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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발행인칼럼] 쫄지마라, 人生


쫄지마라, 人生!




 
오토바이 날다

1975년 설날 아침, 제사를 지내려 대구에서 40km 떨어진 고령의 시골 큰집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 날씨가 추워서 헬멧 앞부분에 김이 서렸다. 가다가 급경사로 길이 꺾이는 지점에서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그만 바로 앞으로 날아버렸다. 오토바이가 하늘을 날았다. 앞에는 개천이었고 그 개천 둑을 지나 십여 미터 날아갔다. 그 순간에 ‘아, 날았구나. 정신을 차리자’ 하고는 개천 저편 모래 위로 떨어졌다. 착지해보니 오토바이 쇼바는 90도로 꺾여버리고 엔진은 계속 돌고 있었다. 나는 멀쩡했다. 툭툭 털고 일어섰다. 
해군에 있을 때 헬기에서 바다로 바로 뛰어내리는 훈련을 여러 번 받았다. 못할 것 같지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사뿐히 내려올 수 있는 훈련이었다.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에 오토바이가 개울을 넘어 10미터나 날아갔는데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이 날아가면서도 멀쩡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순간에도 일명 ‘쫄지 않았던’ 덕분인 것 같다. 겁이 없어야 시야가 확보된다. 
 
사고 한번 치자!

1995년 3월, 보쉬전동공구 사업부가 설립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당시 보쉬 한국총책임자로 브론슨씨가 있었다. 브론슨씨는 한국에서 공구업 하시는 분들이 독일현지의 보쉬를 봐야한다며 우리 일행 십여 명을 독일로 초대했다. 덕분에 3월에 독일서 열리는 쾰른국제전을 볼 수 있었다. 총 4일간 열리는 쾰른전시회는 세계 최고의 전시회였다. 그중 보쉬 부스는 규모와 시스템 면에서 배울 게 많았다. 같이 간 다른 분들은 하루만 전시회를 보고, 이튿날부터는 다른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나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흘 모두 전시를 보기로 했다. 영어도 능숙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공구를 실컷 볼 수 있었다. 브론슨씨의 배려로 넷째 날 오후에 일행들이 미리 가있는 스위스 스키장에 가기로 했다. 브론슨씨는 뒤에 혼자 올 나를 많이 걱정했다. 기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자동차를 또 타야 하는 먼 곳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좀 두렵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열차를 갈아타고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참 모험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을 많이 돌아볼 수 있어 사업에 도움이 됐고, 외국에서 과감하게 혼자서 기차여행 해보는 스릴도 좋았다. 
나보다 더 용감한 모험을 한 사람도 있다. 한국산업용재협회 장호성 회장은 1980년대 초 허스크바나 대리점을 하면서 스웨덴을 방문해야했다. 난생 처음 가는 외국인데다 함께 가기로 했던 통역할 분이 갑자기 갈 수 없게 되었다. 장 회장은 굳은 결심을 하고 혼자서 몇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스웨덴까지 갔다. 어렵게 허스크바나 본사에 도착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가방 하나 들고 온 아시아 한국이라는 나라의 공구인. 그의 진심과 열정을 알아본 스웨덴 본사는 지금도 장회장 회사와 거래를 한다.
 
“내게도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실패보다는 도전하지 않는 두려움이 더 크다. 작은 목표에 도달해서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큰 목표에 도전하는 것이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美배우 월 페럴 USC 졸업식장 축사 중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세상을 두려워만 하지 말고 과감하게 한 번 뛰어들라고 말하고 싶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내 경험상 정말 맞는 말이다. 어떤 일을 이루기로 작심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참 신기하게도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생겨났다.
1987년도에 가격표를 처음 만들 때의 일이다. 당시 전산시스템은 없었고, 큰 회사에서는 공장도가격, 도매가격, 소비자가격이 다 다르게 있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못하겠다 싶었다. ‘가격표를 만들어 보자. 우리 가게에도 필요하고 고객사에도 필요할 것이다.’ 생각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우리 가격을 알려줬다가 경쟁사가 더 낮은 가격으로 팔면 어쩌느냐고 반대했다. 하지만 1987년 비닐 바인더에 표준가격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애를 먹으며 항의도 많이 받았다. 가격표를 만드는 과정에서 직원들 수고는 말할 것 없고 거래처의 이해와 도움이 꼭 필요했다. 설마 이해해주겠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들 이해해주고 따라와 주었다. 주변의 도움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그걸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다. 가격표를 만든 지 30년이 되었다. 2년마다 만들다 보니 이제 16판째다. 새삼 용기있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전산, 카탈로그와도 맞물려 삼위일체로 돌아간다.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을 저질러버리니 한국공구분야에 표준가격제가 정착되었다. 
 
“꿈이 크지 않으면 시작하기 전에 실패한 것과 같다.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계획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계획을 달성하긴 했지만 원대함이 부족했던 경우이다. 계획이 원대하지 못했다는 건 근본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결코 두 번째의 실패를 원치 않는다.”    마크 저커버그 / 페이스북 창업자
 
사고칠 땐 내 옆에 누군가를… 겁먹을 필요 없다

일을 저지를 때 내 나름의 법칙이 있다. 나보다 나은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로 갈 때는 내가 이끈다기보다 내 주위에 능력 있는 분들이 같이 해왔다. 나도 자연스레 그 분의 지식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회사 전체가 바뀌고 변화한다. 물론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 분 중에 한 분만이라도 적응하고 연결하면 성공이다. 야구에서도 3할 타자면 잘 치는 선수가 아닌가. 
이 원고를 쓰는 현재 나는 도쿄 출장 중이다. 오랜 시간 협상이 안 되던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에 타결이 됐다.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다들 말했지만, 크게 그린 그림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사업이든 인생이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쉽고 편한 것만 찾으면 사업이 안 된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한번 저지르는 과감성도 필요하다. 산을 오르다 큰 짐승을 만났다 치자. 시쳇말로 쫄지 않아야 잡아먹히지 않는다. 가슴을 펴고 큰물에서 논다는 생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짜자. 경제분야 등에서 안 좋은 소식도 들리지만, 우리 공구인들 겁먹거나 쫄지 말자. 이전엔 더 큰 어려움도 넘어왔고, 젊은 시절엔 정말 겁도 없이 장사해왔지 않은가. 물론 세상은 자꾸 바뀌고 변화한다. 그럴수록 당장은 안 풀리는 문제도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화하고 또 사람이 바뀌면 풀리게 돼 있다. 절대 겁먹지 말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길은 열린다. 개울가에 처박혀도 무릎하나 까지지 않고 툭 털고 일어서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