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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파리올림픽을 가다
2024 파리올림픽을 가다
1896년 쿠베르탱 남작은 그리스의 고대올림픽을 부활시켜 오늘같은 세계통합의 장을 만들었다.
그는 말했다. “참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4년 7월 30일, 나는 파리북역에 내리는 것으로
100주년 올림픽의 참가 첫발을 내딛었다.
파리 시내는 의외로 조용했다.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왜 사람들이 거리에 보이지 않냐고. 그랬더니 파리지앵인 그조차 “유튜브로 경기를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즐겁게 경기하면 된 것이지, 밤마다 술먹고 쓰레기 쏟아지는 축제는 곤란하다고, 파리 사람들은 말한다”고 전했다. 온라인 세상은 이렇듯 올림픽조차 변모시켰다. 한국의 지상파가 마지막으로 중계하는 올림픽이라는 이번 100주년 파리올림픽은 인류가 1900년대 산업혁명을 넘어 3차, 4차 산업혁명으로 치닫는 시대에 가장 문화적이고 품격있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여자 핸드볼 한국vs노르웨이전을 예약했다. 경기장은 파리 외곽 아레나파리쉬드. 덥고 붐비는 탓에 예약한 좌석을 찾기 어려웠다. 우왕좌왕하다 마침 한국 외교부에서 나온 주무관을 만났다. 한국응원단들에게 부채와 냉감파스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 여성 주무관과 손을 맞잡고 깡총깡총 뛰었다. “오늘 한국 꼭 이기길 바래요.” 그때부터 뭉클해진 가슴. 경기가 시작되자 애국가가 울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애국심이라고는 별로 없던 내게 닭똥 같은 눈물이 솟구쳤다. 이래서 ‘우리나라, 우리나라’ 하는구나.
경기는 노르웨이의 우세. 특히 골키퍼는 스무골 이상을 왕거미처럼 막아냈다. 옆에 있던 노르웨이 응원단에게 ‘당신나라 골키퍼가 너무 잘한다’ 했더니 그냥 웃기만 하고 춤이나 췄다. 즉 이 경기장에선 승부보단 즐기는 쪽이 우세했다. 경기 중간중간 클럽처럼 음악이 나왔고, 카메라는 춤추는 관객들을 비추며 흥을 돋웠다. 나중엔 파도타기도 하고, 마치 이건 경기장이 아니고 댄스장 같은 느낌이었다. 목이 쉬도록 응원했고 골반이 빠지도록 춤을 췄다. 나중엔 내 옆의 노르웨이 아줌마랑 2인1조로 내 평생 최고의 댄스를 선보였다. 경기 사회자 역시도 클럽 DJ처럼 춤을 췄다. 음악은 최신팝과 힙합. 열심히 뛰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이것 역시도 댄스의 한 종목처럼 느껴질 정도로 온통 축제판이 됐고, 경기결과는 노르웨이의 승리. 중계로 보신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현장의 한국사람들은 속상해하기보다 서로의 국기를 들고 얼싸안았다.
프랑스의 올림픽 경기진행방식은 마치 미국프로농구(NBA)처럼 쇼방식을 도입했다. 보는 이를 즐겁게, 수용자(받아들이는 자)의 즐거움과 재미를 극대화했다. 즐기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 이게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비즈니스로 옮겨와 보자면, 고객을 즐겁게 하는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아레나파리쉬드에서 외곽도로를 타고 50여분을 가면 베르사유 궁전이 나온다. 근대5종이 열리는 곳이다. 루이14세의 절대권력이 낳은 화려함의 극치인 이 궁전은 ‘프랑스하면 명품’이 떠올려지는 것과 연결된다. 명품이란, 그 시대의 인간정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물성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지 비싸다고 명품이 아니다. 그래서 루이14세 시대, 모든 예술가와 화가, 건축가, 정원사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구현한 곳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바닥은 모두 돌로 이뤄지고 그늘이 없기로도 유명하다. 35도가 넘는 남프랑스의 햇볕은 사람은 질식시키고도 남는다. 달궈진 돌과 사람을 태울 것 같은 햇볕 아래서 근대5종이 열렸지만 펜싱 수영의 경우는 실내이며 이외 승마와 달리기는 실외에서 이뤄졌다.
