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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공구인 만인보 ① 대원건축자재백화점 김도솔 시인

 

마음 아픈 이에게 
‘맥가이버’ 같은 시인 되고파

 

경북 문경 대원건축자재백화점 김도솔 시인

 

공구인으로,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지난 30여년. 김도솔 시인은 작은 어깨에 실렸던 세상의 짐을 끌어안고 또 넘어, 글로 치유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ㄴ과 ㄴ사이/ 김도솔


닫힌 빗장에는 어떤 열쇠 필요할까 
너와 나 사이를 가로지른 천근의 무게 
마음의 중량만큼이나 
무거운 게 또 있을까 

두드리면 열린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마음을 두드리는 일 쉬울 수야 없겠지 
서로가 제 안에 갇혀 
남의 문만 쳐다본다

 

- 2022년 나래시조 신인문학상 수상작

 

 

공구상에서 펜 잡고… 나래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1988년, 열 평도 채 안 되는 가게에서 보일러설비로 시작해 배관자재, 철물, 공구, 건축자재로 취급하는 품목을 늘려가며 현재의 860평 매장으로 성장해온 대원건축자재백화점. 공구들이 온 데 빼곡해 글자 하나 들어가기도 비좁아 보이는 이곳에서 펜을 쥐고 시를 쓰는 공구상 사모님이 있다. 2022년 계간시조전문지 <나래시조>에서 ‘ㄴ과 ㄴ사이’라는 작품으로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김도솔 시인이다.


“안녕하세요”, 매장에 들어서며 시인과 나눈 첫인사. 공구와 부대끼며 살아왔음에도 오히려 부드럽게 다듬어진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따스한 웃음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자연이 아름다운 도시 문경에서 나고 자란 그의 눈빛에는 들판 위 자유로운 소녀의 모습과, 한편으론 깊고 고요한 강물의 모습이 번갈아 보였다. ‘삼강에 대한 소회’, ‘굴봉산 돌리네 습지’, ‘정방사에서’ 등 시의 주제는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것들이 많다. ‘짐’, ‘무게’, ‘구겨진 마음’, ‘삭이고 부대끼고’, ‘한겨울 맹추위’ 등의 구절들은 시인이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20년 가까이 200여 편의 시를 집필해온 그에게는 어떠한 사연이 있을까. 또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 시인과 대화를 나눴다.

 

 

Q. 200여 편의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마흔다섯 살에 늦깎이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가장 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전공을 선택하게 됐죠. 4년 후 대학 졸업을 하고, 문학회에 들어가면서 시를 배우고 습작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시낭송도 하게 됐고요. 시는 인생 2막을 열어줬다고 할 만큼 제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어요. 매일 퇴근하고 밤마다, 새벽마다 공부하고 시를 쓰면서 생활은 더 바빠졌지만 오히려 활력이 되고,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Q. 공구업 20년 만에 왜 ‘시’였나요?
이십 대 때부터 장사를 해왔어요. 일층에 매장이 있고 이층에 주택이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아래층 매장으로 출근해서 저녁에 위층으로 퇴근하는 생활을 하며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것처럼 살았죠. 그땐 당연히 결혼하고 가정에 매여 사는 게 내 주어진 삶인가보다 하고 살았지 벗어나려는 생각도 못해봤고, 나 자신을 온전히 잊고 살았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여자들이 현장 사람들과 부딪히며 일하기 힘든 부분도 많잖아요. 스스로 많이 지쳐 있었나 봐요. 아이들이 성인 즈음 됐을 때 우울증이 굉장히 심하게 왔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이 시작됐어요. 걸핏하면 쓰러져 며칠씩 못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살려고 시작한 게 시였죠.

 

좌측)제15회 조지훈 예술제에서 시낭송 퍼포먼스대회 대상을 수상한 김도솔 시인 
우측)바르게살기운동 송년회 축시 낭송 자리에서 김도솔 시인(좌), 권상인 대표(우)부부

 

Q. 시를 ‘쓰자’가 아닌, ‘써야만 한다’ 같습니다.
시가 유일한 돌파구였고, 시를 만나는 시간만이 오로지 제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시를 쓰면서, 내 입으로 토해내면서 스스로가 정화되고 치유가 됐어요. 처음에는 낭송을 하면 눈물부터 나는 거예요. 그 과정을 다 지내고 나니까 온전히 시가 받아들여지는 거죠. 그런 시간들이 엄청 길었어요. 지금은 눈물 없이도 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치유가 된 것 같아요. 저는 김승희 시인의 ‘내어주기’라는 시를 참 좋아해요. 그 당시의 제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시였어요.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 부끄럽고 너무 아프게 느껴졌죠.

