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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드는 방법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드는 방법


너무 여유롭고 편안하면 유약해지기 쉽다. 익숙한 것이 반복되면 의욕도 떨어지고 창의성도 잃는다. 곤란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어쩜 우리를 진짜 살아있게 하는 생명력이 아닐까 싶다. 힘들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찾아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던 나의 얘기를 정리해본다.
 
그대만 믿었는데 …
 
1982년 12월 당시 우리회사의 주력 품목이 세신공구였다. 그런데 매월초 2,3일이면 세신공구가 배송이 되었는데 오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전체 판매의 30% 가까이 가 세신이었는데 제품이 오지 않으니 하늘이 막막했다. 내용을 알아보니 일명 ‘출고중지’. 세신본사에 잘못된 보고가 올라가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이해시키는 데는 무려 20여일이 걸렸다. 그해 12월은 장사를 망치고 말았다. 당시로서는 세신공구가 거의 독점이고 다른 대체 상품이 없었다. 한 곳에서 출고중지를 당하는 순간 내 사업 전체가 마비되는 걸 실감했다. 절대로 단일 브랜드 정책으로 가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어떤 제품이든 이원화, 삼원화 정책을 펴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로선 국내 상황이 쉽지 않았고, 결심을 품고 있다가 1990년 첫 해외 거래처를 뚫으러 갔다. 대만으로 갔다. 타이페이 전시장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발견했다. 지니어스의 소켓렌치. 이를 시작으로 대만에 5곳 거래처를 두는 꿈을 가졌다. 
세신으로부터 출고중지를 당한 아픔이 이원화, 삼원화로 거래처를 두는 정책을 낳았다. 지금 크레텍은 전세계 370여 곳과 거래한다. 출고중지의 아픔이 없었다면 세계 370곳과 거래하는 데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학교공부 모자라 평생 공부하는 사장으로
 
다들 아시다시피 나에겐 학력콤플렉스가 있었다. 아내를 처음 만날 때도 내 학력에 대해서만은 거짓말을 했다. 결혼 후 몇 달 지나 거짓학력을 알게 된 아내의 그 실망하던 얼굴이라니. 내겐 그 표정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먹고 살기 바쁜 청년시절에는 공부하고픈 마음만 있고, 학교에 갈 사정이 못 되었다. 회사를 차리고 15년째가 되던 1986년, 대구대 사회개발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에 등록했다. 처음으로 대학땅을 밟으며 공부하는 재미도 알게 되고, 실제로 공부로 인해 경영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후 경북대를 거쳐 1998년에는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공부했다. 젊은 시절 놓친 영어는 개인교사까지 들여가며 20년을 공부했다. 공부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이 나이 되도록 공부하는 
‘노력하는 사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5월 26일 한국품질경영학회에서 경영우수사례를 발표하는 영예의 자리에 선다. 모두 대기업과 연구소에서 서던 자리인데, 그간의 부단한 노력 덕분인지 기회를 가지게 됐다. 영광이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새로운 불편을 향해 떠나라
 
불편하고 힘들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본 것은 거래처나 공부문제만이 아니었다. 
2000년경 회사규모가 점점 커졌을 때 물건의 출고율이 틀리는 경우가 늘어났다. 당시 한국표준협회 김문성 컨설턴트에게 자문을 구했다. 우리회사의 상품이나 관리 구성에 대하여 바코드를 실시하라며, 바코드를 하지 않으면 관리 운영이 어려워 앞으로 사업을 키우기 힘들 것이라 했다. 바코드 작업을 시작하고 두 달이 채 안 되어 포기해야 했다. 당시 제조사의 15% 정도밖에 바코드를 붙이지 않아서 나머지는 우리가 일일이 붙여야 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2003년이 되자 물량이 더 늘었다. 사람의 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에 왔다. 공군 군수분야 장성출신인 석현수 부사장이 한번 해 보자며 팔을 걷어 붙였다. 모든 제조사를 찾아다니면서 바코드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다. 두 번, 세 번 방문도 하고 편지도 보냈다. 밤 12시까지 직원들이 모여앉아 바코드 스티커를 붙였다. 하지만 많은 분량을 감당 못해 도저히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100번도 더 하며 버텨갔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협력 안하던 업체들이 한집 한집 협력하기 시작했다. 2년 후 공구 바코드화가 80% 성공했다. 만일 그때 바코드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공구업의 기업화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불편은 당신이 성공의 길속에 들어서 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신호다. 만약 지금 당신의 상태가 편안하기만 하다면 새로운 불편을 향해 기꺼이 떠나야 한다.” -그랜트 카돈 ‘10배의 법칙’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려면

나는 기업을 해오면서 많은 장벽을 넘어왔다. 한두 번이 아니고 열 번, 스무 번도 더 넘어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렵고 힘든 장벽을 넘으면 더 큰 플러스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조그만 장벽을 넘으면 조그만 성과가 있고, 큰 장벽을 넘을수록 그 성과는 더 컸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한번 같이 연구하고 풀어봅시다’ 하면 어느 사이에 그 문제가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닌가. 혹, 일이 정 안 풀릴 때는 즐겨야 한다.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그런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나온다. 곤란을 겪어야 그 곤란을 벗어나는 길이 만들어진다. 위대함은 순탄함 속에서 탄생되지 않는다. 사업과 인생의 법칙은 비슷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간절히 필요해 행동으로 옮기면 길은 열린다. 자연이 아름다운 5월, 원하는 길을 여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힘든 위기를 겪게 하고 나서야 
그 자신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드러낸다.”- 파울로 코엘료 ‘11분’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