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발행인 칼럼] 인연(因緣)
올해로 업력 53년이니 그간 만난 사람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기억해서 아픈 사람도 있고, 반대로 한번은 만나야 할 사람도 있다.
지난 8월 20일에 해군해병대복음화후원회 일로 대통령 별장이 있는 남해 저도를 다녀왔다. 군수송선을 타고 들어가 저도에서 1박을 했는데, 이 모든 것은 김덕수 제독이라는 분이 주관해 주셨다. 그는 내 인생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었고, 기적처럼 우리는 50년 만에 다시 만났다.
1969년 11월 나는 해군상병이었다. 해군 경남함에 당시 기관병으로서 보수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해군사관학교 3학년생들이 현장실습으로 3주간 경남함에 올랐다. 기관보수병인 나는 사관생도들과 가까이 접할 수 있었고, 거기서 김덕수라는 사관생도를 만났다. 첫 인상이 올곧다는 느낌이었고 이후로도 내내 기억날 만큼 눈이 반짝였다. 그의 말과 글은 내게 남달라보였다. 훈련을 마치고 나가면서 내게 짧은 글을 써 주었다. 그 순간은 내 청춘의 한 페이지라도 불러도 좋을 만큼 특별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다. 살면서 가끔은 ‘어떤 군인이 되었을까? 별은 달았을까?’ 생각만 했지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2019년 11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 친구 조용근 세무사였다.
“영수야, 여기 해군 한분이 오셔서 군함을 탔던 얘길 하시는데, 그 시기가 너랑 비슷하다. 전화 한번 받아볼래?”
“여보세요?”
“예, 저는 김덕수라고 합니다.”
순간 내 머릿속에 전기가 흘렀다. 바로 그 김덕수! 나는 답했다.
“저는 최영수입니다.”
이 길로 바로 그가 있는 데로 뛰어갔고, 우리는 50년 만에 조우했다. 기억은 온전치 못했지만 스물둘, 같은 경남함, 진해바다, 이것만으로 우리는 얼싸안았다.
2020년부터 코로나가 극심한 와중에도 나는 경산물류센터를 짓고 있었다. 규모가 커서 힘에 부쳤다. 건축비용과 기술적인 부분 등에서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디서 배우지? 내 한계가 느껴지는구나’ 했는데 마침 김덕수 제독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김덕수 제독과 연락하며 지냈고, 그는 평택해군기지 건설을 총괄했던 만큼 아는 것도 많고 연결되는 데도 많았다. 경산센터 건설에 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물류학회와 물류전문회사, 건설 등에서 한 수 높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공구상 영역, 또 대구라는 영역이 아니라 더 넓은 지식과 기술의 세계로 갈 수 있었다. 김덕수 제독의 소개로 알게 된 김상경 대표도 특별한 이였다. 까르푸를 지었던 경험으로 인해 우리회사에 여러 가지 조언을 했는데, 처음엔 우리회사 내부와 갈등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여러 절감효과는 물론, 높은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50년 만에 만난 그 다음해, 그는 내게 해군해병대복음화 후원회장을 맡길 권했다. 육군 공군에 비해 해군에 복음화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해군은 1945년 광복되자 손원일 제독이 ‘우리의 바다는 우리가 지키자’며 서울안동교회에서 해사대를 창설하며 시작됐다. 즉 해군의 모체는 기독정신이기에 이를 이어가도록 하는 책임도 후대에 있었다. 2020년 4월 나는 해군해병대복음화 후원회장을 맡았고, 이후 진해에 있던 손원일다락방 건물을 손원일선교센터로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해 도왔다. 2024년 4월 선교센터가 개관했고, 지금은 여러 해군 예비역 장성에 의해 잘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와 손원일 제독에 대한 조명도 이 선교센터 내에 잘 설명되어 있으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와보시라 권하고 싶다. 후원회장으로서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다.
또 나는 이 후원회 모임을 통해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다. 더 큰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면 더 넓고 멋진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을 살고 사업을 하는 데 큰 힘이 된다.
‘인연을 소중히 여겨라.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 피천득
나는 실수나 실패가 많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어렵고 큰일을 할 수 있는 데는 이렇듯 인연의 힘이 있었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저 혼자 다 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연결과 타이밍, 또 사람으로 인해 이뤄지고 완성된다.
또, 좋은 인연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추억으로 만났더라도 해군후원 등 훌륭한 사업들을 같이 할 수 있어 더 좋은 인연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났다고 반가워만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과거의 한순간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크레텍 물류센터건설도 연구하고 해군교회도 짓는 등 세상을 위한 좋은 일에 서로의 귀인이 되어주었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지켜 튼튼하게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인연이란, 인내를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포기 난초와 같다.’ - 헤르만 헤세
인연에 공들이는 가을이 되시기를 바란다. 정치와 경제가 어지럽다지만, 나를 믿어주는 한사람, 또 내가 기댈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약하면서 강한 우리들,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란다.
글 _ 최영수 크레텍 대표이사, 발행인, 명예 경영학·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