 

언제나 가시에 찔리고 있었다,
온 손이 가시에 찔려 불붙은 듯 뜨거울 때
사랑을 주려고 해도 손이 아파 주지 못했다,
가시를 오래 쥐고 있어 칼이 되었고 
미움을 오래 들고 있어 돌이 되었다,
칼과 돌을 내려놓지 못해 사랑도 받을 손이 없었다,

내어버려라,
나무가 가을을 우수수 내려놓듯
네 칼을 네 돌을 내어버려라,
​내어주어라,
십자가에서 온몸의 피를 다 쏟아내셨듯
네 안의 따스한 심장의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어라,


-김승희 시 ‘내어주기’ 중에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훔쳤다. 

 

 

인간 내면에 주목, 현장의 삶 담은 ‘인력시장’


김도솔 시인은 주로 현실에 대한 아픔이나 인간 내면의 따스함에 귀 기울인다. 풍자와 해학에도 관심이 많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시조’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신인문학상을 받게 된 작품도 시조다. 시조는 초장·중장·종장 3장(三章) 6구(六句)를 기본으로 한다. 그는 “형식이 짜여있어 쉬운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야 하는 점이 어렵기도 하다. 요즘은 이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Q. 시인님의 작품 중, 특별히 애정하는 시는 무엇인가요?
‘인력시장’이 가장 마음에 남네요. 공구상에서 일하며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시예요. 우리 매장이 아무래도 삶의 현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보니 더 절실하게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생계마저 보장받지 못할 때 인력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별조차 얼어붙은 칼바람 새벽 거리
오늘은 행여라도 이름이 불려질까
기나긴
하루를 팔러온
푸른 수의 푸른 손

하릴없는 연장들만 무게로 짊어진
톱 망치 대패 줄자 끌 타카 먹통이며
수평의 기울기마저
꼭짓점을 잃었다

햇볕에 언 몸 녹이는 담장에 기대서서
내뱉는 담배 연기보다 한숨이 더욱더 긴
내일은 나아지리라
스스로를 속이는

하루치 주린 목을 소주잔에 채우고
웅크려 처진 어깨가 대문 삐걱 들어서는
아버지,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가 된 사람들 


-김도솔 ‘인력 시장’

 

Q. 공구인에 관한 시라 더욱 인상 깊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가 된 사람들’은 누구를 생각하며 쓰셨나요?
요즘의 아버지들은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고 겨우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코로나 상황이 오면서는 직장마저 잃고 새벽마다 인력시장으로 내몰리는 지경까지 이르렀잖아요. 잃어버린 ‘꼭짓점’은 우리 삶의 중심점이죠. 그래도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생계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현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Q. 혹시 시인님의 아버지도 이와 닮은 모습이셨나요.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제 아버지는 공구와는 먼 종교 일을 하셨어요. 옛날 분이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시진 않았지만, 제겐 큰 울림이었고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에요. 늘 수양하시던 분이고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쓰고 다니던 단벌 신사셨는데, 제가 결혼하고서도 어디 먼 길 갔다 오실 때는 잠깐이라도 와서 얼굴만이라도 보고 가셨어요. 아버지께서는 30여 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그때의 뒷모습이 아직도 아리고 아프게 느껴져요.

 

먼 길 출타했다 돌아오는 길이면
정류장 근처 딸네 집을
바람처럼 들러서
무심히
냉수 한 사발
목마르다 청하신다

단칸방 낮은 문턱 발 들이지 않으시고
손주 손에 쥐여주는 손때묻은 동전 몇 닢
지그시
내려다보시며
머리 한번 쓰다듬고

정류장을 향하여 바쁜 걸음 재촉하는
여백 속에 오롯한 아버지의 뒷모습
두고 간
마음 큰 자락이
가슴에 박힌 깊은 잔상 


-김도솔 ‘뿌리 깊은 잔상(殘像)’

 

 

Q. ‘인력시장’ 속 아버지와 같은 공구인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지금은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보니 누구를 막론하고 다 힘든 시기잖아요. 특히 공구만 하는 분들은 더 힘들 거예요.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기다릴 수만도 없는 게 또 현실이죠. 그럴수록 조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걱정하고 조급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가 즐거워지면 그때부터 세상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인생의 폭 넓혀준 공구… 마음의 알약 같은 시 쓰고파


김도솔 시인에게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문경’과 ‘공구’는 시에서 뗄 수 없는 주제이자 인생의 깊이다. 공구에 파고들어 박사로 불릴 정도로 노하우를 쌓았듯, 앞으로는 시를 더 공부하고 자신과 같이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를 전하고 싶다 말한다.

