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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공부’ 씨앗으로 맺은 열매들


‘공부’ 씨앗으로 맺은 열매들


학사모 한 번 써볼까?
 
30년 전인 1986년 9월, 대구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에 입학했다. 처음엔 공부를 하러 갔다기보다 잘 아는 분이 나에게 ‘학력이 부족하니 대학교 모자나 한번 써보고 사진이나 찍어보라’ 해서 간 것이다. 그런데 공구상 사장이 그렇듯 하루 종일 회사에 몸이 묶여야했다. 학교에 제대로 갈 수가 없었다. 한 달 넘게 출석을 못하니 더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제적된다는 통보가 왔다. 안 되겠다 싶어 부득불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자나 써보는 공부가 아니라 사업에 답을 찾고 생각이 달라지게 하는 공부였다.
특히 최고경영자과정은 오늘 배웠던 것을 내일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천적 학문이었다. 이듬해 졸업하면서 이미 내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 그동안 공구상사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할 지 몰라 쩔쩔매던 문제들을 해결해가고 있었고, 또 내 사업에 다른 변화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였다. 공부를 통해 변화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본다.
 
카탈로그, 직원훈련, 전산화, 해외진출, 모두 공부에서 출발
 
1986년 표준가격표 제작을 시작하여 1989년 카탈로그 발간으로 연결시켰다. 공구의 이름과 가격을 정리하는 일은 공부하는 태도를 갖추지 않으면 힘든 일이다. 1987년, 표준협회의 의식고도화훈련을 받기 시작했고, 그해 9월 전직원(당시 35명)이 첫 극기훈련을 가졌다. 극기(克己), 나를 이기는 것은 모든 공부의 시작이었다. 이 모두 내 나이 마흔쯤에 시작됐으니, 경영자에게 르네상스 같은 시기였다 본다.
전산화도 교육과 공부로 인한 것이었다. 당시 곳곳에서 전산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학교에서 배운 경영프로세스와 시대적 변화 추세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1988년 연구에 들어갔고 1989년 10월에 첫 전산 계산서를 발행할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고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가는 길을 만들려니 영어가 필요했다. 하루 한 시간, 한 달에 30시간 공부한다는 목표를 세워 2010년까지 꼬박 23년간 영어공부를 했다. 그것이 1990년부터 해외로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 나가서 움직이는 동력과 용기가 되는 건 사실이다.
한자 공부도 따로 했다. 교수들이 수업하는 내용에는 영어는 물론 한자도 많았다. 한자는 독학으로 충분했다. 지금은 한자를 꽤 많이 아는 편이고 여러 가지 세상이치도 한자 속에 있음이 보인다. 알면 보이는 그 자체가 기쁨이기도 하다.
처음 경영대학원 공부를 한 뒤로 다시 경북대, 서울대, 카이스트 등으로 업그레이드하면서 경영자 공부를 했다. IMF로 회사가 어려울 때 과감히 서울대로 공부하러 다녔다. 오히려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전국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알면 보인다배우면 실행한다
 
공부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것은 실행의 힘이다. 전에는 마음속에만 넣어두고 용기와 지식이 없어 우물쭈물했던 계획과 생각을 과감히 실행할 수 있게 됐다. 경영, 기술, 전산, 지식체계화 등에서 어떻게 실행을 할지 그 방법이 보였다. 알면 힘과 용기가 생긴다. 
당시에는 공구상사에는 직원 서른 명 이상 두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사업을 해보니 확장이 필요했고, 배움을 통해 그 동력을 확보하며 어느덧 한계를 넘어갈 수 있었다. 경영대학원 수업을 통해 내가 직접 하지 않고도 직원을 움직여 결과를 내고, 어떻게 관리체제를 짜야하는지, 사람을 믿고 신임해야 한다는 경영자의 덕목까지 배우게 됐다. 
“학문이 없으면 어두운 도랑을 걷는 것처럼 더듬어 낼 수도 없으며 몹시 고통스럽다. 학문이 있으면 산 위에 서있는 것처럼 멀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내가 다시 10년을 더 살고 죽는다면 9년 365일을 배울 것이다.” -마오쩌둥 어록 중-
배움이야말로 내 속에 있던 씨앗을 꽃피운 원동력이었다. 만일 공부를 시작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많은 부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해두면 언젠가는 꼭 쓰인다. 흡사 땅속 깊이 심어둔 씨앗과 같아 반드시 꽃을 피운다. 지난 11월 23일 대한민국의 쟁쟁한 기업들과 함께 국가품질혁신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나 태어나서 이렇게 기쁜 날도 드물다. 45년 전 자전거 한 대로 시작해 대통령 표창까지 오니 감회가 새롭다. 오늘의 이 열매는 그간 배움이라는 씨를 늘 심어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간 함께했던 직원들, 그리고 항상 이 공구업을 두고 운명을 같이 했던 공구상 사장님들, 참으로 감사드린다. 2016년 연말,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빈다. 내년 사업을 위한 씨앗, 꼭 심어둔 한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