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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인 만인보 ② 영풍원예자재 김창대 대표
원에자재 및 농공구 10만 종을 판매하는 600평 면적 원예자재점과 천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는 5만 평 조경농장까지. 우리나라 조경산업 1세대 김창대 대표의 인생과 사업 이야기.
1955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일흔.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태어난 김창대 대표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직접 차린 사료공장에서였다. 갓 20대가 된 1970년대 후반, 내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여건이 그럴 수밖에 없어 동업으로 사료공장을 차렸다. 사료에 들어가는 여러 종의 단미사료(하나의 원료를 이용해 만든 사료)를 제조하다 사업 시작 일 년 만에 부모님이 농사짓던 논 열 마지기를 날려버렸다. 젊다기보단 어린 시절,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치기였다고, 실패한 과거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창대 대표는 경험했던 사료 원료를 바탕으로 원예자재, 비료 제조 쪽으로 인생의 방향을 돌렸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가지고 있던 취미가 큰 역할을 했다. 분재(盆栽)에 대한 취미 말이다.
가축 사료에 들어가는 여러 원료들은 원예용 비료에도 사용된다. 난초나 분재 등에 주는 고급 비료의 원료로. 사료 사업이 망한 뒤, 대표가 취미로 좋아하던 분재 쪽의 지인이 사료 재료로 비료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70년대 후반 당시, 분재 산업과 기술이 우리나라보다 100년은 앞서 있던 일본에서 샘플을 가져와 분재용 비료를 한 번 만들어 보라고. 당시 비싼 분재는 분 하나가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을 때였다.
일본에서 비료용 샘플과 각종 재료들을 가져온 김창대 대표는 1979년, 영풍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원예용 비료뿐 아니라 각종 관련 기자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일본 원료를 이용해 우리나라에 맞는 원예자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 가운데 난초, 야생초를 화분에 심을 때 쓰는 식재는 전국에 유통되는 90%이상을 대표가 전부 공급했으며 난 진열대, 분재조각기, 산수기, 분무기 등 많은 제품을 국산화시켰다.
지인의 제안으로 일본에 갔던 김창대 대표는 사업보다 일본의 분재 기술에 빨려들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분재 키우는 법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80년대 초반, 출국이 자유롭지 않던 그 시기, 대표는 나갈 때마다 매번 3일씩 반공교육을 받아야 출국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래도 분재에 대한 공부가 그렇게 좋았다.
좋아하는 분재 키우기라는 취미는 사업 성장의 기본이 되었다. 분재에 대한 진정한 마음가짐이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각종 원예자재 가운데 대표가 개발해 난 것들이 여럿. 고급 난석(蘭石))은 현재 90%이상을 대표가 공급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대표는 제조와 유통을 함께하고 있는데 각종 비료 외에도 압축분무기, 산수기 등을 제조 중이다. 부산시 금정구 금정화훼단지 안에 위치한 600평의 넓은 영풍원예자재 매장에서는 대표가 제조하는 여러 종류의 원예자재 외에도 각종 농자재, 기본 수공구며 농공구 등 약 10만여 품목의 원예농자재를 판매하고 있다.
김창대 대표는 사업가에게 꼭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시야라 말한다. 그는 달라지는 세상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국제 정치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지금도 여권에 도장 찍을 페이지가 없어 재발행을 해야 할 만큼 매년 수차례씩 외국을 방문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절대 외곬수여서는 안 됩니다. 넓게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만 봐서는 안 되고 세계를 봐야 합니다. 10년 주기마다 환경이 변하고 달라진 환경에 맞춰 변할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겁니다.”
유통과 제조를 동시에 하고 있는 김창대 대표가 운영하는 사업체는 또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에 위치한 영풍조경이라는 이름의 조경수 농장이다. 산 5만평 면적의 조경농장에는 8000그루가 넘는 소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의 수목들이 자리를 잡고 서 있다. 그 가운데 95%정도는 소나무, 그 중에서도 육송(陸松)이다.