 

Q. 인근의 명소를 주제로 한 작품들 중 ‘삼강에 대한 소회’도 눈길이 갑니다. 강은 시인님께 어떤 감각을 주나요?

가까운 곳에 문경 금천과 예천 내성천, 낙동강이 만나는 삼강이 있어요. 시간이 있을 때면 수시로 가는 곳인데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흙탕물이 엄청 불어나 있었어요. 평상시는 늘 고요하기만 하던 것이 그날따라 세차게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우리는 숱한 만남으로 인연이 되어 살아가지만 우리가 꼭 원해서 인연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물길을 따라 만나지는 강물처럼 우리도 이미 정해진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거기에는 좋은 인연도 있지만 악연도 있겠죠. 그래도 한세상 어울더울 살아가야죠.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바다까지 가야겠죠.

 

삼강에 대한 소회 / 김도솔

 

금천과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 
낯선 곳 부지불식간 서로가 맞부딪쳐 
말없이 굽이치는 속 
먹먹하고 뜨겁다 

강폭이 다른 만큼 유속도 제각각인 
품 안의 낱알들도 너나없이 다른 강 
몇 굽이 어우러져야 
하나 되어 지려나 

삭이고 부대끼고 섞고 또 뒤섞이며 
유순해진 몸사위로 대지에 젖 물리며 
먼바다 닿을 때까지 
어울더울 가야지 

 

 

Q. 사물을 바라보는 깊이가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시는 찾아와야 쓴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에 영감이 찾아오나요?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때가 가장 시상이 맑은 편이라 그럴 때 주로 간단하게라도 시조를 한 수씩 짓곤 합니다. 특별하게 어떤 게, 어떤 상황이 영감이 된다고 말하기는 애매해요. 시도 때도 없고 예고도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야죠. 그렇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정리하는 편입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주로 책을 많이 읽으면서 간접 체험을 하고, 일요일엔 동료들과 여행을 하면서 어떤 주제를 두고 토론하거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처음 시를 배우기 시작할 때는 진짜 우리끼리 하는 말로 영감님이 너무 자주 와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는데, 요즘은 통 영감님의 발길이 뜸하시네요(웃음).

 

대원건축자재백화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둘째딸 권연정(우), 막내아들 권기선(좌)

 

Q. 시인님의 인생에서 공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늘 말하는 게 있죠. 나는 맥가이버를 가장 좋아한다고요. 왜냐면 맥가이버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그것을 벗어나거나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요. 그의 손에 가면 어떤 물건도 다 연장이 되고 도구가 되는 마술을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고객들이 다른 곳에서 해결 안 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오면 우리 매장에서 취급하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거의 다 해결해줘요. 뭔가 맞춰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러다 보니 점점 단골도 많이 생기게 되고, 또 거기에 가면 뭐든 다 해결이 된다고 신뢰하게 되더라고요. 공구상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제 인생의 폭이 훨씬 좁았을 것 같아요.

 

Q. 만약 시를 쓰지 않았다면 어떤 공구인으로, 아내로 사셨을 것 같나요?
지금은 시가 없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네요. 40대의 그 절망적이었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늘 매장에 매여 있다 보니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가능하면 일은 65세까지만 하고 그 이후로는 온전히 시에 빠져보고 싶네요.

 

Q. 함께 공구인으로 살아온 가족과 남편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애들에게는 항상 미안해요. 공구상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 때문에요.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고 활력이 되는 일을 찾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지금처럼 건강하게 봉사하며 즐기면서 살면 좋겠어요.

 

Q. 누군가 시인님의 시를 읽고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시나요?
제가 김승희 시인의 시를 읽고 느꼈던 것처럼 제 시도 누군가의 가슴으로 들어가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어요. 마음의 알약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시인님의 생을 한 줄의 시어로 기록한다면, 어떻게 남기고 싶으신가요?
울면서 태어났지만 나 웃으며 돌아가리.

 

_  장여진 / 사진 _  이창우(모임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