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이야기를 욕심없이 들어줘라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도 주고, 상처도 준다
우리는 부모가 나를 사랑으로 보살펴준 것을 고마워하면서도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으며 성장해 왔다. 우리가 상처를 받았던 것은,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들이 우리 자녀에게 적합한 양육방식을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자녀들이 자신의 색깔을 바로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부모가 자녀의 어떤 부분을 장려하고 어떤 부분을 통제해야 하는지 효율적인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방법으로 돌보느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자녀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가 없다. 부모는 사랑을 주고 있지만 자녀는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니면 실제로 자녀 스스로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떤 부모는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수 있다. 부모의 취향에 따라 음식을 보충해 주거나, 부모가 원하는 식으로 자녀에게 부담스런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자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 채 ‘함께 하기’란 부모 자녀 모두에게 효율적이지 못하다.
자식을 알고 싶어 화를 내는 부모들
부모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어 애태운다. 말로 소통되지 않자 아이들을 야단치고, 때리고, 벌주는 등 성급함을 나타낸다. 이는 다른 방법에 대한 포기를 의미한다. 예전의 자녀교육 방식에서 얻어진 효과가 불만족스럽다면 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자녀교육 방식도 꾸준한 연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먼저 왜 자녀의 마음을 알고 싶은지 자신에게 물어보라. 내 마음 편하기 위해서, 혹은 자녀생활을 더 잘 통제하기 위해서라면 부모의 마음에 있는 자녀의 존재성을 인정하는 법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자신의 과거 경험과는 무관함을 인정하고, 자녀의 미래는 자신이 열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다.
자녀양육 방식에 가장 기본적인 것은 부모가 자녀의 말을 ‘들어주기’이다. 이는 허락한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있는 그대로 귀 기울여서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준다면 더 좋을 것이며 이것이 부모와 자녀가 소통하는 기본이 될 것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부모가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인정해 주는 마음가짐은 좋은 부모 되기의 기초작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기초 없이 부모자녀가 소통하는 것은 부모자녀 둘 중 누군가의 주도로 이어지게 돼, 나중에 상처가 된다
순둥이가 되길 강요하지 마라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부모가 아직 잘 모르는 자녀 세계같다.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순해지고 예상보다 빨리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가는 것을 상담현장의 많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의 문제는 가정에서 시작되고 가정에서 풀린다’고 감히 확신한다.
과거의 어른들은 아동이 태어나면 순종하는 아이로 키우기를 원했으며 순종하지 않으면 체벌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아기들은 자신을 돌봐주는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과 특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긍정적인 양육이란, 아이의 의지를 꺾지 않고 키워야 아이가 스스로에게 확신에 차고 남과 협력도 하고 남을 동정할 줄 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는 자녀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아이가 실제로 굳센 의지로 자랄 때 마음을 열 줄도 알고 부모의 요청에도 기꺼이 협력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이제 네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단다
오늘날은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 자녀 스스로 자발적인 동기를 가지지 못하는 데 자녀양육의 고민이 있다. 자녀에게 물질적인 접촉을 너무 풍부하게 하는 부모는 미숙함을 범하는 것이며 성장하는 자녀에게 많은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자녀를 신체적으로 안락하게 해주려는 보호본능과 물질적 만족을 주려는 것은 부모가 자기 마음 편하게 하려는 안일함일 수 있지 않을까. 또는 부모가 세상을 보는 눈이 편파적일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안일하고 의존적으로 편파적인 시각 아래 자란 아이는 의지도 약하고 협동할 줄 모르는 성인이 된다.
이제 아버지가 자라 온 방식도 아니고 어머니가 자라온 방식도 아닌 그 아이만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을 자녀 스스로가 알아차리게 될 때 부모역할은 자녀와 부딪히는 관계에서 벗어나 멀리 보는 관계로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의지가 강하면서도 협동할 줄 아는 아이가 된다면, 친구들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반항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 확신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이것부터 실천해 보자.
“자, 이제 네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단다” 라고 아이에게 말하며 부모의 가치나 욕심을 버리고 아이의 눈을 보며 진지하게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렇게 한다면 부모가 없는 먼 훗날의 세상에서도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 모두의 염원처럼...

글_나양수
대구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외래교수
나눔 아동가족상담 예술치료연구소 소장
053-761-0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