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회관을 만들어 보세요.
내가 먼저 기부하겠습니다”
그날의 도원결의
10년 전인 2007년 이맘때 즈음이다. 필자가 산업용재협회 20대 회장에 취임했을 때였다. 당시 협회 수석부회장이었던 정병모 사장과 록스기계 전병두 사장, 공성기계 공방현 사장 등이 한자리서 만났다. 별 큰 계획 없이 모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겨나고 말았다. 대뜸 전병두 사장이 “협회회관을 한 번 만들어 보세요. 내가 먼저 기부하겠습니다” 했다. 옆에 있던 공방현 사장도 “나도 공구밥 먹고 살아왔는데 회관 건립에 동참하겠습니다” 했고, 정병모 사장도 “우리 같이 해보자”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도원결의(桃園結義)’였나 싶을 정도로 다들 한마음이 돼 눈을 마주쳤다.
요즘 협회관 건립이 웬 갑자기 나온 소리냐는 분도 계시겠지만 10년 전 그날, 자신들의 생업터전을 위해 마음을 모았던 적이 있음을 밝히고 싶다. 그때 전병두 사장의 ‘한번 해보자, 내가 기부하겠다’는 제안이 뿌리가 돼 지금 커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형편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한국산업용재협회 회관 건립에 대해 안 된다고 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과 마음을 모아가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1996년 대구제일여자상업고등학교의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우리 회사가 제일여상 학생들을 많이 채용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학교와 가까워져서 운영위원장이 되었다. 살펴보니 가장 시급한 문제가 강당이었다. 목표를 세우고 모금을 시작했다. 동창회와 지역 국회의원, 구청, 교육청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형편이 안 되는데 어떻게 강당을 짓겠는가’ 했지만 힘을 모으니 점점 가능성이 생겨났다. 마침내 2001년 9월 18일, 강당을 건립했다. 가장 큰 보람이었다. 다음세대를 위한 것만큼 보람된 일은 없다.
역경을 넘어 보람과 긍지로
공구상 하시는 분들은 참 열악한 가운데서 사업을 시작하셨다. 솔직히 예전에는 공구장사한다면 어디 명함 내기가 어려웠고, 공구상에 근무한다 하면 장가가기도 힘이 들었다. 또 공구상이라는 것에 한계점이 있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환경을 이겨내고 오늘날 떳떳하게 사업을 하고 있으니, 돌아보면 감개가 무량하다. 역경을 넘어선 공구인들이기에 다시 한 번 더 보람과 긍지를 모아 협회회관을 만들어 보자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자신의 위상도 올라가고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적 관념도 높아질 것이다. 회관은 단지 회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이런 귀중한 기회를 날리면 안 된다. 협회 설립 후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고 내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잘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부터, 지금부터
장호성 회장이 어려운 결단으로 앞장 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현재 회관건립은 여러 뜻있는 분들 덕분에 잘 진행되고 있다. 혼자는 약해도 뭉치면 강해진다. 전국 4,000여 회원들이 계신다. 실제로는 가입 안하신 분들까지 합치면 훨씬 더 될 수 있다. 4,000여 회원사에서 각 10만원을 낸다치면 4억이 되고, 100만원을 내면 40억이 될 수 있다. 뭉치면 아주 커진다. 재력 있는 몇몇이서 짓는다면 협회관 건립의 가치도 떨어진다. 함께 짓고, 자신의 이름도 올려야 더 큰 보람과 긍지가 생긴다. 참여하느냐, 구경하느냐, 그 차이가 업계의 미래 청사진이 되리라 본다.
“고민이란 어떤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생기기보다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서 더 많이 생긴다. 모든 일을 망설이기보다 불완전하나마 시작하는 것이 한걸음 앞서는 것이 된다.” - 버트런드 러셀-
우리회사 아침구호는 ‘나부터 지금부터’이다. 무엇이든 내가 먼저 실천하고, 미루지 말고 지금 시작하자는 뜻이다. 판매를 하든지 제조를 하든지 한 뿌리이다. 내 직업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갖고 협회관 건립을 꼭 성공시키자. 사장님뿐만 아니라 임직원들도 동참하기 바란다. 미래의 내 모습에 자부심을 불어넣는 일,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