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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마스크 1500장으로 만든 의자, 디자이너 김하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모두에게 친숙한 존재가 된 마스크. 한창 코로나가 심하던 시기엔 전 세계에서 한 달간 폐기되는 마스크가 1300억 장에 이를 정도였다. 김하늘 디자이너는 이에 따른 환경오염에 경각심을 느껴 폐마스크를 녹여 의자로 만들었다. 업사이클링 의자의 탄생이다.
마스크의 소재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심코 사용하다 때가 타면 별 생각 없이 버리곤 하는 마스크. 하지만 폴리프로필렌 등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마스크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이런 폐마스크를 한 번 더 활용해 리사이클링이 아닌 ‘업사이클링(버려진 물건으로 더 나은 물건을 만드는 것)’ 의자를 제작한 이가 바로 김하늘 디자이너다. 계원예술대학교 리빙디자인과를 졸업한 1998년생 김하늘 디자이너는 폐마스크 1500장을 녹여 만든 스툴(등받이 없는 의자)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해 물었다.
월간TOOL(이하 툴) 마스크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김하늘 디자이너(이하 하늘) 처음 마스크로 의자를 만든 게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연말이었어요. 제가 뉴스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졸업전시에 출품할 작품을 고민하던 중에 뉴스를 보다가 폐마스크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 를 접하게 됐어요. 마스크가 버려지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된다는 거죠. 그런데 버려지는 기하급수적인 양의 마스크가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재활용하지 않지?’하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툴)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의 마스크가 필요한가요?
하늘) 스툴 하나 만드는 데 보통 마스크 1500장이 들어가요. 상당한 양이죠. 처음에는 캠퍼스 안에 수거함도 설치하고 기부도 받았는데 2차 감염의 우려가 있어 다른 방법을 찾다가 화성시에 있는 한 마스크 공장을 방문했어요. 거기서 알게 된 게, 버려지는 마스크도 마스크지만 공장에서 마스크를 만들고 남는 필터 원단의 양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멜트블로운이라는 필터인데 한 달에 1톤 넘는 자투리 필터들을 전부 소각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다 플라스틱이거든요. ‘지금 마스크 버려지는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툴) 그 공장에서 소재로 사용할 폐마스크 원단을 공급받은 건가요?
하늘) 아니요. 그렇게 버려지는 자투리 필터가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이왕이면 큰 공장으로부터 받자 해서 접촉한 게 유한킴벌리예요. 연락을 했는데 처음에는 잘 안 됐다가 정말 다행이었던 게, 제가 강연을 나간 적이 있거든요. 강연을 보러 와주신 분 중에 우연찮게 유한킴벌리의 한 부장님이 계셨어요. 제가 회사에 마스크 제공 요청을 했다는 것도 모르시던 분이었는데 그 부장님 덕에 이후로는 유한킴벌리 측으로부터 공급받게 됐던 거죠. 정말 운이 너무 좋았어요.
작업 초기, 수거하고 기부받은 마스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 때에는 귀에 거는 고무 끈과 코 부분을 조이는 철사의 제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남은 마스크 필터를 디자인한 거푸집에 넣고 열풍기로 천천히 녹여 식히고 굳힌다. 그렇게 다리 한 개씩, 그리고 앉는 부분까지 만든 뒤 그것들을 다시 마스크를 채워 녹여 붙이면 스툴 하나가 완성된다. 나사나 접착제가 전혀 필요 없는, 오직 마스크로만 만든 의자다. 검정, 하양, 분홍, 파랑 알록달록한 색상의 마스크를 그대로 녹여 만든 스툴 작품은 넓은 폭의 색상 스펙트럼이 매력적이다.
툴) 왜 다른 게 아니고 의자 형태로 작품을 만든 건가요?
하늘) 의자라는 오브제를 좋아하는 제 개인적인 취향도 물론 있었지만, 저희 선배들이나 요즘의 작품들을 보면 의자가 하나의 트렌드예요. 첫 작품으로 의자를 만드는 게. 저도 그런 트렌드에 동화가 됐다고 할까요. 그래서 단순하게 의자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툴) 마스크 말고 다른 소재를 이용해 작업한 것도 있나요?
