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공구하는 여자들의 언택트 토크
뜨거웠던 여름을 뒤로 하고 어느새 찾아온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여 여성 공구인 네 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다함께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시국이 그럴 수 없어 언택트(Untact, 비대면)형식을 빌려 자리를 마련했다. 20대 공구인 두 명, 30대, 그리고 50대 후반. 네 명의 여성 공구인들과 나눈 가을맞이 언택트 토크.
사실 남자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남자들도 특정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공구와 친숙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자는 더 말해 무엇할까. 과거에 비해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많은 것들이 진보했다는 요즘의 시대. 그러나 아직도 여자와 공구는 쉽게 매칭되기 힘든 단어들이다.
과연 이 자리에 모인 네 명의 그녀들은 어떤 계기가 있어 공구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선택한 것일까?
경북철물 최효진 : 전 사실 철물점 일을 하기 전에는 공구에 대해서 정말 ‘1도’ 몰랐어요. 아버지가 건축 일을 했는데 아는 분이 철물점을 내놓는다는 거예요. 저에게 ‘네가 해 볼래?’하셔서 저도 뭐에 홀렸었는지 덜컥 하겠다고 했죠. 정말 장사에 대해 모르다 보니 겁도 없이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알았더라면 아마 안 했을 걸요? 하하.
리얼공구 채태경 : 친한 오빠 공구쇼핑몰 하는 걸 도와주다가 독립해서 차렸는데 처음 오픈할 때도 별 부담 없이 시작했어요. 그냥 하면 잘 할 것 같았거든요. 사실 온라인 공구쇼핑몰은 시작할 때 큰돈이 들진 않아요. 그냥 ‘하다가 망하면 망하는 거지 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리히 목공방 함혜주 : 저는 목공방을 차려야지, 이런 것보다 ‘저 목공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하는 게 궁금한 마음에서 목공방을 차린 거예요. 어릴 때부터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만들고 하는 걸 좋아했어요. 나무를 가지고 작업하면서 공구에 대해 하나하나 익혀가다 보니 지금은 공구가 제 장난감이 됐네요.
풍산공구 정화임 : 나는 남편이 공구상을 하다 보니까 따라서 하게 된 거죠 뭐. 1989년에 오픈했으니까 30년 넘었네요. 원래는 이런 쪽을 전혀 몰랐죠. 처음엔 좁은 가게에서 17개월 된 우리 큰애 등에 업고 장사했어요. 그런데 이 공구라는 게 여자가 하기엔, 그것도 혼자 하기엔 정말 생고생하는 일인데 참 대단들 하신 것 같아요.
“공구라는 게 여자가 하기엔,
그것도 혼자 하기엔 정말 생고생하는 일인데 참 대단들 하신 것 같아요.”
경북 최효진 : 사실 처음엔 친구들도 저한테 안 어울린다고 했어요. 다른 일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모르는 사람들은 공구에 대한 인식이 그렇잖아요. 그런데 친구들도 하나씩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까 요즘은 저한테 부럽다고들 해요. 가게에 맨날 놀러 와서 자기한테 일 시켜달라고 하는 친구도 있고요.
이리히 함혜주 : 남자 여자를 떠나서 사람 성격마다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그냥 공구가 재미있어요. 테이블쏘의 작동 원리라든지 회전 방향, 킥백은 왜 발생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까지는 전혀 모르던 거였잖아요. 그런 것들을 알아가는 게 참 재미있어요.
리얼 채태경 : 저는 정말 공구일이 제 체질인 것 같아요. 하하. 사람들에게 어떤 물건들을 팔지 선택하고 그 물건들을 내놓고 소개하고 판매하는 그 과정들이 저는 재미있어요. ‘어, 이거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잘 팔리네?’하는 쾌감? 같은 것도 있고요.
