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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칼럼] 삼세판


삼세판


두 번 만에 그만둔다고?

삼세판이란 두 번 떨어지고 한 번 더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어지간한 사람은 두 번 안 되면 세 번째는 그만둔다. 다시 하려면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으로는 적어도 세 번은 해봐야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삼세판이라는 말 속에는 두 번씩이나 안 된 원인과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걸 알아차리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역량이 부족한지, 도전할 때 준비가 덜 된 건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유난히 실패를 많이 했던 최영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001년 10월 한국산업용재협회 18대 회장에 출마했다. 상대는 수도권의 동신 김동연 사장님. 지방사람으로는 내가 처음이었고 또 나는 선거가 처음이었다. 결과는 당연히 낙선. 3년 후인 2004년 다시 도전했다. 상대는 리스툴 이관우 회장. 그러나 결과는 또 낙선. 세 번째 출마를 하려니 솔직히 좀 부끄러웠다. 지방에서 나온 후보로는 도저히 수도권 후보를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더 열심히 뛰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웅변학원에 다니며 연습도 했다. 선거 연설문과 공약집도 여러 번 다듬었다. 다른 일정을 미루고 오로지 선거에만 몰두했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 삼세판만에 회장이 됐다. 어렵게 됐기 때문인지 온 열정과 사랑을 쏟아 부어 협회장 일을 했다.
 
업그레이드 시켜준 삼세판

이런 나의 삼세판 릴레이는 다른 일에서도 자주 벌어졌다. 1998년 당시 IMF 때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이하 AMP)에 입학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밤중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기차 타고 다니며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그때는 수업이며 과제물도 빡셌다. 이 서울대 AMP는 졸업생 중에서 사업이나 관련기관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서 1년에 3~4명에게 상을 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기수 안에서도 촌사람 소릴 들을 만큼 규모나 역량적인 면에서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동기회에서 나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떨어졌다. 다음해에 또 도전했다. 물론 떨어져 버렸다. 이렇게 두 번 낙방을 하고는 한동안 잊어버리기로 했다. 모두들 쟁쟁하신 분들이 받는데 나에겐 언감생심이라 생각했다. 2014년 다시 동기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무리 촌놈이라도 내가 하고 있는 산업공구 유통에서는 나름 잘하고 있고, 사회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고 봤다. 세 번째 도전을 했다. 드디어 삼세판인 2015년 2월, 나는 자랑스러운 서울대 AMP 대상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상은 정부에서 주는 상은 아니지만 그간 내가 받은 상 중 가장 소중한 상이다. 그냥 공구업만 해서는 만나기 어려운 분들을 만나고 세상을 보는 눈이며 판단력을 한 차원 더 높게 만들어 주었다. 마치 공부와도 같은 수상자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가슴이 벅찰 정도의 느낌을 받는다.
 
시구도 하늘이 도와서 세 번 만에

다음 삼세판 이야기는 정말 스릴 있다. 대구 삼성라이온즈에서는 주요기업 가운데 기업의 날을 정해 그 직원들과 고객들을 초대하는 행사가 있다. 이날은 시구도 하고 축하 파티도 열린다. 2015년 도전하려고 모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당시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전염을 우려해 사람들이 한곳에 많이 모일 수 없었다. 그때 같이 진행하기로 했던 경상중학교에서 포기하자 했다. 준비 하느라 애를 썼지만 안타깝게도 진행을 접어야했다. 다시 2년 후인 2017년 7월, 이번에는 새마을과 연계해 크레텍&새마을 데이를 열기로 했다. 사람들도 입장하고 피켓을 들고 응원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그만 경기가 취소됐다. 모두 허탈한 걸음을 돌려야했다. 오신 분들에게도 민망하고, 시구를 얼마나 연습했는데 허탈하기도 했다. 이렇게 야구장 기업행사는 두 번의 실패 전적을 가지게 됐다. 그만둬 버릴까 생각했다.
“삼세판인데 한 번 더 하셔야죠. 우리가 밀겠습니다.” 
임직원들이 다시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유난히 가을 하늘이 높은 9월 17일 일요일 오후 2시. 삼성과 두산 경기 전에 다시 도전키로 했다. 준비하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그날의 일기예보를 늘 챙겨보고, 지난번에 미진했던 부분이 뭔가 살펴서 경품을 주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오시는 분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고, 전날부터 애를 태우며 오던 비가 점심 무렵이 되자 완전히 그쳤다. 고객과 회사직원, 새마을 식구들은 모두 즐겁게 야구 응원에 임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렇게 그리던 야구시구를 할 수 있었다. 한 번의 시구를 위해서 무려 10회에 걸쳐 500번 이상의 시구연습을 했다. 혹시나 그라운드에서 실수할까봐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이날은 고맙게도 학교 후배라는 인연을 가진 이승엽 선수가 내 맞은편에서 시타를 해주었다. 은퇴를 앞두고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였기에 시구와 회사응원이 모두 빛났다. 삼세판만에 드디어 다 이뤄낸 것이다.
 
성공한 사람? 다시 일어난 사람

나의 삶에서 솔직히 한 번에 제대로 된 일은 없었다. 열정만 커 너무 급하게 시도했기 때문에 좌절키도 했다. 그러나 한 번에 안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또 일어서고 다시 시작하면서 얻었던 경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다고 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국민소득 100불이 3만불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과 힘듦이 있었겠는가.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중고공구로 행상을 하던 최영수가 공구상을 기업으로 만들고 키워가는 일이 어떻게 한두 번 만에 되겠는가. 나는 말이 삼세번이지 어떤 것은 다섯 번, 열 번도 넘게 했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았다. ‘잘못했구나. 다시 해보자’ 생각했다. 특히 남들이 가지 않던 새로운 길에 겁도 없이 덤벼들 때도 있었다. 실패는 당연히 밥 먹듯이 했다. 그 수많은 실패 중 성공이 나오고, 시간이 흐르면 실패는 없어지고 성공한 나무가 돼 과실이 주렁주렁 열렸다.
4차 산업으로 가는 새 길에 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경제환경이 느껴진다. 두려워말고 붙어 보자, 생각해보자. 남들은 나를 공구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본다. 그러나 나는 가장 많이 실패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다시 일어난 사람’ 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