하늘) 맥주캔이나 종이박스, 그리고 영화관에서 버려지는 스크린을 소재로 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스크린 같운 경우는 CGV와 협업을 했던 건데 영화관이 폐관하거나 이관하는 경우 스크린에 손상이 발생헤 버려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 크기가 상당하죠. 스크린을 이용해서는 조명을 만들게 됐어요. 스크린을 가까이에서 보면 스크린 뒤에서 나오는 소리를 위해서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거든요. 그 구멍으로 소리가 아닌 빛을 빠져나가게 해 보자, 해서 조명을 만든 거예요.
툴) 혹시 마스크 외에 다른 공구를 소재로 작업을 할 생각도 가지고 계신가요?
하늘)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사실 ‘공구’란 작업의 소재라기보다는 작업을 위한 ‘도구’잖아요. 저는 사실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만 해도 마스크가 공구의 하나일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공구 하면 펜치나 드릴 같은 게 떠오르니까요. 최근 생각하고 있는 소재가 있는데, 공구보다는 철물에 가까운 셔터로 작업을 해볼까 해요. 가게 문 앞에 올렸다 내렸다 하는 셔터요. 셔터 중간중간에 빨간 색, 파란 색, 노란색 부분이 있는데 그게 되게 예쁜 거예요. 그리고 PVC파이프 이런 것들도 소재로 생각해보고 있어요.
팬데믹 시기, 김하늘 디자이너가 제작한 폐마스크 의자는 기대 이상의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천 명이 참여한 졸업전시에서 1등을 한 것은 물론이고 각종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내외 미디어 100여 곳과 인터뷰를 진행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BBC, 로이터 등 해외 언론에서도 보도됐다. 그와 함께 대림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 우리나라 대표 미술관 곳곳에서 전시가 이어졌고 독일의 재활용 디자인 어워드인 ‘Recycling Designpreis’에서 대상을 수상해 마르타헤르포드 미술관에서도 전시가 행해졌다. 또한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d-Revolution Award’ 총감독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툴) 독일에서도 전시를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외에 다른 국가에서 전시한 적도 있나요?
하늘) 2022년에 현대자동차와 협업으로 카타르 월드컵 옆 피파 뮤지엄에 들어가는 벤치 작업을 했어요. 뮤지엄을 설립할 때 흙다짐공법 등 친환경 공법을 사용해 건물이 해체됐을 때 환경으로 돌아갈 수 있는 취지로 모든 게 설계되었는데 그 안에 설치될 가구 작업을 요청받아서 진행한 전시였죠.
툴) 그처 럼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터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받으셨는데, 그런 관심이 부담되진 않으셨나요?
하늘) 솔직히 부담됐죠. 부담감 때문에 한 번 과도기가 왔던 것 같아요. 지금도 어리지만 한창 주목받던 때는 더 어렸을 때니까요. 뜨거운 반응에 들떴죠. 제가 뭐라도 되는 것 같고. 막 계약서 쓰고 실질적인 것들을 해야 하면서 잠깐 초심을 잃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은 그 시기를 넘기고 다시 원래의 저로 돌아왔지 싶어요. 묵묵히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작업하는 태도가 저에게 맞다는 걸 느꼈어요.
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준 작가나 작품이 있을까요?
하늘) 저희 어머니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아요. 저희 어머니가 올해로 17년째 목공방을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7년 전부터는 제주도로 내려가셔서 작업하고 있고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다 보니까 뭔가를 만드는 걸 어렵게 생각한 적 없는 것 같아요. 덕분에 저는 지금 작업하고 뭘 만들고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요.
툴) 앞으로도 친환경, 업사이클링 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신가요?
하늘) 네. 제 의지도 있고 또 이미 약속한 일들이 많으니까 앞으로 꾸준히 이쪽 방향으로 작업을 해나갈 것 같아요. 지금처럼 가구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공간 인테리어도 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생각이에요.
김하늘 디자이너는 대학 동기 그리고 선배들과 함께 ‘서버번피플’ 이라는 팀을 구성했다. ‘평범한 사람들’ 이란 뜻의 팀 이름엔 환경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이 풀어낸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재활용 명품’하면 떠오르는 프라이탁(버려진 천막, 트럭 방수포 등으로 가방을 제작하는 세계적인 브랜드)처럼 ‘업사이클링 가구’하면 떠오르는 서버번피플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김하늘 디자이너의 목표다.
글·사진 _ 이대훈 / 자료제공 _ 서버번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