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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구인 칼럼] 공구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태어난 순간부터 공구인인 사람은 없다. 공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 명의 공구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2세 공구인도 마찬가지. 선대가 일궈 놓은 공구상을 그대로 이어 받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 공구상 안에서 자신을 담금질해 한 명의 공구상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공구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2세 공구상이라고 다 톡톡 튀는 건 아냐

››  ‘기업 경영인 2세’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젊고 진취적이며 감각적이고 도전적인 모습. 2세 공구상이라는 말에도 역시 기대되거나 떠오르는 모습이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온라인을 통한 인터넷 판매를 계획하고 SNS 마케팅은 기본 중의 기본. 바코드시스템 도입과 적합한 인테리어로 시공간적 효율성을 이룩해 꾸준한 매출 성장으로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당당한 2세 공구인!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신은 내게 그런 것들을 감당할 만한 젊은이의 달란트를 주지 않으셨다. 나는 페이스북으로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빌보드차트 진입 소식을 접하기는커녕 다모임이나 버디버디에서 SES와 친구 맺는 시대에 머물러 있다. 트렌디함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가 어디 나뿐이랴마는, 어쨌든 30대 중반의 나이 치고는 고루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매출 또한 ‘부모님께서 힘들게 이뤄 놓으신 것 끝까지 유지하자’라는 나의 슬로건에 걸맞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난 8년간 힘겹게 유지 중이다.

사업으로 생긴 상처는 오히려 전화위복
 
››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공구상을 맡았다. 불경기 속에서 직원 채용은 사치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공구상의 2세 오너이자 경리이자 배달 사원이자 소매 직원이었다. 하지만 젊음과 성실함 그리고 파이팅만 있다면 공구상의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2012년 어느 따스했던 봄날의 일이다. 사복을 입은 경찰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짝퉁이라며 3M 절단석 여덟 박스를 압수해 갔다. 대략 80만원 상당의 물건들. 초범(?)이었기에 벌금도 저렴하게 때려 주셨는데 1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절단석의 납품처인 납품처A에 전화를 했다. “물건이 짝퉁이라는데 어떻게 된 거냐”하고 물었더니 그쪽에서는 “알고 샀으면서 왜 그래?”하고 되레 당당했다. 2200원 짜리를 2000원에 팔았으면서 내가 짝퉁인 줄 알았을 거라고? 백 번 양보해 1500원에 샀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내가 성실히 납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민의 지팡이는 그렇게 젊은 나에게 정신 바짝 차리라는 교훈을 줬다. 납품처A와도 결별했음은 물론이다.
또 한 번은 납품처B의 영업사원이 문제를 일으켰다. 개인적으로 지친 상황에서 경리 업무를 소홀이 보고 있을 때였다. 영업사원이 내가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주문서에 납품한 것처럼 올려 물품 대금을 과잉 청구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나는 그걸 확인도 하지 않고 수백만 원이 훌쩍 넘게 부풀려진 금액을 몇 차례나 입금했다. 다행이도 이후 돈은 회수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만물이 변화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정신없이 가다 넘어져 다쳤다 아물고 또다시 다치고 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덧 딱지가 생겨 단단해진 듯하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진정한 친구를 발견하듯 세월이 지나가면서 오히려 내 주위에 필요한 거래처와 사람들이 남았으니 전화위복이 되었다 하겠다.

인생에 교과서는 없어… 경험으로 배우는 것
 
››  지금까지 8년여라는 시간 동안 기쁜 마음으로 공구상 운영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적성에 맞아서였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니,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해 온 공구가 내가 가진 적성을 키워줬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일이 익숙해져 가던 어느 시기였다. 한 손님이 20여 만원어치의 물건을 사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깜빡하고 지갑을 안 가져왔는데 우리 집이 여기 바로 근처니까 이따 갖다 줄게”라며 외상을 요구했다. 지금이라면 낯선 손님에게 절대 외상을 주진 않겠지만 내공이 부족했던 그 때는 전화번호도 적어 놨겠다, 안 좋은 인상을 남길까 싶어 그러시라 대답했다. 그러나 오후에 온다는 손님은 소식이 없고 다음 날도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네. 내일 꼭 붙여줄게” 미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마음을 놓고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도 “아내가 송금해야 하는데 자리에 없네. 들어오면 보낼게” 또 다음 날도 “아내한테 말 했는데 안 보냈어?” 다음 날은 “어~어~보낼게 보낼게” 말이 점점 짧아지고 귀찮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20일 정도 그렇게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직접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손님의 사업장인 고깃집을 찾아 갔다. 그랬는데 웬걸, 왜 사업장까지 받으러 왔느냐며 고기 썰던 칼로 위협하는 모습에 참 혀를 내둘렀다. 그 일 이후 나는 외상 거래를 원칙적으로 하지 않는다. 물론 그 원칙은 몇몇 손님들에게 젊은 사람이 빡빡하다는 말을 듣게 했다. 하지만 인생에 정해진 교과서나 정답은 없다. 배우고 공부하고 깨닫고 고치고 다시 노력해 배워 나가는 게 전부다.

처음부터 공구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  예전 육군사관학교 면접을 보러 갔던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3차 면접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 곳에서 교육관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여기 온 모두가 군인이 적성에 맞아 왔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 학비 면제니까 왔을 것이고 누구는 제복이 멋있어서, 또 누구는 성적이 되니까 왔을 거야. 아마 스스로 군인이 적성에 맞을지 어떨지 걱정이 되겠지.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졸업할 때는 모두 다 군인이 되어 있을 테니까.”
나에게는 공구상이라는 일이 그랬다. 8년 동안 함께해 온 나의 일터가 점점 나를 공구인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면서 경험해 왔던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나를 한 명의 공구인으로서 담금질해 줬던 것이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공구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공구와 함께 엎치락뒤치락 온갖 일들을 경험하며 공구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꾸준히 노력하고 배워서 완벽한 한 명의 공구인이 된다는 꿈을 이뤄 가려 한다.

글 · 박정우 도림종합철물공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