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나는 언제 가볼 수 있나요?
보통사람인 내가 통일이라는 큰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꽤 부담스럽다. 그러나 평생을 ‘통일은 힘들다, 북한은 나쁘다’라고 들으며 살아온 나로서는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이제는 정말 시대가 달라지는구나’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지금 내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면 지나가버릴 것 같아서 용기 내어 글을 쓰기로 했다. 통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며 꿈꿨던 분단국가의 한 국민으로서 내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지난 4월 27일 10시경 김정은 위원장이 걸어와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이 중계됐다. 넘어오는 순간 문재인 대통령이 ‘나는 언제 가볼 수 있나요?’하자 김 위원장이 ‘지금 함께 가보자’며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분계선을 다시 한 번 넘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데 요즘 북미회담이 난관을 만나며 여러 가지 비관론도 나온다. 그러나 멀리보고 희망적으로 봐야한다. 어느 날 갑자기 무조건 한 나라가 되는 것만이 통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단계를 거치며 더 좋은 미래로 갈 수도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통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의 비핵화는 필수조건이다. 핵무장을 고집하면 우리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도 살아남을 수 없다.
둘째.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다음세대에게 물려 줄 가장 큰 유산은 ‘전쟁 없는 나라’이다.
셋째,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주변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이 지리적으로나 정치적, 경제적으로 둘러 서 있다. 이런 나라들의 도움은 받되 주도권은 우리가 가져야 한다.
넷째. 통일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은 서로 국가를 안정시켜놓고, 중국과 대만 같은 관계라도 만들어야 한다. 모든 교류를 하며 공장도 짓고 물자도 오고가야 한다. 평양을 거쳐 중국 가는 열차도 잇고, 러시아의 가스관도 북한을 통해 들어오도록 이어야 한다. 모두에게 도움되는 방법을 찾아 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우수한 우리민족, 통일만 된다면…
나는 우리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남북교류라는 좋은 환경만 주어지면 이제 정말 능력껏 훨훨 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한은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분야의 기술력이 높다. 이것이 북한의 노동력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원과 합쳐지면 지금보다 수십 배, 나아가 수백 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현재 모든 국제적 상황들이 빠르게 진행돼 중국, 미국 등도 함께 움직인다. 물론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참고 견디며 꼭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유는 타이밍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오겠는가. 우리가 사업하면서 타이밍을 놓치면 두 번 다시 같은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걸 잘 안다. 사업도 이럴진대 하물며 국가적 대업이야 오죽하겠나. 크게 보고, 멀리보고, 과거의 잘못을 들춰내지도 말고,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일을 진행했으면 한다.
지난 5월 10일 정운찬 총리께서 이끌어온 동반성장연구소에서 문정인 외교안보특보를 초청해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강연을 열었다. 사업하는 나로선 이것 하나만 보고 서울까지 올라가기는 무리였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올라갔다. 이 자리에서 문 특보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냉엄한 현실을 인식하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동안 신중하고 끈기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문 특보는 지금의 상황을 일컬어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역사적 기회’라고 표현했다. 이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는 뜻이다.
북한에 공구 보내고, 새마을 운동 하고파
1968년 내가 해군에 있을 때 서해상 특히 연평도 백령도 지역에서 북한 포대도 보고, 당시 간첩선과의 전투도 겪었다. 또 2007년 사업을 하면서 북한과의 교류를 생각한 적이 있다. 개성에 들어가 상담도 하고, 북한에 카탈로그를 보내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탈북자를 만나보며 그쪽 얘기를 들었다. 회사에서는 탈북자를 고용하기도 했으며, 전직원 야유회를 금강산으로 가기도 했다. 새마을 회장을 할 땐 백두산에 올라 북녘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2015년 전직원들과 3억 넘게 통일기금을 보태기도 했다. 늘 북한에 관심을 두고 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다. 2007년 개성에 갔을 때 산이 붉게 벗겨진 것을 목격했다. 식량이 부족해 나무며 풀을 다 뜯어 죽을 끓여먹었다 했다. 앞으로 북에 갈 수 있다면 ‘잘 살아보세’ 새마을 운동도 펼치고 싶다.
며칠 전 유재근 한국산업용재협회 명예회장을 만났는데, 북한과 교류가 생기면 필요한 공구를 모아서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유 회장은 아주 의욕에 넘쳐있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또 일이 잘 진행되면 같이 돕겠다 했다. 20년 전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몰고 북쪽을 방문했듯 우리 공구업계도 북쪽으로 갈 길이 열렸으면 한다. 공구는 나라의 모습과 산업을 세우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단지 사업적인 영역에서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우리 민족이 북쪽 길을 여는 데에 내가 해온 공구로서 동참하고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북미회담이 잘되길 바란다. 여러 가지 난관이 생기고 국내경기는 장기불황으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공구인들께 힘내시라 하고 싶다. 다음세대를 위한 큰 변화의 기점에 우리 공구인들의 관심과 시각, 또 잘 버텨주고 인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내 눈앞의 사업도 잘하시고, 먼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지면서 오늘의 물길을 잘 헤쳐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