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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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대한민국에서 한복을 이야기할 때 박술녀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결혼식, 국가 행사, 드라마 및 영화 의상으로 사용된 수많은 한복은 시간이 지나며 잊혀질지 몰라도 ‘박술녀 한복’이라는 이름만큼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유행을 좇기보다 전통의 결을 지키고 빠른 성공보다 오래 남는 옷을 선택해 온 사람. 박술녀 한복 연구가의 48년을 들여다봤다.

박술녀 한복 연구가는 확실하고 꼼꼼하면서 흔들림이 없다. 그의 한복은 단순한 의복이 아닌 평생을 바친 시간과 꼿꼿한 태도의 결과물이다. 느려도 정직하게. 힘들어도 정확하고 바른 것을 추구해 왔다. 그래서 그의 작업실은 조용히 바늘만 움직인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아 우리의 전통 한복을 만들어 낸다.

“한복은 중요한 날 입는 옷입니다. 단순히 꾸미는 옷이 아니라 사람을 바르게 만드는 옷이죠. 입는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는 옷이기도 해요. 한복은 금방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닙니다. 사치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유행처럼 금방 바뀌는 옷이 아닙니다. 실용성보다 격이 있어야 하죠.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려할 때는 한없이 화려해야 하는 옷이 한복입니다.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으셨으면 합니다. 외국의 명품 패딩, 명품 가방도 좋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계절에 맞는 제대로 된 한복 서너 벌쯤은 소유하며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옷이니까요.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만이라도 한복을 입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술녀 한복은 멀리서 보면 선명하고 가까이 다가가면 품격이 드러난다. 때로는 화사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한복이 더 많은 사람의 일상과 시선 속에 놓이길 바란다. 박술녀가 다양한 대중매체에 한복을 협찬해 온 이유다. 드라마 ‘왔다! 장보리’, ‘돈꽃’, ‘경성스캔들’, ‘추노’, ‘우주메리미’ 등에서 박술녀 한복은 극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한복은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옷이 아니다. 태어날 때 처음 입는 옷이 되고 혼례의 예복이 되며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조용히 곁을 지킨다. 수많은 이야기를 연기로 전해온 배우 이순재, 김수미, 김자옥 역시 생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한복을 입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명배우들의 마지막 길에 박술녀가 정성 들여 만든 한복이 함께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박술녀는 한복을 제작할 때 원단과 더불어 만드는 사람의 실력과 정성을 중요시한다.
“좋은 비단도 만드는 사람을 잘못 만나면 그냥 상품이 됩니다. 제대로 된 한복은 원단 선택, 재단, 바느질, 다림질까지 모두 사람의 손을 일일이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에 정성이 들어가야 좋은 옷이 탄생합니다. 만드는 사람도 아무나 들이지 않아요. 저와 오래 함께한 가족 같은 제자와 식구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 만들죠. 저는 모든 과정을 직접 보고 확인합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최고의 한복만 만들어 냅니다.”

박술녀 한복 연구가의 출발점은 넉넉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배불렀으면 이 길을 끝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돌아갈 곳이 없어서 중간에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고.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어머니는 언제나 한복을 입은 고운 모습이었다. 외출을 하거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늘 한복을 단정히 갖춰 입었다고. 그 모습은 자연스레 한복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고 나도 한복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더불어 박술녀의 어머니는 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고 제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한복 제작의 길을 본격적으로 걸었다.
“제가 문하생이었던 시절에는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오직 먹고 자고 일하기만 했죠. 새벽 2시에 잠들었다가 아침 8시에 다시 바느질 앞에 앉는 생활을 대략 7년 넘게 했어요. 한 달에 하루 쉴까 말까. 힘들어도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는 생각으로 노력했어요. 그렇게 7년을 넘기니 선생님께서 독립하라고 하셔서 1986년 서울 군자동에서 독립했죠 이후 그저 열심히 했어요. 쉼 없이 했죠. 체력이 그만큼 받쳐줘서 가능했고요.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찾아주는 분들이 많아졌죠.”

