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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럭셔리 브랜드 ‘롤렉스’ 롤렉스를 만든 공구와 마케팅

 

철물점 아들이 ‘롤렉스’ 창립

롤렉스를 만든 공구와 마케팅

 

어쩌면 누군가는 롤렉스를 그저 클래식한 고급 시계, 다소 올드한 느낌의 시계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롤렉스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혁신의 아이콘이라 말할 수 있는 브랜드다. 지금의 롤렉스를 만든 뛰어난 기술력과 놀라운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

 

 

 

명품 손목시계의 대명사 롤렉스


한 사람의 비전이 세계인들의 생활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한 세기 더 이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바로 롤렉스의 창립자 한스 빌스도르프(Hans Wilsdorf)다. 한스 빌스도르프는 손목시계가 여성들의 액세서리로 평가받던 시대에 튼튼하고 정확한 손목시계를 만들어 냈고, 이후 현대 사회에서는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누구나 일상적으로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창립한 시계 브랜드 ‘롤렉스(Rolex)’는 혁신적인 기술력과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독보적인 가치를 가진 명품 시계 브랜드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철물점 아들 한스 빌스도르프


한스 빌스도르프는 1881년,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주도(州都) 쿨름바흐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던 집안의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를 수식하는 문장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자이자 천재적인 마케터’ 어쩌면 한스가 혁신적인 기술자라는 수식어를 받게 된 바탕에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보고 자랐던 공구와 철물이 기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천재적인 마케터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한스 빌스도르프의 아버지 요한 빌스도르프가 운영하던 철물점은 규모가 꽤 큰 업체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한스가 12살이 된 189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철물점 사업을 정리한 재산으로 삼남매 모두가 독일 코부르크에 있는 명문 기숙학교에 입학해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훗날 한스는 “그때(기숙학교 시절)부터 내가 가진 소유물을 돌보는 습관을 길렀다. 되돌아보면 이 시기가 내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기숙학교에서의 경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최초의 방진·방수 손목시계 롤렉스 오이스터(왼쪽) 롤렉스의 상징 톱니바퀴 홈이 보이는 베젤과 백케이스

 

‘시계의 제왕’ 롤렉스 브랜드의 탄생


기숙학교 졸업 후 한스 빌스도르프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모국어인 독일어와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시계 무역 회사에서 마케팅과 시계의 정확성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시계사업의 전망에 눈을 뜬 한스는 24살이 되던 1905년, 지인이었던 은행가 알프레드 데이비스(Alfred Davis)와 함께 롤렉스의 전신인 ‘빌스도르프 앤 데이비스(Wilsdorf & Davis Ltd.)’를 창립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회중시계가 유행하던 시기. 손목시계는 목걸이나 팔찌처럼 그저 여성들이 착용하는 액세서리로만 취급받았다. 그러나 한스는 손목시계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손목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 발 앞서 브랜드 컨셉의 중요성을 인지한 한스는 자신의 제품에 새로운 브랜드를 사용하려 했고 1) 어떤 언어로도 발음이 쉬우면서 2) 짧고 3) 발음이 듣기 좋으며 4) 기억하기 쉬울 뿐 아니라 5) 시계에 아름답게 각인할 수 있는 이름을 만들어 냈다. 지금 봐도 매우 현대적인 브랜드 ‘롤렉스(Rolex)’의 탄생이었다.

 

롤렉스 케이스 오프닝 공구(1950년대)
 

혁신적인 기술력의 ‘롤렉스 오이스터’


한스가 만들어 낸 롤렉스는 1910년 손목시계 최초 크로노미터(정밀도) 인증서를 받았고 1914년에는 시계의 정확성 인증기관인 큐 천문대로부터 A등급을 받은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롤렉스는 정확도 높은 시계라는 인지도를 얻었다. 이 시기 한스는 “회중시계는 완전히 사라지고 손목시계가 회중시계를 대체할 것”이라 말하며 그가 가진 뛰어난 비전을 드러냈다.
하지만 당시 모든 시계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는데, 시계 문자판에 먼지가 끼거나 습기가 차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한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방수 시계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그렇게 1922년 롤렉스 최초의 방수 시계 서브마린이 출시됐다. 이후 한스는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의 방수 시계를 연구한 끝에 시계 케이스에 이음새가 없도록 금속을 통째로 깎았으며 방수함 해치처럼 크라운을 나사 형태로 2중으로 잠글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그리고 1926년, 세계 최초 방진 방수가 되는 혁신적인 시계 ‘롤렉스 오이스터’가 탄생했다.

 

오이스터를 만든 롤렉스의 특수공구


한스 빌스도르프, 그리고 롤렉스가 가진 기술력은 오이스터의 발명으로 빛을 발했다. 오이스터는 베젤(테두리), 케이스 백, 와인딩 크라운을 케이스에 ‘스크루-다운’ 방식으로 고정하는 특허 시스템을 사용하여 철저한 방수 기능을 갖추었다. 롤렉스를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는 베젤과 케이스 백의 톱니바퀴 모양 홈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데, 롤렉스가 개발한 특수 공구를 이용하여 이들 부품을 케이스 본체에 고정 및 분해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롤렉스의 특수공구는 롤렉스의 각 모델넘버별로 사이즈가 맞는 오프너를 갖추고 있다. 오프너에 새겨진 톱니바퀴 홈을 각 모델에 새겨진 베젤과 케이스백의 톱니바퀴 홈에 딱 맞추어 오픈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롤렉스의 특수공구가 없었다면 어쩌면 오이스터의 탄생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오늘날에는 베젤 고정 방식이 변경되었지만 여전히 롤렉스의 여러 모델들에는 롤렉스 오이스터의 오리지널 모델을 연상시키는 톱니바퀴 베젤이 사용되고 있으며, 백 케이스를 오픈하는 데에는 예전의 공구 사용을 응용한 오픈 방식이 이용되고 있다.

