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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불씨


불씨




만남이 결정적 계기 돼
 
2000년 6월 29일, 오사카의 트루스코(TRUSCO) 본사에서 오주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트루스코 카탈로그를 만들어 일본의 공구역사를 바꾼 사람이다. 당시 운이 좋았던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독으로 그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60대 후반이었던 그는 우리회사의 한국공구 카탈로그를 꺼내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 공구카탈로그(당시 460페이지)를 만드니까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또 한국은 일본과 이웃이므로 앞으로의 교류도 생각했으리라 본다. 카탈로그는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과, 한국에서 유통되는 주요 공구는 꼭 실어야 한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 때 만남을 통해 우리 한국의 카탈로그는 많이 개선되고 변화했다. 460페이지였던 책자가 다음 해는 720페이지로 바뀌었고 지금은 2,700페이지가 됐다. 오주 부회장의 가르침이나 지도로 우리는 큰 배움을 얻었다. 그분과의 만남이 한국 공구업계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모든 일에는 불씨가 있다. 하나의 작은 씨앗이 단초가 돼 나중에는 훨훨 타오르는 거대한 무엇이 된다. 크레텍 카탈로그에게는 16년 전 일본 트루스코 사의 오주 부회장과의 만남이 불씨가 됐다. 그런데 그 불씨란, 그때 무심코 흘려버리면 영원히 그대로 묻혀 버린다. 혹은 실컷 지난 후에야 그때 그것을 할 걸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아무리 거대한 것도 그 처음을 따져보면 작고 미약하고 평범했다. 그러나 그 작은 우연을 잡아서 덧대고 키워서 근사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사업이 아닐까 한다. 나에겐 작은 불씨들이 꽤 있었다. 그 불씨들을 놓치지 않고 잡았기에 이만큼 올 수 있지 않았나 한다.
 
기회를 만들어준 은인들
 
1991년 8월 당시 호산실업 최돈구 사장의 초대로 열흘간 미국을 갈 수 있었다. 당시 일정 중 시카고 하드웨어쇼를 볼 수 있었다. 일행들은 일반관광에 나섰지만 나는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미국 시카고 하드웨어쇼로 가서 이틀간 전시회를 봤다. 정말 대단했다. 내가 이때까지 본 전시회 중 가장 컸다. 엄청 큰 전시장에서 수많은 공구를 원 없이 만지고 봤다. 짧은 영어 실력이지만 라면상자 한 박스정도의 카탈로그를 모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당시의 산업전시회로는 미국의 시카고와 독일의 쾰른 전시회가 유명했다. 이런 전시회를 보며 나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아마 그 후로 100번은 더 유명 전시회를 다녔을 것이다. 당시는 바이스 그립 회사의 대리점으로 초대받아 갔지만 돌이켜보면 참으로 큰 기회를 만들어 준 불씨가 아니었나 싶다.
1990년 3월 첫 해외여행이자 해외비즈니스로 조양기계 이선주 사장과 함께 일본 오사카를 방문했다. 일본 무역회사와 KTC 공구회사 등 여러 곳을 방문했지만 실상은 한 건도 거래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해 5월, 이선주 사장과 같이 대만을 방문했다. 마침 대만공구전시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지금 지니어스 회사와 만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대만에서는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다. 약 3년간 해외지식도 없고 언어도 안 되는 사람을 이선주 사장이 이끌어줘서 참 넓은 사업세계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이선주 사장은 내가 항상 점포에만 앉아있으니 더 넓은 세계를 보자며 나를 설득했다. 만일 이선주 사장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나에게 해외의 길을 열어주고 이끌어주셨던 이선주 사장에게 한 번 더 감사를 드린다.

 
잘 먹어라 잘 입어라 잘 싸워라
 
아주 오래전 일이다. 1970년, 내 나이 스물넷, 그해 11월에 서해 해군 레이다 기지에 병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당시 우리집은 대구시내 소문날 정도로 가난했다. 둘째 여동생이 중3이었는데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이 힘들다’는 편지를 하소연하듯 오빠라고 내게 보낸 것이다. 이 편지가 검열에서 발견됐다. 박재린 부대장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리고 우리 집의 딱한 소식을 듣고 나에게 휴가증을 두 개 끊어 줬다. 제대 말년이라 20일씩 휴가증 두 개를 끊어 일찍 가서 집안을 도우라며 나를 보내주었다. 거기에 온 부대원이 성금까지 모아주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찡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돈으로 짐자전거를 사 공구행상을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 때 우리부대의 복무방침이 ‘잘 먹어라. 잘 입어라. 잘 자거라. 잘 싸워라’였다. 나는 아직도 이 방침을 나의 사업장에 반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정을 받았으니 나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 8월 15일 광복절 약속한 통일기금도 아마 이런 불씨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6월 2일 거제에서 해군 대구함 진수식이 있다. 대구시장과 상공회의소 회장이 가는데 나도 같이 갈 예정이다. 그리고 대구함에 내가 해군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전하고 싶다.
 
나를 낮추면 불씨 보인다
 
불씨는 처음에는 작지만 나중엔 전체를 태울 수 있다. 내 인생의 불씨를 생각해본다. 나의 청년시절 나를 도와줬던 많은 분들, 그 분들이 내게로 오셔서 새 길을 열어주셨다. 사업이 커지면서 새로운 불씨를 전해준 분들도 꽤 많다. 정철수 부사장과 우리회사 임원들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를 낮추면 곳곳에 불씨가 보인다. 배운다는 자세로 대해야 불씨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나보다 뛰어난 분들을 소중한 불씨로 생각한다. 지나치는 작은 것에도 배우고, 우연한 만남과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을 담는다. 특히 한번 고마운 것은 평생을 두고 갚으며 실천하려고 애를 쓴다. 이런 것들이 불씨를 살리는 방법이다. 평생 사업해온 내 노하우를 우리업계에 불씨로 제공하고 싶다. 서로에게 불씨가 되는 일, 생각만 해도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