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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 칼럼] 빌리시겠습니까? 밀리시겠습니까?

 

빌리시겠습니까? 밀리시겠습니까?

 

어린 제갈공명에게 고개 숙인 유비


46살의 유비는 26살의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 곤궁에 처하자 지혜를 내어달라고 간청했다. 제갈공명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만나주지 않다가 세 번째야 유비를 만나 서로 의(義)를 합치기로 했다. 유비와 같이 갔던 관우와 장비는 화를 냈다. 나이도 어린 제갈공명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놈이 콧대 높게 뻣뻣하게 군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유비는 나이와 지위고하를 떠나 지혜를 구했고 드디어 대의를 이루게 된다. 삼국지 이야기다.
스스로를 많이 안다 여기고 자신의 지식만 믿는 사람은 남의 지혜를 구하지 못한다. 자기의 앎 안에 빠지면 남의 지혜가 보이지 않고 큰 뜻을 구하기 어렵다. 

 

 

세금을 환급 받는다고요?


우리회사에 구내식당이 있는데 여사장님이 아들을 아주 잘 키웠다. 그 정도로만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계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만나볼 생각은 안하고 있었다. 세금관리로 한창 어려워하자 주변에서 ‘식당 사장님 아들이 서울의 큰 회계법인에 일하는데 한번 상담 받아보시라’ 했다. 그제야 그 아들을 만났다. 어릴 적 봤는데 훌쩍 큰 청년이 되어있었다. 그 아들에게 우리회사 경리팀 장부를 보여주었다. 환급받을 세금을 발견하면 그만한 사례를 하겠다고, 반면 환급 받지 못하면 일체 수고료도 없는 것으로 했다. 2주간 조사하더니 과오납 세금을 발견해냈다. 일 년 후 상당히 많은 금액을 환급받게 되었다. 나는 깜짝 놀랐고 그에게 보수도 챙겨주었다. 가까운 곳에 한 수 배울 좋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이 더 고마웠다.

 

곤란 느껴야 지혜 나와 문제 해결


“모든 사물과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심지어 당신이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워야 한다. 아마추어는 자기가 모르는 사실과 새로운 것들에 방어적이지만 프로는 학습하는 과정을, 때로는 그 속에서 불편해하고 당황하는 자기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즐길 줄 안다.” - 라이언 홀리데이


인간의 뇌는 곤란을 느껴야 지혜를 낸다. 어려움을 인식하고 개선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해결하는 게 인간의 능력이라는 뜻이다. 몇 년 전 크레텍은 고객의 문의전화를 어떤 직원은 많이 받고 어떤 직원은 적게 받아 이걸 균등하게 해야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문제의 책임자를 정해 연구하도록 했으며 몇 개월 후 콜시스템을 도입해 고객의 문의가 순차적으로 잘 배치되도록 하고 공통된 문의는 자동응답으로 대치했다. 결과적으로 전체 통화수도 줄고 상담배치도 공평하게 됐다.
문제해결을 위해 연구하다 보면 더 큰 목표로 나아갈 때도 있다. 공구상은 규모가 조금만 커져도 어떤 상품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직원이 많아지면 서로 손발 맞추기도 어렵다. 나는 제품의 수량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공구사업을 키우는 지름길이라 봤다. 따라서 바코드와 위치관리 시스템을 공구사업하시는 분들에게 꼭 추천드린다. 크레텍의 경우 전에는 직원이 1년을 근무해야 상품을 찾을 수 있었지만 위치관리 시스템 도입 이후에는 신입도 2시간이면 모든 상품을 찾게 됐다. 이렇듯 좋은 방법을 찾는 데 있어 첫째는 곤란함을 느껴 내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둘째가 이에 따르는 배우는 자세이다.

 

내가 낮아져야 채워진다


내게 사장학 개론을 쓰라 한다면 그 첫줄은 바로 ‘낮아지고 겸손해지라’이다. 나는 공구상에서 점원생활을 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공구업을 하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일까. ‘어디 잘하는 집 없나’ 하면서 어디라도 찾아가서 배웠기 때문이다. 나보다 기술이나 지식이 높은 사람, 경험과 지혜가 많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만나는 누구든, 보이는 무엇이든, 스승처럼 대하겠다고 나는 다짐했었다.
회사규모가 커져 이제 유명대학을 나온 대기업 출신자들을 고용하는데, 그들에게 아쉬운 점은 딱 이것이다. 남으로부터 배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판 좋고 경력 좋은 것만 내세우면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오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혼자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자신을 낮추고 공을 타인에게 돌릴 때 내 주변은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 찬다. 경험과 경륜은 이럴 때 들어오는 것이다. 낮추면 채워진다.

 

작은 것도 배우겠다는 태도가 혁신


우리회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혁신사례를 발표한다. 처음에는 혁신이라는 요소를 찾아내기가 어려웠지만 하나씩 체크해보면 작은 데서 출발해 큰 결실로 맺어지는 게 있었다. 늘 똑같이 하던 방법을 바꾸는 것도 혁신이고, 효율이 높아지는 것도 혁신이다. 혁신을 찾아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곤란 느끼는 일 찾아내기
2.  물새는 곳(누수 되어 쓸 데 없이 빠져나가는 것) 찾기
3.  우리보다 더 잘하는 곳 찾기
4.  장사 잘되는 신제품 찾기
5.  중간과정 줄이기
6.  속도를 더 낼 수 있도록 하는 것
7.  자동으로 되는 것은 자동으로 되도록, 굳이 사람 손을 거치지 않도록
8.  책이나 강연을 보고 실행해보기


이외에도 혁신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많다. 모두가 지식을 빌리고 지혜를 구하는 방법이다.

책임지는 사장, 빌리는 사장이 승자
직원들 가운데 혹시나 지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보시라. 혼자서만 힘들어하지 말고,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배우고 같이 힘을 합치면 안되는 일은 없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자.
너도 주인이 되고 나도 주인이 되자.
공적은 우리에게 돌리고
책임은 나에게 돌리자.”


책임지는 사장이 있으면 직원들은 더 많은 제안을 낼 것이다. 머리 세 번 숙인다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 진정한 승자는 맨 마지막에 온다. 수십 번 머리 숙여 사업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람, 아래로 아래로 더 낮아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사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의 지혜를 빌리시겠습니까, 아님 경쟁에서 밀리시겠습니까?” 우리회사 모 직원이 삼국지를 주제로 강연하며 유비가 공명에게 구한 예를 들어 이 구절을 말해줬다. 나는 빌리는 것을 택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 공구인들도 ‘밀리기’보다 ‘빌리는’ 용기, 그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동대구역 도시농업박람회장에서.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게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한다.

 

_ 최영수크레텍 대표이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