이런 상황임에도 베르사유 어디에도, 또 파리 시내 음식점 대부분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 언론들로부터 질타를 받았지만 프랑스 사람 대부분은 원래 이런 삶에 익숙하다. 특히 잠시 한나절만 참으면 넘어가는 더위 탓에 그들은 카페를 찾아 망중한을 즐기고, 우거진 숲에서 쉬기를 택했다. 이번 올림픽의 메인이슈는 ‘기후위기’. 어디에도 에어컨을 쌩쌩 틀지 않았고, 일회용 컵도 없었다. 마트의 비닐주머니도 귀했으며, 그저 기후에 맞춰 우리의 삶을 조정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루이14세로 시작돼 루이16세와 마리앙투아네트로 이어진 사치는 파리시민의 혈세를 뽑아갔지만, 결국은 프랑스대혁명을 촉발시키며 몰락했다. 뭐든 ‘차면 기우는’ 법. 기후위기 행동강령 또한 지금 우리의 문명의 이기가 가득 찼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비우고 절제하라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도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을 꼭 동반해야 함을 전달받는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주목받는 것 중 하나가 경제효과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올림픽 시설에 들인 돈을 메우느라 경기침체를 겪는 개최국도 적지 않았다. 2020년 도쿄올림픽부터는 ‘있는 것을 활용하고 더 이상 짓지 않고 부수지 않는’ 지속가능 올림픽으로 전세계가 합의했다. 이번 프랑스의 경우는 1998년 지은 월드컵 메인스타디움을 활용해서 1조5천억원을 아꼈다. 특히 가장 주목할 점은 파리 전체가 거대한 예술 자체임을 활용하여, 도시 곳곳의 문화유산을 경기장으로 확장 또는 재활용했다.
에펠탑은 비치발리볼 경기장으로, 군사박물관 (앵발리드)은 양궁장으로, 콩코르드 광장은 스케이드보드, 3:3농구, BMX프리스타일, 이번 올림픽에 첫 채택이 된 종목 브레이크댄스 등의 경기장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철인3종의 경우는 파리 시내를 관통하고 센강 다리를 건너도록 코스를 구성해, 선수들을 따라 가다보면 파리 시내 전역을 볼 수 있도록 해놨다. 경기를 넘어 파리라는 도시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도 놀랍지만, 문화유산을 경기장으로 탈바꿈 시킨 시도 또한 아주 신선한 것이었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비너스 조각상이 각 종목의 포즈를 취하고 색색깔의 오륜처럼 컬러를 발산해, 스포츠와 예술이 결코 멀지 않는 원팀(One Team)임을 과시했다. 무엇을 하든 프랑스는 기승전-예술이다.
가장 인기 있었던 에펠타워 스타디움의 비치발리볼 티켓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아침일찍 줄을 선 티케팅 행렬 속에는 ‘우리에게 비치발리볼 티켓을 파세요’라는 문구를 든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도 보였다. 난 그들에게 다가가 표를 구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들이 구한다면 나도 줄을 서고 싶었기 때문. 그 아버지의 답은 “구하면 좋지만 구하지 못해도 다들 날보고 즐겁지 않을까? 아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주고 싶다.”라고 답했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공학자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에펠탑은 철골조로만 이뤄졌다. 당시엔 ‘이런 흉물이 어디있느냐’는 평을 들었지만 지금은 파리를 상징하는 최고의 조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실제 가까이서 보면 단순한 철골조가 아니고 아주 작은 모서리까지도 예술가의 혼으로 구부리고 설계한 흔적이 보인다. 몇 백년을 내다보는 도시 공공구조물, 이를 활용해 올림픽 100주년의 메인 무대로 띄운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새삼 부럽기까지 했다. 그들은 말한다. “다시 짓기보다 있는 것을 개선하고 보수하는 것으로 파리라는 도시는 유지돼 왔다. 그래서 고층건물이 없다. 당신들이 파리를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애플워치를 차고 모바일로 통화하지만, 건물은 500년 전의 것을 개보수한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축적이다.”
새로운 개발과 무분별한 토건보다는 있는 것을 개보수하고 개선하는 쪽이 경제적으로도, 나아가 환경적으로도 유리하다는 것을 이번 올림픽은 보여줬다.
