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LIFE & CULTURE

툴&아트

 

공구덕후 좋아할 전시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합판, 종이상자, 테이프 등 일상적인 소재를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아티스트 톰 삭스. 그에게 있어 공구는 작품을 만드는 도구를 넘어 작업의 중심을 이루는 상징적인 매개체이다. 그의 전시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통해 공구로 쌓아올린 우주를 바라보자.

 

 

톰 삭스가 표현한 수작업의 우주


2021년, 독일 함부르크의 전시장. 톰 삭스(Tom Sachs)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희토류(Space Program: Rare Earths)>전시가 대중과 만났다. 2007년 화성, 2012년 달, 그리고 이번엔 ‘희토류 행성’이라는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은 그의 전시는 기존의 우주 탐사 전시와는 확연히 달랐다. 나사(NASA: 미 항공 우주국)의 실물 로버나 모형 로켓은 없지만 대신 테이프와 나무합판, 플라스틱 튜브로 만든 DIY 우주 장비들이 관객을 맞이했다. 이 전시에서 톰 삭스는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가 아닌 ‘가짜지만 진짜처럼 기능하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MDF 합판으로 만든 관제 센터, PVC 파이프로 연결된 통신장치, 낡은 배터리와 개조된 전동공구가 달린 우주복 세트. 모든 작품이 그 조악함 속에서 설득력을 지녔다. 바로 이 점에서 톰 삭스는 다른 예술가들과 구분 지어진다. 그의 작업은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복제품이 아닌, 수작업의 흔적과 공구를 이용해 만든 작품으로 인간적인 우주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구에 매료된 예술가, 톰 삭스


미국 뉴욕 출신의 예술가 톰 삭스는 건축과 조형예술을 전공한 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톰 삭스는 헬로키티와 성탄절을 결합한 충격적인 작품 ‘Hello Kitty Nativity’를 백화점 쇼윈도에 내걸었다. 값싼 합판과 덕트 테이프를 사용해 조악하게 마구간을 구현했는데 그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것은 헬로키티로 표현한 아기 예수였다. 신성 모독의 한 장면과도 같았던 이 소란은 <뉴욕 데일리뉴스>의 메인 기사를 장식했다. 기독교 단체의 항의로 작품은 하루만에 철거됐지만 이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톰 삭스는 이후 소비자본주의와 브랜딩에 대한 도발적 해석으로 예술계를 주목시켰다. 하지만 그를 알린 진정한 전환점은 2000년대 들어 톰 삭스가 시작한 ‘우주 탐사’에 대한 탐구였다. 삭스는 NASA가 주도한 1960~70년대 아폴로 계획에 매료됐다. 그의 언급에 따르면 나사는 ‘과학계의 샤넬’이자 전 세계인을 열광시킨 하나의 ‘브랜드’였다. 이후 그는 인간과 기계, 기술과 손작업, 이성과 감정이 교차하는 경계를 탐색하게 되었고 이는 그가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이어 온 전시, <스페이스 프로그램>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공구가 있었다.

 


스페이스 프로그램, 우주 탐사의 재구성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다. 작업실과 전시장을 훈련소처럼 만들고 예술가와 조수들은 모두 팀원으로 참여해 나사의 로켓 발사와 유사한 절차를 반복한다. 우주선을 제작하고, 우주복을 꿰매며, 월면차를 MDF 합판과 강철로 직접 만든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용되는 공구는 그 자체로 작품이자 퍼포먼스다. 전동드릴·그라인더·톱·망치까지. 전시장에 존재하는 공구는 복잡한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언어로서 작용한다. 드라이버를 들고 볼트를 조이거나 가위로 도면을 따라 절단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곧 작품이 되는 것이다. 전시의 모든 것은 ‘수작업으로 만들어 낸 완전성’이라는 삭스의 철학을 보여준다.
전시 관람객 역시 작업 과정 전체를 경험한다. 우주선 제작, 우주식량 조리, 심지어는 훈련 중 규율 위반 시 벌칙까지 경험하게 된다. 8월 현재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톰 삭스의 전시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톰 삭스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나사를 분리하고 또 정렬해야 한다. 톰 삭스는 이 과정을 관객이 ‘나’ 라는 존재와 자신의 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톰 삭스에게 공구란 작업의 수단인 동시에 작품의 중심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수많은 공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름답다