보기 드문 여성 공구인들. 게다가 나이 적은 여성 공구인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공구상에는 당연히 나이 지긋한 남자 대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목공방 대표라면 자연스레 중년의 남자 목수를 떠올리게 되기 마련. 그런 떠올림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여성 공구인들은 자신이 남자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또 어떨 땐 오히려 자신이 여자라는 게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한다.
최효진 : 공구상에 오시는 분들은 사실 거친 분들이 많거든요. 가게 오픈 초기엔 거칠고 기쎈 손님들 때문에 진짜 많이 울었어요. 내가 남자였더라면 저러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얼마나 무거운 것들이 많아요. 시멘트 한포대 무게가 40킬로거든요. 무거운 것 들 때도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다, 하죠.
정화임 : 나도 처음엔 많이 울었어요. 여자고 그때는 또 젊다 보니까 손님들이 무시하곤 했죠. 진짜 힘들었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손님이 인치 치수로 공구를 찾는데 미리로 나온 공구밖에 없으면 저는 버벅대는 거예요. 그러면 막 뭐라고 하고. 주눅 들어서 안쪽 방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참.
채태경 : 저는 고객이 와서 대표 찾으면 절대 대표인 티를 안 내요. 남자 대표 찾는 거 뻔하거든요. 그냥 직원인 척 ‘지금 대표님이 어디 가셔서요…’ 하다가 명함 드리면 그제야 알고들 놀라더라구요.
함혜주 : 공구상 대표님들과는 좀 다르긴 한데요, 저는 큰 가구를 짜고 나서 옮길 때. 사실 그게 무거워서 힘들다기 보다는 사실 남자들도 여럿이 들어야 하는 거거든요. 그럴 땐 그냥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해요.
최효진 : 저는 어쨌든 직원을 뽑으면 꼭 남자로 뽑을 생각이에요. 공구상을 운영하다 보니까 남자가 필요하더라구요. 힘은 기본이고 또 앞으로는 영업이나 배달도 하려고 생각 중이거든요. 따라서 1종 보통 면허를 가진 힘 센 남자 직원을 생각하고 있죠.
함혜주 : 그런데 요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편견 같은 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오히려 ‘여성들은 그런 편견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편견일 정도로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열심히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덕분이라 생각해요. 저도 그렇고 여성 수강생 분들도 차별적인 언행은 듣지 않아요.
최효진 : 최근에 느낀 건데, 어느 정도 단골이 생기고 ‘경북철물은 여자가 하는 공구상’이렇게 알고 오시는 손님들도 계시다 보니까 오히려 제가 일하는 걸 도와주시면 도와주셨지 여성 차별적인 언행은 엄청 사라진 것 같아요.
채태경 : 저도 여자 공구인으로서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떠올라요. 특히나 온라인 공구상에 물건 올릴 때. 남자들은 상품 설명을 적는 걸 봐도, 사진을 편집하는 걸 봐도 좀 투박하거든요. 저도 그렇고 우리 가게 직원들도 여성들만의 뭔가 섬세함이 느껴져요. 그게 우리 매장의 특징이기도 하고요.
최효진 : 정말 여성 공구인은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손님들이 다른 철물점 가서 나이든 아저씨들 계시면 솔직히 대화를 편하게 못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가게에 오면 손님들이 편하니까 이야기를 많이 나누거든요. 주변사람들에게는 말 못할 고민거리 같은 걸 이야기하는 손님도 계시고요. 손님들과 편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 것? 그게 장점인 것 같아요.
함혜주 : 저도 비슷해요. 작업 전 사적인 공간에 실측을 갈 때, 여성 클라이언트 분들은 아무래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또 주문제작 상담을 하러 목공방에 방문하셨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남자 교육생들도 마찬가지로 여자한테 배우는 게 더 편한가 봐요.
“여성 공구인은 장점이 많아요. 매장을 찾은 손님들과 편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는 것? 그게 큰 장점 아닐까요.”