박술녀의 하루는 바늘에서 시작해 바늘로 끝난다. 수십 년을 손에서 놓지 않은 바늘은 이제 도구라기보다 몸의 일부다. 바느질은 빠를수록 잘하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을수록 잘하는 것이다. 바느질을 통해 만들어지는 선도 하루 이틀 반짝해서는 절대 쌓을 수 없는 선이 있다. 그래서 바늘은 가장 소중하면서 정직한 공구다. 좋은 바늘과 실로 만들어내는 한복의 선은 한복을 제작한 사람의 태도와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늘뿐만이 아니라 자, 가위도 중요하죠. 작업대 위에서 가장 자주 움직이는 도구는 자입니다. 이미 재본 곳도 다시 잽니다. 그 과정이 번거롭다고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재는 건 몇 번을 해도 괜찮아요. 틀려도 다시 하면 되니까. 급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재야 합니다. 인생도, 일도 마찬가지죠. 반면 자르는 건 신중해야 해요. 가위로 한 번 자르면 그것으로 끝이니까요. 자르는 것은 쉽게 해서도 안 되고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다림질도 좋은 다리미가 중요한 게 아니죠. 얼마나 정성껏 다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한복을 짓는 것은 인생과 비슷합니다. 빠르게 결과를 내는 사람보다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 결국 남죠.”
‘박술녀 한복 스튜디오’에서는 다양한 한국 소품을 배경 삼아 촬영이 가능하다.
박술녀 한복 연구가는 비단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코로나19 시기 비단을 대량으로 구매한 사연도 많이 알려져 있다. 코로나19로 결혼식과 각종 행사, 국가 의전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한복 업계는 사실상 멈췄었다. 대부분의 한복집과 원단 상인들은 비단 주문을 중단했고 일부는 폐업하거나 생산을 멈추기도 했다고. 그때 박술녀 한복 연구가는 오히려 국내 비단 생산이 완전히 끊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코로나19 당시 시장에 나가보니 외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한국 비단을 대량으로 사서 창고에 쟁여 놓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때 비단을 사지 않았으면 나중에는 돈이 있어도 비단을 구할 수 없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내 직조 장인들이 만든 비단을 의도적으로 구매했었죠. 한국 비단을 한국 사람이 지키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한복을 지키고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서울 종로에 위치한 인사동은 관광 상권이면서도 전통 공예·서화·고미술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긴 세월 청담동 사옥에서 활동해 온 박술녀 한복 연구가는 지난 2025년 5월, 인사동에 새로운 지점을 오픈했다. ‘박술녀 한복 인사동점’은 단순한 판매 공간이 아니다.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박술녀 한복 스튜디오’와 함께 한복을 의례복이 아닌 문화 콘텐츠로 소개하고 있다.
“인사동은 외국인 관광객과 2030 세대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공간입니다. 박술녀 한복 인사동점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내가 왜 평생 한복을 했는가를 보여주는 정리의 공간이기도 해요. 물론 사업을 영위하려면 매출도 중요하죠. 하지만 후대에 남기고 싶은 한복 철학과 기준을 제시하는 장소로 외국인 관광객과 2030 세대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커요.”

박술녀 한복 연구가의 제자를 희망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가 제자를 뽑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솜씨가 아니다. 우선 인성을 먼저 본다고. 기술은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인성이 없으면 끝까지 못 간다. 실력이 뛰어나도 성향이 거칠면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2026년 목표를 묻자, 그는 웃으며 말한다.

“제 옆에 남은 좋은 사람들과 앞으로 쭉 가는 거죠. 그냥 지금 해 온 것처럼. 그저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한복을 손으로 만드는 일은 재능과 함께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라 인성도 중요하고요. 건강도 중요해요. 2026년 새해 모두 건강을 잘 챙기시면서 좋은 일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공구든 한복이든 결국 남는 것은 같다. 기술은 기본이고 노력은 필수이며 그 모든 것을 오래 붙잡아 주는 것은 인성이다. 바늘 하나에 인생을 바친 사람은 그렇게 오늘도 자신의 업을 조용히 이어간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