 


롤렉스의 또다른 혁신 ‘퍼페츄얼’


롤렉스 오이스터는 방수시계라는 혁신적인 방식을 제시한 시계로 평가받는다. 오이스터와 함께 롤렉스 브랜드의 또다른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평가받는 것이 바로 ‘퍼페츄얼 로터’다. 롤렉스는 사용자의 움직임에 의해 내부의 반원형 판이 360도 자유롭게 회전하면서 태엽을 감아주는 오토매틱 와인딩 매커니즘을 발명했는데, 손목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감지하여 동력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영구적으로 자유롭게 회전하는 회전자’라는 의미로 ‘퍼페츄얼 로터(Perpetual Rotor)’라 이름 붙여졌고 퍼페츄얼 로터 시스템은 오늘날의 모든 현대식 오토매틱 시계의 뿌리가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롤렉스의 모든 모델에는 ‘오이스터 퍼페츄얼’이라는 닉네임이 시계에 각인되는데, 이는 오이스터 케이스에 퍼페츄얼 자동 무브먼트가 장착된 시계라는 의미다.

 

천재적인 마케터 한스 빌스도르프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스 빌스도르프는 혁신적인 기술자라는 평가 외에도 천재적인 마케터라 불리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앞서 브랜드의 중요도를 알았던 한스 빌스도르프. 그처럼 마케팅에 대한 그의 사고 역시 무척이나 현대적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우선 한스는 회사 이름을 ‘The Rolex Company’로 변경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기존 회사명 ‘빌스도르프 앤 데이비스’에서, 빌스도르프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에는 연합국 군인들이 롤렉스에 편지를 쓰면 그들에게 롤렉스 손목시계를 보내주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시계값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지불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 캠페인은 병사들에게 승전의 희망을 안겨줌과 동시에, 롤렉스 브랜드의 긍정적 홍보까지 이루어 낸 성공적인 마케팅이었다.

 

수조 속에 오이스터를 넣은 혁신적인 광고(좌), 메르세데스 글라이츠. 목에 걸린 롤렉스 오이스터가 보인다.(우)

 

롤렉스 오이스터의 획기적인 마케팅


세계 최초 방진 방수 가능한 신개념의 시계 ‘롤렉스 오이스터’ 출시 이후, 한스는 오이스터를 홍보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한 가지 재밌는 광고를 떠올렸다. 진짜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 속에 롤렉스 오이스터를 함께 넣어 롤렉스 공식 판매점의 매대에 전시한 것이다. 실제로 이 광고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켰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스는 1927년, 영국의 수영선수 메르세데스 글라이츠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 영국해협을 헤엄쳐 건널 때 롤렉스 오이스터를 목에 걸고 헤엄치게 하는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다. 글라이츠가 낮은 수온의 악조건에서 수영을 하는 10시간 동안 롤렉스 오이스터에 물이 새지 않았고 롤렉스는 시계의 놀라운 성능을 ‘데일리 메일’지(紙) 1면에 실어 적극적으로 광고했다. 이 역시도 대중들의 롤렉스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렸다. 이후 메르세데스 글라이츠는 1930년대까지 계속해서 롤렉스 브랜드의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대통령, 그리고 탐험가의 시계


롤렉스의 마케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1945년 롤렉스는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날짜를 표시하는 ‘롤렉스 데이트저스트’를 선보였다. 당시 시계는 시·분·초 3개의 정보만을 표시했지만 데이트저스트는 밤 12시, 자동으로 변경되는 날짜 역시도 표시됐다. 롤렉스는 데이트저스트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선물했는데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당시 나토군 최고사령관) 등의 인물들이었다. 이후 린든 B. 존슨 등 여러 대통령들이 롤렉스를 찬 모습이 대중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롤렉스는 ‘프레지던트 왓치(대통령의 시계)’라는 문구를 광고에 사용했다.
정확도뿐만 아니라 방수 방진 기능을 갖춘 롤렉스는 여러 험난한 도전에도 함께했다. 1933년, 롤렉스는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시계를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1953년 5월 29일,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노르게이 텐징에 의해 마침내 에베레스트가 정복됐을 당시 에드먼드는 롤렉스 오이스터 퍼페츄얼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에 롤렉스는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 기념으로 ‘롤렉스 익스플로러’를 출시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는 마케팅을 멈추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게이

 

꺾이지 않는 롤렉스의 위상


롤렉스의 가격은 수천만원 대를 호가한다. 지금까지도 정확도와 내구성, 방수에서 최고의 시계로 인정받고 있는 롤렉스. 현재 롤렉스는 오이스터 방수 케이스, 페퍼츄얼 로터, 데이트저스트 등 400여 건의 특허기술을 보유 중이다.
1960년 한스 빌스도르프가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롤렉스 시계가 명성을 유지하는 배경은 롤렉스 브랜드의 소유권을 한스 빌스도르프 재단이 보유해 외부 영향에 구애받지 않고 그의 정신과 비전을 계승할 수 있는 기틀을 세웠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명품 시계 브랜드라는 명성을 확고히 하면서도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또 도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롤렉스가 오랜 시간 변함없이 최고의 시계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일 것이다.

 

_ 이대훈 / 참고자료 _ rolex.org, Wikipedia.org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