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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출연 스무 살 이평화 대장장이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를 거치며 수행하는 학업의 목적은 결국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 16년의 시간을 보내고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
이평화 대장장이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입학 대신 대장장이라는 꿈을 향한 발걸음을 걸어 왔다. 5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2005년생, 만나이로 스물. 이평화 대장장이는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우연히 대장장이라는 직업을 접하게 됐다. 유튜브를 통해서다. 집에서 사용하던 화목 보일러에 장작 때는 일을 도맡아 할 만큼 불을 좋아하던 소년 이평화는 불 앞에서 일하는 대장장이들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유튜브에서 보여지는 불로 쇠를 달구고 망치로 때려 무궁무진한 도구들을 만들어 내는 대장간 모습에 푹 빠져버렸다. 혹한 그는 부모님께 선언했다. “나 대장장이가 될래요.”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보통의 부모였다면 아들의 말을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귓등으로 흘려 넘기거나 혹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공부나 하라며 핀잔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평화 군의 부모님은 달랐다. “멋있네, 좋은 직업 같다. 평화 너는 만드는 걸 좋아하니 잘 선택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대장장이가 되려면 기술을 배워야 하지 않겠냐” 라며 충복 보은의 대장간 체험장을 소개시켜 줬다. 집인 전북 진안군에서 버스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열다섯 살의 나이에 이평화 군은 보은의 자취방에서 홀로 지내며 대장간 일을 배웠다.
아침 여덟 시에 대장간에 나가 연습하고 일 배우다가 저녁 일곱 시쯤 자전거를 타고 자취방으로 돌아갔던 그때의 나날들. 대장장이 일을 시작한지 이제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당시의 기억은 강하게 남아 있다. 화덕 자리를 주며 “여기가 네 자리니까 여기서 너 만들고 싶은 거 실컷 만들어 봐”라고 말하던 체험장의 선생님들. 이평화 군은 그곳에서 직접 접하는 대장장이 일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망치로 쇠를 때리면 쇠가 변해가는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그 변화 과정이 자신의 실력에 따라서 또 달라지는 것 역시도 느껴졌다. 뭔가를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매력 외에 그것 또한 대장장이의 매력이었다. 시간을 들여 배우고 경험하면 마치 ‘레벨 업’을 하듯 실력이 나아지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 대장장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계속해 배움이 재미가 있었다. 보은대장간에서 이평화 군은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20대 혹은 30대라는 나이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되는 나이라 한다. 그렇다면 10대는? 더더욱 뭐가 됐든 해봐도 괜찮은 나이일 것이다. 이평화 군도 그랬다. 대장장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껴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지’라는 마음으로 도전했고. 시간이 흐르며 일로부터 느껴지는 재미는 점점 더 커졌다.
작년 1월에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했던 이평화 대장장이. 섭외 연락을 받은 처음에는 누가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열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 TV에 나온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방송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는 그이지만 방송 출연으로 대장장이라는 자신의 선택에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현재 이평화 대장장이는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지원하는 예올 장학재단과 샤넬이 파트너십을 체결해 행하고 있는 ‘예올×샤넬 프로젝트’에 참여해 작품 작업에 한창이다. 청년 공예인들과 장인들을 후원하는 프로젝트이지만 참여한 젊은 대장장이는 이평화 군과 툴 23년 8월호에 실렸던 ‘마더스틸’ 박준하 대장장이 둘뿐. 그만큼 대장장이라는 직업에는 젊은 나이대가 정말 드물다. 대부분 이평화 군의 아버지뻘, 또는 아버지보다 윗세대 분들이라고.
쇠를 다루는 것이 즐거워 오늘도 일상처럼 화덕에 불을 피우고 쇠를 녹이고 망치로 두드리는 그. 쇠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지고 작업이 조금 길어진다 싶으면 저녁 9시, 10시까지 작업장에 머무른다. 쇠를 두드리는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종종 ‘앞으로 뭐 막고 살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결론은 항상 ‘어떻게든 먹고 살겠지’로 끝난다. 부모님이 이평화 대장장이의 선택을 믿어주는 만큼 이평화 자신도 자신을 굳게 믿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나는 뭘 해도 잘 될 거야’라는 약간의 낙관. 어쩌면 오만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제 나이 스물인 것을.
그래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이평화 대장장이는 ‘돈’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대장간을 마련하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장간에 제자나 직원으로 들어가 물려받는 것이 대장간 운영의 표준이었지만 지금은 대장간들이 다 사라져버려 혼자서 직접 차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대장일에 꼭 필요한 각종 공구들이 필요한데 필수적인 파워해머(자동으로 망치질하는 공구)의 가격은 1500만 원 정도 그리고 그라인더나 연마기 역시 몇백만 원 수준이다. 이평화 대장장이는 대장간 마련을 위해 종종 들어오는 작업 의뢰를 수행하며 크지 않은 액수이지만 돈을 모으고 있다.
지금 그는 열다섯 살 무렵 자신이 했던 대장장이라는 선택에 후회는 전혀 없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 겁먹고 대장장이 쪽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상상도 안 된다고 이평화 대장장이는 말한다.
이평화 대장장이의 인스타그램(@____dwarf)계정명과 프로필사진은 ‘드워프(난쟁이)’다. 판타지 세계 속 드워프는 땅딸막한 체구에 거친 이미지의 캐릭터이지만 뛰어난 손재주로 뭐든 잘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의 상징으로 통한다. 이평화 군은 드워프 같은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고, 진짜 실력으로 인정받는 대장장이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대장장이 일로 제품만 만들면 기술자가 되겠죠. 하지만 저는 제 생각을 담아낸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기술자라기보다 예술가로 사는 게 꿈이에요. 그러려면 지금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죠. 그런데 기술 없이 작품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만들려면 기술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기술 익히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좋은 대장장이’가 먼저 되어야죠.”
글·사진 _ 이대훈 / 사진제공 _ 이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