대표가 합천의 산을 구입해 농장조성을 시작한 건 88올림픽을 전후로 한 시기. 어떤 일을 해야 노후에 편하게 자연과 함께 지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대표는 조경수 농장을 떠올렸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 갈 때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수목원에 가 어떤 수종들이 자라고 있는지를 봤다. 그러면서 ‘이런 나무를 심으면 앞으로 십 년, 삼십 년, 백 년 후에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를 깨달았다. 그렇게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농장을 조성한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현재 농장에서 관리중인 8000그루의 나무 한 그루마다 평균 2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대표가 구성한 포토존의 나무는 한 그루에 7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무엇보다 수형(樹形)이 예쁘기 때문이다.
15m가 넘는 커다란 조경수와 자그마한 분재는 전혀 다른 존재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합천 조경농원에서 키워내는 나무들의 아름다운 수형에는 대표가 일본에서 배워 온 분재 양육 기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무를 그렇게 잘 키워 놓은 조경농장이 우리나라에 또 없다고 대표는 말한다. 다른 농장은 대표처럼 나무를 잘 키울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 들어가는 인건비가 만만찮다. 매년 봄철이 지나면 나무에서 나오는 새 순을 전부 쳐 주고 중간중간 가지를 솎아내고 자라는 방향을 잡기 위해 철사로 묶어둬야 한다. 한두 그루만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라 8000그루 모두. 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인건비에 5만평 땅에 들어가는 비료값, 산으로 비료를 옮길 트럭이며 포크레인, 나무 자르는 스카이크레인 등 농장 관리 비용으로만 한 달에 3천만 원이 넘게 들어간다.
물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그렇게 소중하게 키운 나무들이니 팔려나갈 땐 마치 딸아이 시집보내는 기분이라고 대표는 말한다. 나무가 판매돼 심길 환경이 좋지 않을 땐 판매를 거부한 적도 여러 번이라고.
사람도 미남 미녀가 있듯 나무에도 아름다운 나무와 멋진 나무가 있다. 지금껏 판매한 나무 가운데 가장 비싸게 팔린 나무의 가격은 1억2천만 원. 골프장 조경을 위해 판매된 나무다. 그만큼이나 좋은 나무는 뿌리와 줄기, 근목(根木)이 수려하다. 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 수려한 기세가 느껴진다. 그것은 사업도 마찬가지다. 대표는 사업가에게도 자기만의 중심, 근본이 꼭 필요하다 말한다. 나무도 뿌리뻗음(根)이 좋고 가운데 줄기(本)가 좋으면 그 외 나뭇가지는 키워나가면서 얼마든지 명목(名木)으로 만들 수 있든 사람도 술에 취하는 날이 있어도 아픈 날이 있어도 또는 손가락 한두 개 없더라도 근본이 잡혀 있다면 뭐든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김창대 대표는 말한다.
대표의 차에서는 항상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의 연주곡부터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이. 매장 근처에 마련해 둔 대표의 휴식 공간에는 수천 장의 크래식 LP판과 CD가 꽂혀 있다. 클래식과 나무의 공통점으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꼽는 대표. 클래식 감상이든 나무든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김창대 대표는 우리나라에 많지 않은 ‘독림가(대통령령으로 정한 요건을 갖춘 산림가)’중 한 사람이다. 나무를 보기 위해 여러 국가를 방문해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수많은 나무와 조우했다. 이제는 나무만 봐도 그 아래 흙이 어떤지, 지반이 어떤지까지 한 번에 파악이 가능하다.
대표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소나무가 자라는 국가는 러시아 북부와 북유럽의 핀란드 추운 국가들. 나무는 기온이 5도 이상만 돼도 잎과 뿌리가 움직이며 자란다. 하지만 그런 곳의 나무들은 추운 겨울이 길어 자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덜 크는 대신 나이테가 좁아 목질이 단단하고 모양이 예쁘다. 김창대 대표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전국의 공구업 종사자들에게 겨울은 더욱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계절이라 말한다.
“악조건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는 팽나무는 5백 살, 천 살까지 자라 마을의 당산나무로 자리잡곤 합니다. 나무처럼 사람에게도 겨울은 고되지만 버텨낸다면 더욱 강해지는 계절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모두 함께 이겨나갑시다."
글 _ 이대훈 / 사진 _ 변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