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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드릴, 드라이버, 망치… 인류가 달로 가져간 공구들

 

누리호 발사 성공 기념

 

드릴, 드라이버, 망치… 인류가 달로 가져간 공구들

 

 

 

 

우리나라 최초의 저궤도 실용 위성 로켓, 누리호가 2022년 6월 시험발사 성공에 이어 
지난 5월 25일 실용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1번째의 자력 우주로켓 발사국으로 기록되었다. 누리호 발사 성공 기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말하는 인류가 달로 가져간 공구들.

 

 

달 암석·토양 채취에 쓰인 공구


1969년 닐 암스트롱에 이어 달 표면을 밟은 버즈 올드린은 달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장엄한 폐허로다(Magnificent desolation).” 하지만 그의 말처럼 달은 폐허가 아니라 자원과 과학 탐사의 보고(寶庫)였습니다.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에 머물렀던 시간은 21시간 남짓. 게다가 우주선 밖에서 월면 활동을 벌인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과학 장비를 배치하고 달 표본을 수집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벽에 못을 하나 박으려 해도 드릴이나 망치가 필요한데, 달 암석과 토양 채취 작업을 맨손으로 했을 리는 없겠죠?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들은 어떤 공구나 장비를 가져가 사용했을까요?

 

달 표면에 안테나를 설치하고 작업 중인 아폴로 12호의 모습 

 

달에 가져간 것과 가져온 것은?


아폴로 11호부터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들의 주요 임무는 크게 가져가는 일과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가져가는 일,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이 달까지 들고 가서 배치한 장비는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지진 측정계와 지구와 달 사이 거리를 측정하는 레이저 반사경이었습니다. 또 동전 크기의 실리콘 디스크도 하나 가져갔는데요. 이 디스크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73개국 지도자와 미국 전·현직 대통령, NASA 국장의 명단 등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또 아폴로 11호 달 착륙에 앞서 1967년 1월 시험 도중 화재 사고로 숨진 우주비행사 3명의 넋을 기리는 명판도 포함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인류 최초의 발자국을 달에 남겨두고 오기도 했습니다.

 


달 표면에 발을 딛는 우주비행사들에게 내려진 임무 가운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달 암석과 토양 표본을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 달은 물론 지구와 우주의 탄생 비밀과 역사를 풀 수 있는 중요한 과학용 샘플이었죠.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달에서 21.5kg의 암석과 토양을 수집해 가져왔는데, 두 상자 분량이었습니다. 이때 가져온 표본은 과학적 자료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지만,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일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이 가져온 암석으로 달 표본 액자 250개를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액자는 135개국과 미국 50개 주, UN 등에 기념 선물로 보내졌습니다. 미·소 경쟁이 치열하던 냉전 시대, 미국이 소련보다 우월함을 보여주는 징표였던 셈이죠.

 

달 암석 샘플을 잡는데 사용된 집게

 

우주비행사의 달 작업을 도운 공구들


달 표면에서 우주비행사들의 작업은 쉽지 않습니다. 지구에서라면 허리와 무릎을 굽혀 손으로 간단히 집을 수 있는 물건도 달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우주복이 가장 큰 방해가 되죠. 우주복은 우주비행사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지 작업복은 아닙니다. 달에서의 이동성은 물론 간단하게 몸을 구부리는 능력을 크게 제한하게 됩니다. 그래서 달에서는 아무리 간단한 작업도 이런저런 도구가 필요합니다. 아폴로 우주 비행사들은 암석 샘플을 집을 때 사용하는 알루미늄 집게(Tongs)는 물론 달 토양 표본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작은 쓰레받기 모양의 국자(Scoop)도 가져갔습니다.

 

달에서 사용된 전동 드릴 구조. 이 전동 드릴은 가정용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또 작은 돌을 모을 때는 갈퀴(Rakes)를 사용했습니다. 갈퀴의 갈래는 약 1cm 간격으로 이루어져 작은 크기의 돌은 걸러지고, 이보다 큰 돌은 갈퀴에 걸려 모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아폴로 16호는 물론 아폴로 17호의 우주비행사들이 사용했죠. 지구 표면에서도 큰 암석을 작게 부수거나 쪼개기 위해서는 망치가 필요한데 달에서도 마찬가지로 망치가 사용되었습니다. 또 망치는 달 표면 아래의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튜브를 박을 때도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직경 2~4cm의 코어 튜브는 최대 70cm의 깊이로 달 표면에 박혀 표면 아래의 샘플을 채취할 수 있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정도 깊이로 코어 튜브를 박기 위해 우주비행사들은 약 50차례의 망치질을 했다고 하네요.

 

달의 작은 돌을 모을 때 사용된 갈퀴

 

 

