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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PEOPLE]

 

낡아 못쓰는 공구 예술작품으로 환생

 

공구 조각가 황병석

 

 

 

 

공구거리를 거닐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낡고 때탄 공구 더미들. 수리하고 판매하는 입장에서 폐공구는 A/S의 재료이지만 예술가에겐 작품의 재료다. 공구 조각가 황병석은 수명이 다한 공구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공구를 도구로 공구를 소재로


여기 하나의 작품이 있다. 형태는 곧장 푸른빛 전갈을 떠올리게 한다. 메탈릭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두 개의 집게발과 바닥을 지지하는 여섯 개의 다리. 여러 부위가 조합된 몸통으로부터 이어져 한껏 추켜세워진 꼬리. 그리고 꼬리 끝에 내밀어진 노란색 뾰족한 침까지. 얼핏 기이하지만 한눈에도 근사한데 더욱 놀라운 건 작품을 만든 주 재료가 전동드릴이라는 점이다.
공구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는 많다. 어쩌면 작품은 공구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손만 가지고 만들 수는 없을 것이므로. 하지만 공구 조각가 황병석에게 공구‘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포괄한다. 공구를 도구로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와 공구를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는 의미.
“전동드릴을 작업 도구로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작품의 재료가 되어버린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전동드릴 말고는 대체할 만한 게 없는데 어쩔 수 있나요. 드릴에게 ‘미안하다’ 하면서 분해해 소재로 사용했던 거죠.”

 

아트토이처럼 각 부분이 조립되는 공구 캐릭터.

 

망가진 공구, 작품으로 탈바꿈되다


황병석 조각가는 현재 경북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대학원 입학 전에는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조형물 제작 업체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일터에서 여러 공구를 이용해 관공서나 업체 등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조형물을 만들던 과정에서 공구의 매력에 빠졌다.
“일하면서 공구를 사용하다 보니까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기능도 엄청난 것 같고. 공구만 보면 눈이 반짝반짝해지곤 했는데 그러다 이걸로 작업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해 돈을 벌겠다는 욕심보다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입학했다는 그. 대학원 입학 후 근처에서 공구가 많은 곳을 찾다가 북성로 공구골목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잔뜩 쌓여 있는 낡고 때탄 폐공구들과 마주했다. 
공구상이 고장 난 공구들을 버리지 않고 쌓아 두는 이유는 망가진 공구를 분해해 그 안의 부품을 다른 공구 수리에 사용하기 위해서다. 제조사로부터 탄생되어 수명이 다해 망가질 때까지 죄거나 쪼거나 두들기거나 자르거나, 오직 한 가지 역할만을 수행하는 공구는 수명이 다하더라도 분해돼 또 다른 자신의 부품이 되어버린다. 어쩌면 황병석 조각가는 그런 공구들이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일에만 얽매여 평생을 다하는 공구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생명이 다한 폐공구에 새 역할을 부여하려 했던 거죠. 지금까지 맡고 있던 역할과는 전혀 다른 ‘예술 작품’이라는 역할을요.”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 전동공구


그렇게 시작한 공구 조각. 하지만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공구 종류가 너무 많았다. 소재에 대해 면밀히 알아야 그것의 특성이나 구조 등이 작품 제작과 연결되는 법인데 알면 알수록 방대해져만 가는 공구의 종류에 살짝 주눅도 들었다. 공구 사용법에 대해 알기 위해 목공방에도 다녔지만 배울수록 끝이 없겠다는 생각에 그만 두었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자.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공구는 전동드릴이다. 이상적으로 균형 잡힌 전동드릴 외형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그리고 매력적인 색상도. 단순한 컬러의 기타 공구들과는 달리 전동드릴 등 전동 공구들은 파랗고 빨갛고 노랗다.
“전동드릴의 외형이 가장 이상적으로 예뻐서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전동드릴은 대부분 좌우대칭이잖아요. 대칭이 맞으면 그것을 소재로 뭔가를 만들기 좋거든요. 또 사람들 열 명 백 명에게 물어봤을 때도 매력적인 외형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 전동드릴로 작품을 만들면 관람자들의 마음에 더 가깝게 다가갈 거란 생각을 했죠.”

 

올해 2월 공구 전시로 개인전을 열기도 한 황병석 작가.
 

 

두 계열의 공구 조각… 앞으로 계속해 나갈 것


황병석 조각가의 작업실에서는 수많은 공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스물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와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공구가. 전부 다 그가 직접 구입한 공구들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시 보쉬, 스탠리, 디월트 등 전동 제품들. 전동드릴은 그의 명함에도 당당히 그려져 있을 만큼 황병석 조각가의 작품은 전동공구를 기반으로 한다.

 


그가 만드는 공구 조각 작품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앞에서 묘사한 공구를 소재로 하여 만든 조각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공구의 모양을 본떠 FRP(섬유강화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공구 캐릭터다. 
“둘은 완전히 다른 계열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조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캐릭터 만드는 편이 조금 더 수월하죠. 디자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요. 그런데 폐공구를 분해해 새로 만드는 공구 조각은 정말 쉽지 않아요. 머릿속에 그리는 작품 모습을 구현하기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두 방식 모두 해 나갈 생각이에요”
작가는 공구 캐릭터들을 더 만들어 하나의 사회를 꾸며 볼 계획이다. 또한 작은 크기의 캐릭터 뿐 아니라 정말로 커다란 공구 캐릭터를 조형물로 제작해 그 작품을 넓은 실외 장소에 세우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저는 제 명함에도 적혀 있는 조각가라는 직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에요. 사실 조각은 디자인과는 다른 순수 예술이라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제 머릿속에 이미 수많은 작품들이 그려져 있거든요.”
앞으로 만들 작품에 대한 기대에 황병석 조각가의 심장은 오늘도 힘차게 두근거린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