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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나에게 순조로운 길만 있었다면





나에게 순조로운 길만 있었다면


누나, 코스모스 왜 꺾어?

어렸을 적 우리집 마당에 코스모스가 있었다. 누나가 코스모스 머리를 똑똑 꺾어버리길래 나는 “누나 왜 못되게 코스모스 머리를 잘라 버리노”했다. 누나는 “지금 이대로 두면 코스모스가 키만 크고 꽃이 못 피운다. 잘라주면 가을에 코스모스 꽃을 더 많이 핀단다” 말해주었다. 그날 당장의 내 기분은 시무룩했지만 그해 가을 코스모스 꽃이 우리집 마당을 한가득 메웠던 기억이 난다. 살아오면서 왜 이렇게 팔자가 센가 할 만큼 힘든 길을 걸어왔다. 평탄한 길만 걸었다면, 그저 유복하고 편하게 살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꽃은 더 적게 폈을 것이다.
1966년 내 나이 스무 살에 공구노점상을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천한 장사였다. 중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3년간 철공소에 가서 일을 배웠지만 선반공이 되지 못했다.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와 공구노점상이라도 해야 했다. 절박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공구노점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앞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시골에서 정미소를 하시던 아버지가 사업 실패를 하셨다. 우리가족은 대구로 이사 왔다. 아주 작은 단칸방, 비가 뚝뚝 새는 집에서 여섯 식구가 몸을 겹쳐가며 잤다. 가난이 없었다면 중학을 졸업하고 철공소로 일하러 가지 않았을 것이고 철공소에 가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공구노점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구노점상이 잘 되었더라면 지금쯤 아주 작은 가게 하나를 할 것이다. 이렇듯 언제나 내게는 머리를 미리 떼어내는 코스모스 아픔 같은 일이 있었다


고비 넘다보니 어느덧

대구 원대 주차장 앞에 문을 열었다. 그마저도 버스 주차장이 옮겨가 버리는 바람에 다시 낙담하게 됐다. 그때 주차장 앞 소매가게가 잘 되었다면 지금도 소매장사를 할 것이다. 안되는 바람에 멀리 다른 도시로 찾아가서 파는 방법을 연구했다.
가게를 넓혔지만 무엇 하나 되는 게 없었다. 재고관리도 어려웠다. 어떻게 이 많은 품목을 관리할지 막막했다. 공구에는 왜 그렇게 이름도 많았는지, 공구 하나에 이름이 다섯 개씩이었다. 일본어, 영어, 한국어 등 이름이 제 각각이었다. 유통구조는 왜 단계, 단계 그토록 많은가. 가격은 어찌하여 부르는 게 값인가. 도무지 체계가 없었다. 사람은 조금만 가르쳐놓으면 나가버려 사람관리가 가장 어려웠다. 또 세금계산서를 받으면 물건을 안사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심을 하고 품목을 정리하고 가격을 오픈하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공구상이었지만, 고비를 넘고 넘다보니 어느덧 기업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은 과정이다

성경에 요셉 이야기가 있다.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형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간다. 그 이집트에서도 종으로서 열심을 다했지만 요셉은 모함을 받아 감옥으로 들어간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희망은 점점 없어 보였다. 성경의 큰 맥락으로 보면 그것은 요셉에게는 과정이었다.이후 국무대신이 되어 자기 민족을 이끌게 되었으니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병철,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은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소명을 받으셨고, 훌륭한 정치가들은 우리나라 사회발전에 공헌하라는 소명을 받았을 것이다. 감히 나는 그만큼은 능력이 못된다. 척박한 이 나라에 산업공구를 발전시켜보라는 소명이 내게 있지 않았겠나 생각해본다. 우리 공구인들도 자기 일의 소중한 가치를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생각에서 이런 말씀을 드린다. 그동안 이 땅의 공구산업을 일궈온 우리 공구인들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나라발전이 가능했다고 본다.


한 번 더 넘어서야 할 시기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다. 한번 늦어져 버리면 영원히 세계무대를 따라갈 기회를 놓쳐 버린다. 반대로 우리가 강하면 세계 어디까지도 갈 수 있다. 제조도 중요하지만 유통과 시장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안된다 생각하기보다 이것도 한번 넘어보자는 생각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어려움을 순리로 받아들이면 넘어서는 힘도 생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공구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열일곱살 조양철공소 소년의 경험도, 공구노점상을 한 것도 모두 오늘날 산업공구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어렵고 힘든 역경의 길이었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길을 감사와 기쁨으로 갈 수 있겠다. 이번 봄을 잘 견디어 가을에 풍성한 코스모스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