달에서 쓰인 전동 드릴이 생활 속으로


하지만 아폴로 프로그램을 반복할수록 더 많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NASA는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에서 더 깊은 곳의 암석이나 토양을 채취해 지구로 가져오길 원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 깊이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전동 드릴(Electric drill)이죠. 아폴로 15호부터 본격적으로 우주비행사들이 전동 드릴을 달에 가져가 작업에 사용했습니다. 전동 드릴은 크게 배터리, 파워 헤드, 드릴, 발판 등 4개 구성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립해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내부가 튜브처럼 되어 있는 드릴 하나의 길이는 42cm(직경 2.5cm)로, 연결하면 최대 3m 길이의 토양 기둥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작업 도중에 부러지거나 휘어지면 안 되겠죠? 그래서 드릴의 소재는 텅스텐과 티타늄 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폴로 11호의 성공적인 달 착륙 이후 12명의 미국 우주비행사가 달 표면에 발을 내딛었다. 사진은 아폴로 15호 달 착륙선(1971년).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DIY(Do It Yourself) 문화가 확산하면서 간단한 가구나 소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이 많지요. 이런 문화가 우리보다 훨씬 앞섰던 미국 등 서양에서는 공구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만한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B사의 공구가 DIY 족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달 토양을 채취할 때 사용된 전동 드릴을 제작한 곳이 바로 이 회사였죠. 전원이 없는 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무선 배터리 전동 드릴을 특수 제작했고요. 이것이 가정용으로 보급되면서 무선 전동 드릴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우주개발용으로 탄생한 전동 드릴이 우리가 가정에서 벽에 구멍을 뚫거나 못이나 나사를 박을 때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월면차에 달 샘플 채취를 위한 공구가 실려 있다. 월면차는 아폴로 15호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샘플 채취 못지않게 수집·저장도 중요


표본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공구도 중요하지만, 달에서는 샘플 수집과 저장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데요. 일단 암석이나 토양과 같은 개별 샘플은 작은 봉투에 담깁니다. 이 샘플 봉투에는 고유 식별번호가 붙어 있어 표본을 지구로 가져온 후에도 언제 어디에서 채취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샘플 봉투를 이륙 모듈로 운반하기 위해 샘플 백에 담게 됩니다. 이 큰 샘플 백은 우주 비행사의 배낭이나 달 탐사 로봇에 부착할 수 있는데, 우주복 때문에 우주비행사의 유연성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배낭에 부착된 수집 가방에 샘플을 넣은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죠. 대신 다른 우주비행사의 배낭에 부착된 수집 가방에 넣는 방식으로 샘플의 수집과 저장 작업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수집된 달 샘플은 이륙 모듈에 저장했습니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우주비행사들은 달 착륙선의 사다리를 이용해 샘플 상자를 운반하기가 더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달에서 암석과 토양을 채집하는 작업은 매우 신중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은 어떤 것이 중요한지, 또 어떤 것이 위험한지 사전에 숙지하는 것은 물론 작업 과정에서도 계속 확인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우주복 팔에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확실한 샘플 채취 작업을 위해 NASA 관제 센터에는 지질학자들이 상주하면서 우주비행사들의 샘플 채 취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와 함께 지구에 도착한 달 샘플은 특수 제작된 챔버(검사실)에서 각종 검사를 마친 후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달에 여러 가지를 가져가고, 달의 샘플을 가져왔다.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드라이버, 송곳… 우주비행사 개인용 공구도


이러한 공식적인 샘플 채취용 공구나 장비 외에도 우주비행사들은 개인적으로 필요한 공구를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달 표면에 9번째로 발을 디딘 우주비행사이자 아폴로 16호의 사령관이었던 존 영은 달 착륙 시험과 훈련 과정부터 공구를 우주복에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존 영이 소지한 공구는 나사를 조이고 풀 때 쓰는 드라이버부터 렌치까지 다양했는데요. 아폴로 16호에 탑승할 때는 일자 드라이버와 스크루 드라이버, 송곳 등 3개의 공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존 영은 “그 도구들이 작고, 편리하고, 늘 사용하던 것이어서 가지고 갔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선에 탑승할 때는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 물건이나 소지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꼼꼼한 ‘몸 수색’을 거쳐야 했고, 체크리스트에 기록한 뒤 허락된 물건만 소지하고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우주비행사들이 달에서 활동 반경을 넓히고, 더 먼 곳에서, 더 많은 샘플을 채취할 수 있게 된 것은 월면차(Moon Rover)가 등장하고 난 후부터였습니다. 1971년 7월, 우주비행사를 태운 아폴로 15호가 네 번째로 달에 착륙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보잉사에서 개발한 월면차를 가져갔습니다. 비록 월면차의 속도는 시속 8km 정도에 불과했지만, 반경 9.6km까지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되었죠. 이것은 혹시 모를 사고와 우주복의 산소량을 고려해 반경 10km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주비행사들은 월면차 덕에 달에서 총 28km의 거리를 이동하며 샘플을 채취할 수 있었답니다. 월면차는 77kg 정도의 월석을 지구로 가져올 수 있었던 1등 공신이었습니다.

 

달 착륙 50주년 맞춰 샘플 연구기관에


2019년은 인류가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지 5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NASA는 달 착륙 50주년을 맞아 달에서 가져온 월석과 토양 샘플을 미국 내 9개 연구기관에 나눠 줬는데요. 중간에 돌아온 아폴로 13호를 제외하고 아폴로 11호부터 아폴로 17호까지 달 착륙을 통해 확보한 샘플은 총 382kg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샘플의 85% 정도는 미국 존슨 우주 센터와 뉴멕시코주 화이트 샌즈 시설에 보관되어 왔고, 일부 샘플의 경우 달과 똑같은 조건에서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15% 정도만 연구나 전시 등에 활용되었습니다. 월석의 구성 성분 등을 분석하면 달의 지표와 대기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요. 달 자원을 지구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보다 분석 기술도 발전한 만큼 당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죠? 가정에서 사용하는 망치나 삽을 닮은 공구로 가져온 달 샘플에서 또 어떤 ‘비밀의 문’이 열릴지 기대됩니다.

 

_ 한국한공우주연구원 이정원 에디터 / 자료제공 _ 한국항공우주연구원 / 사진 출처 _ NASA / 정리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