 쉼 없이 노력했다. 꿈을 위한 노력이 중단되었던 건 대학교 진학 직전, 발등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면서였다.
 
처음 접한 방열복 제작… 
그래도 확신 있어
 
부상을 입은 후, 나는 앞으로 더 이상 선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 이후 내 진로의 방향은 전환되었다. 축수선수가 아닌 축구 지도자 겸 교수를 목표 심판 자격증이며 지도자 자격증 등 가르침에 필요한 자격증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성적 관리도 빡빡하게 잘 해서 과 수석을 차지하고 조기졸업까지 달성했다. 전환된 꿈을 위해 다시금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서인지 당시 최연소 심판·지도자로 신문에 나오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축구 지도자의 길도 겪어보니 내가 생각하던 삶과는 달랐다. 일도 일이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지도자로서의 삶은 명예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가족과 오붓하게 함께 지내는 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미래의 내 가정을 꿈꿔봤을 때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진로 문제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시기, 이혼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러 있던 어머니는 성광택크의 대표인 지금의 아버지를 만나셨고 새 아버지의 제안으로 나는 성광택크에 합류하게 되었다. 전까지 축구만 했고 축구에 대한 공부만 해 왔던 내가 처음 회사에 왔을 땐 일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나에겐 한 가지 확신이 있었다. 내가 이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축구처럼 회사 
일에도 밤낮없이 매달려
입사한 후 처음 3년 동안은 정말 주말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것 투성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과거 밤낮없이 축구에 매달리던 내가 이제는 밤낮없이 회사 업무에 매달렸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일을 배워 갔다.
우리 회사, 성광택크에서 제조하는 방열복의 원단은 그냥 뚝딱 하면 나오는 게 아니라 정말 전처리 과정이 많다. 솜을 타는 일(솜을 뜯어 부풀려 펴는 작업)부터 원사를 만들고 재직하고 정련작업(섬유의 불순물을 거르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런 작업에 따르는 모든 허드렛일은 내가 다 했던 것 같다. 몸은 고됐지만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거래처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내가 다 도맡아 하고 있는데 그 때 그렇게 일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래도 내 나이가 아직 젊다 보니 신문물에 빨리 반응한다. 지금의 내가 판단하기에 회사에 부족한 부분은 자동화시스템인 것 같다. 급하게는 아니더라도 점차적으로 그 부분은 필수적으로 늘려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을 생각이다.

새로운 꿈, 
고객의 소리 듣는 경영인
지금 우리 회사에는 KCS 안전인증을 받은 제품이 약 스무 가지 정도 된다. 그리고 올 해 인증 예정인 제품이 또 10가지가 있다. 이처럼 많은 종류의 제품이 안전인증을 취득했거나 예정인데 그렇다고 현재에 안주하려 들기만 하면 반드시 도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 꿈은 고객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오너가 되는 것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 중 하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고객분들도 우리 회사처럼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 고객들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좀 더 기능적이고 특히 디자인에서 뛰어난 제품을 선호하곤 한다. 그만큼 가격이 다가 아니다. 나는 그런 부준에서 회사의 협력업체들과 꾸준히 대화해 발전하는 방향을 잡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그처럼 고객의 소리를 들으며 영업 아닌 영업을 하다 보니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예전 운동만 하던 나였다면 내 소리에 더 크게 귀 기울였을 텐데 이제는 마음 그릇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것 같아 내심 만족스럽다.

방열복 가격 낮춰 
부담 줄이는 것이 꿈
얼마 전 발생했던 충주의 화재 참사를 보고 방열복 업계의 관련 업자로서,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모든 입장에서 와 닿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방열복이라는 것이 뜨거운 열과 관련해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다 쓸 수는 없는 고가의 제품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회사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것도 내 목표이지만 시장 가격을 낮춰 누구나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는 정도의 단가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도 또 하나의 목표다. 소방용 방열복과 해상용 방열복도 인증 예정인데, 인증이 된다면 열악한 소방공무원들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노력해 볼 계획이다.
이 큰 공구업계에서 나는 아직 햇병아리다. 군인으로 치자면 막 자대 배치 받은 이등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아직은 미숙할지 몰라도 앞으로 점점 성장할 것이고 미래가 기대되는 사람이고 싶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이 나중에, 몇 십년 뒤에 내 모습으로 보았을 때 “아 저 사람, 저렇게 될 줄 알았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닿고 싶다.

글 · 강빈 성광택크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