이처럼 삭스는 공구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철학적 사물로 다룬다. “완성보다 중요한 건 과정이며, 손으로 만든 흔적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톰 삭스. 그가 만든 우주선은 실제로 날 수 없고 그가 만든 작업실 역시 진짜 화성에 도착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전동드릴로 박은 나사와 미세한 실밥까지 모두 살아 있다. 작품에서 그가 강조하는 수작업의 흔적은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사람의 손’에 대한 존중이다. 자의식 없는 반복작업이 아닌 한 번의 ‘잘못된 조립’도 작품 서사의 일부다. 공구를 쥐는 손의 감각, 힘의 크기, 모서리를 다듬는 방식 그 모든 것이 톰 삭스의 세계에선 의미를 갖는다. 톰 삭스가 말한 “나는 손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다”는 메시지 속 공구가 가진 미학이 바로 그것이다.
톰 삭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몇몇 공구 브랜드를 자주 사용한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는 미학뿐 아니라 성능적인 부분에서도 신뢰를 받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1994년, 뉴욕 바니스 백화점에 전시된 ‘Hello Kitty Nativity’ 톰 삭스가 대중에 알려지게 된 작품이다.

 

톰 삭스의 작업대이자 작품 중 하나. 여러 종류의 수공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톰 삭스가 레더맨 사와 콜라보하여 만든 멀티툴 ‘Charge+’. 100개 한정판으로 제작되었다.

 

 

공방과도 같은 톰 삭스의 스튜디오


삭스의 스튜디오는 단순한 예술 작업실이 아니다. 공구가 정렬된 벽면, 그라인더 옆에 붙은 체크리스트, 낡은 작업복 등은 마치 공방을 연상케 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디자인된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작업실의 분위기는 실험실에 가까울 정도로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실패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끊어진 전선, 타버린 납땜 흔적, 재사용된 나사통… 이런 것들이 쌓여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삭스는 이러한 자신의 스튜디오를 두고 ‘살아있는 공간’이라고도 말한다. 그의 스튜디오는 단지 작품이 탄생하는 곳이 아니라 공구와 사람이 대화하는 현장이며 실수와 복구가 교차하는 무대라 할 수 있다. 
작품 활동 초기, 브랜드 로고와 상업적 아이콘, 대량 소비의 상징물을 자주 등장시켰던 톰 삭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만드는 방식’ 자체에 천착하게 되었다. 특히 아폴로 시대 우주 탐사의 DIY정신, 직접 조립하고 수정하며 테스트하던 엔지니어들의 모습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이는 삭스가 자신의 조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협업하는 공방과도 같은 작업 시스템으로
발전하였고, 그럼으로써 그가 사용하는 공구들, 드릴·그라인더·스패너·실리콘건 등은 곧 예술의 재료이며 주제가 되었다.

 

Tool Wall(2012). 작품 상단, 여러 개의 마끼다 전동드릴이 보인다.

 

 

인간에게 있어 예술과 공구의 의미


톰 삭스의 작업은 예술을 넘어 인간의 노동과 실험, 실패를 찬미한다. 그의 공구는 깨끗하지 않으며, 작품은 흠집투성이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창조의 모습을 본다. 그는 실패한 부품도 전시장에 전시하고 불균일한 용접 자국 역시도 숨기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단순히 미완성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만들고 고치고, 다시 실패하고 또다시 시도하는 것의 연속임을 톰 삭스는 말하고 있다. 
2025년, 우리가 톰 삭스의 작품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빠름과 효율의 시대 속에서, 공구와 손작업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외치는 예술가. 그의 작품은 고도로 정밀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숨결과 흔들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공구가 있다. 그의 공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감정, 세계를 향한 질문을 담은 조각도 같은 것이다. 오는 9월 7일까지 서울 DDP뮤지엄에서 진행되는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무한대>전에 방문해 보자. 그곳에서 우리 인간에게 있어 공구가 가진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톰 삭스 <스페이스 프로그램> 서울展

 

 

톰 삭스의 <스페이스 프로그램> 시리즈 중 다섯 번째 미션 ‘무한대’展이 로스앤젤레스, 뉴욕, 샌프란시스코, 함부르크에 이어 서울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는 달 착륙선과 우주 지상 임무 통제센터(MCC)의 재현, 그리고 우주에서 발굴된 유물과 화석을 전시하는 섹션을 텅해 우주와 지구를 넘나드는 실감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가 시각적 경험을 넘어서는 다양한 체험을 기대해 보자.

 


 

_ 이대훈  / 참고자료 _ tomsachs.com, wikipedia.org, meer.com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