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배우다
일본 트루스코 방문기
용기가 필요해
사업체 규모가 커지면서 외부적으로야 사업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지만, 경영자는 늘 혼자 불안감에 시달린다. 자꾸만 새로운 위험요소와 숙제들이 주어지는 것 같고, 이제 정말 한계인가 하는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이 한계를 넘었을 때 기쁨과 성취감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다. 이 맛이 사업하는 맛이다. 다들 공감하실 것이다.
회사 물류센터를 준비하면서 더 나은 관리와 운영방법이 필요해 고민하고 있었다. 공구분야에서 배울만한 곳이 어딘가 찾아보니 단연 일본의 트루스코(TRUSCO)사였다. 닿을 방법이 없어 먼발치서 부러워만 했다. 그러다 지난봄 독일 쾰른전시회에서 트루스코 미야다 이사를 만나게 됐고, 평소 ‘타이밍’을 중요시하던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트루스코에 대해 궁금했다. 그 회사를 한번 방문하고 싶고, 트쿠스코의 나카야마 사장도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꼭 부탁을 드린다.”
3개월이 흘렀다. 워낙 바쁜 나카야마 사장이라 일정을 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6월 14일이면 일정이 된다는 연락이 왔다. 혼자 가기 아까운 기회 아닌가. 열두 명의 우리회사 팀을 꾸렸다. 인원수를 말하니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우리 측의 진심과 열의에 그쪽에서 가슴을 연 듯 기꺼이 오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항상 통한다.
트루스코에서 배운 것들
6월 13일 저녁에 우리회사 열두 명은 도쿄에 도착했다. 이튿날 아침 7시에 히가시칸트 도쿄물류센터를 방문했다. 우리와 다르거나 꼭 배워야 할 사항을 적어보니 무려 27가지나 되었다. 그 중에서 아마 10가지 이상은 우리도 실행 가능한 것들이다.
점심은 나카야마 사장과 함께 했고, 이후 도쿄 긴자의 본사를 둘러봤다. 10층 건물로 아담하게 잘 가꿔진 느낌을 주었다. 각 층을 방문할 때마다 각부서 직원들은 일제히 일어나 따뜻한 인사를 해주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할 때마다 옆에 선 나카야마 사장은 “이분이 한국에서 공구 1등 하는 분”이라는 소개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지하실이 인상적이었다. 전기실과 기계실이 있고 한층 더 내려가니 지진방지용으로 지어진 것이 보였다. 지진으로 건물이 위아래, 옆으로 움직여도 괜찮다고 했으며, 진도 7.5까지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트루스코에서 배운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카탈로그의 중요성이다. 트루스코의 오렌지북(Orange Book)은 우리업계의 영원한 고전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웹(web)시대가 오더라도 카탈로그는 계속 필요하고 진화해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2. 물류에 로봇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 없는 사람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3. 도매업인 트루스코는 소매업인 모노타로와 윈윈(win-win)한다. 우리에게도 윈윈의 관계가 필요하다.
4. 충분한 구색을 갖출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물류시설을 과학화하고 규모도 갖추어야 한다.
5. 트루스코는 PB브랜드 16개를 1개로 만들었다. 브랜드를 묶으니 트루스코가 유통기업임에도 일본 내 여론조사에서 세 번째로 유명한 공구로 꼽혔다. 하나로 묶어 강하게 어필되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6. 입고 검수를 없애는 것이다. 검수는 시간낭비일 뿐 상호 신뢰하게 되면 해결된다. 트루스코의 포장제품을 소매인 모노타로는 따로 검수하지 않는다.
배움을 넘어 나눔으로
아침에 물류센터 방문을 시작으로 사장과의 점심, 오후에는 본사 방문 등을 마치고 나왔다. 나올 때 따뜻한 선물까지 챙겨주는 그들에게 한 번 더 감동을 받았다. 사실 트루스코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거래처도 아닐뿐더러 별 이득 없는 외국인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고, 경계심 없이 가르침을 주니 너무나 고마웠다. 가르침 받은 것을 정리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배울 거리를 받은 것은 내가 한국의 다른 공구상이나 기업에게 잘하라는 뜻이구나. 내가 알게 된 것을 알려주고 고객이 더 잘되도록 해주면서 이웃 일본과도 잘 지내자.”
당사의 시설이나 시스템이 선진국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앞서있다고 본다. 설령 당사 시설이 자신이 하는 업종 규모와 차이나서 어려워할 분도 계시겠지만 자기에게 맞게 응용하면 좋을 것이다. 3개월에 한 번이라도 회사 문을 열면 어떨까 싶다. 오시는 분들이 미래의 변화하는 공구기업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내가 일본에서 받은 것에 답하는 길이라고 본다.
어려서 바둑을 좋아했다. 지금은 아마 5단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하고만 바둑을 두면 실력이 줄어들어 꼼수가 생긴다. 그러나 나보다 나은 사람과 바둑을 두면 점점 수가 올라간다. 물론 내 주위에 모든 분들이 다 선생이다. 그래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배워야 할 것이다. 배움을 실행할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그냥 두면 날아가 버린다. 용기를 내 행동으로 옮기고 도움을 청하면 길이 보인다. 이것이 이제까지 내가 사업하면서 깨친 성공방식이다. 그 방식과 지식을 나누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이번 방문에서는 오사카에 있는 유명 공구기업인 스키모토, 후지와라 산교, 모노타로도 방문했다. 이들 기업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전하겠다. 끝으로, 문을 열어 좋은 배움의 기회를 준 트루스코와 나카야마 사장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