올림픽 현장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티케팅 방식이었다. 개막 1년 전 오픈된 1차에는 세트상품으로 팔고, 2차에는 낱개 경기별로 팔았는데, ‘2024파리올림픽’이라는 어플에서만 티켓을 구매토록 했다. 특이한 점은 ‘리세일 마켓’이 등장하는 것. 흡사 당근마켓과도 같은 중고거래 사이트인데, 장외에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것을 막고자 아예 공식사이트 안에 리세일 마켓을 열어놨다. 그것도 한정된 시간 안에 사고팔도록 구성되어, 나는 파리에 머무는 내내 밤이면 밤마다 이 리세일 마켓을 열어 표를 구해야했다. 원래는 마르세유의 축구경기를 끊어뒀지만, 막상 올림픽이 닥치니 한국팀의 경기를 보고 싶어 마르세유 경기를 포기했다. 대신 리세일마켓에 내놨는데, 결과는 낙방. ‘인생에 한번은 올림픽’이라해서 비싼 1등석을 구했더니, 자국의 프랑스 사람들은 그런 비싼 티켓을 원하지 않았다. 경기시작 12시간 전엔 이 재판매 시장이 닫힌다. 그럼 안팔린 표는 허공에 날리는 셈. 그런다손 치더라도 불법적인 고가 매매를 막기 위해 프랑스와 IOC는 철저하게 온라인 중심의 종이티켓 없는 올림픽을 유지했다. 현장발권을 예상하고 온 사람들은 모두 발을 돌려야했다. 다소 냉정할 수 있지만 복불복(福不福)을 막기 위해서다. 런던올림픽의 경우 개막식 티켓이 400만원을 호가했지만 이번 파리올림픽에서는 매경기가 10-15만원, 메달이 걸린 경기나 인기경기 경우 100만원을 넘지 않았다. 즉 격차를 줄이고 공정과 균형을 이번 올림픽의 시대적 과제로 삼았다. 남녀 출전선수의 비율 또한 공정하게 맞췄다. 남자여자 각 5,250명씩, 총 1만500명의 선수로 구성된 최초의 남녀동수 올림픽이었다.
철인3종 경기가 열리는 날, 파리 시내를 선수를 따라 뛰어다녔다. 미리 든든히 채우기 위해 카페에 들러 빵과 커피를 먹었더니 세상에, 5만원이 나왔다. 시내 곳곳에 경찰이 배치돼 집시로 인한 소매치기 위험이 오히려 가장 적었다. 또 경찰과 구급차는 권위적이기보다 댄스음악을 일제히 켜놓고 축제 분위기에 일조했다.
철인3종 선수들의 모습을 실제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솟았다. 키가 작은 나는 발꿈치를 들었지만 키 큰 서양남자 군중들 속에 묻혔다. 그런데 내 앞이 갑자기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당신이 앞으로 와요. 우린 당신 뒤에 설게요. 와서 마음껏 사진을 찍어요.”
미리 자리를 선점하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거리를 막고 자기사진을 찍는 사람을 딱 두 번 봤는데 한국인과 중국인. 대부분은 경기와 파리 시내를 보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센 강둑에 앉아 선수들의 경기를 보다가, 다리를 건너면 한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의 연주가 흘러나왔다. 가까이 가면 누구나 ‘나는 오래 봤으니 당신이 앉으라’는 듯 자리를 비켜줬다. 군중에 치인다는 느낌 없이 하루종일 파리를 즐길 수 있는 데는 바로 이런 양보와 배려가 한몫을 했다.
2028년 올림픽은 미국 LA에서 열린다. 80-90년대 올림픽은 각 나라에 평등하게, 또는 그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돌아갔지만, 이제는 그 시대 메시지를 가장 멋지게 말할 수 있는 국가에게 배정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2036년 서울유치를 목표로 뛰고 있다.
이번 비치발리볼 경기에서 심판판정에 항의해 한때 선수들간의 마찰이 있었다. 이때 갑자기 경기장에 비틀즈의 ‘이매진’이 흘러나왔고 싸우려던 선수들은 그만 웃음을 보이며 다시 즐겁게 경기를 이어갔다. 올림픽과 시대는 이렇게 흘러간다. 싸우지 말고 우리 다 함께 즐겁게, 또 공정하게, 그리고 지구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앞으로 전진! 그래서 4년 후 올림픽에는 내가 가기보다 내 아이를 보낼까 한다. 그 아이가 살아갈 시대 메시지 한 줄을 받아오도록 말이다.
글·사진 _ 서상희 (TOOL 편집장)
참고자료 _ 파리올림픽&IOC 공식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