공구상도 목공방도 결국은 서비스업이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직업. 일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어쩌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사람 사이의 일들을, 어쩌면 이제는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됐을지도 모른다. 일을 시작하기 전 자신의 모습과 일에 익숙해진 지금, 자신의 모습은 과연 얼마나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채태경 : 말씀드렸던 것처럼 전 정말 별 부담 없이 이 일을 시작했던 거거든요. 처음 혼자 일할 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했었지만 지금은 제가 고용한 직원들이 생긴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뭔가를 결정할 때 조심스러워 지더라구요. 책임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혼자 할 때는 망하면 나 혼자 망하는 건데 지금은 그게 아니니까.
최효진 : 저는 정말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성격 자체가 달라졌어요. 원래 제가 엄청 내성적인 사람이거든요. MBTI검사를 해도 무조건 내향적인 ‘I’ 나오고요. 그런데 철물점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성격이 많이 외향적으로 변했어요.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거 좋아하게 됐고요.
함혜주 : 저도 사실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인데 그럼 사람이 목공방을 꾸려 놓고 교육생들도 상대해야 하고 클라이언트들도 상대해야 하고 또 전시에 출품해 저에 대한 것도 어필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저 역시도 제 영역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넓히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이건 제 개인 작업이 아니라 일인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더라구요.
정화임 : 사실 저처럼 60살 정도 나이들고 나서 보면 사회생활을 계속해 온 엄마들은 집에서 살림만 해 온 엄마들과 달라요. 사회생활을 해 온 엄마들은 뭔가를 더 빨리 이해하고 시야도 더 넓고. 가정주부들은 멈춰 있지만 사회생활하는 엄마들은 시대에 맞춰서 변화해 온 거거든요. 저도 그렇게 달라진 것 같고요. 사람들은 밖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자녀교육에 소홀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아이들 키우는데도 밖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더 낫다고 봐요. 아이들도 더 자립십 있게 자라고.
채태경 : 그런데 정말 아이 생각하면 딜레마인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못 보고. 또 쉬면서 아이를 보면 일 못 하고. 아이 생각을 하면 이렇게 하루 종일 떨어져 있는 게 힘들긴 해요. 그래도 일할 땐 확실히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가서는 또 엄청 놀아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최효진 : 제 친구들은 저한테 ‘언제까지 철물점 할 거야?’하고 진짜 많이 물어봐요. ‘결혼하면 그만 둘 거야?’하고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저는 똑같이 말해요 ‘결혼해도 일은 해야지. 결혼이랑 일이 무슨 상관이야?’하고요. 아이에 대한 것도 다 계획이 있구요.
가을맞이 여성 공구인 대담에 참석한 네 명의 대표들. 그들에게 20년, 3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들이 가진 미래의 목표에 대해 물었다.
최효진 : 제가 계획이 있다고 했잖아요. 전 철물점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거든요. 평생 하고 싶을 만큼 철물점이 좋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이 철물점을 더 키워서 차후 5년 안에 더 넓은 부지에, 더 큰 철물점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래서 엄마 아빠 그리고 미래의 제 남편까지 함께 운영하려구요. 아이를 낳으면 철물점 안에 방을 만들어서 생활해도 괜찮을 것 같고요. 벌써부터 엄마랑 땅 보러 다니고 있어요.
채태경 : 저는 사실 처음 시작할 때 생각했던 목표 매출액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목표는 벌써 이뤘어요.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목표를 세웠어요. 대형 오프라인 공구상을 차리는 것. 저도 요즘 자리 보러 다니는 중이에요. 그리고 저희 리얼공구 자체 공구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싶어요. 그게 최종 목표이구요 그것까지 이루면 장사 그만 하고 쉬고 싶어요.
함혜주 : 현실적인 거랑 멀긴 한데, 미래엔 죽은 나무를 가지고 무용한 것들을 만들면서 살고 싶어요. 가구를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에게 미안한 것도 크거든요. 그리고 이리히 스튜디오와 인연을 맺은 분들께 좋은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그 분들이 이 공간에서 뭔가를 이루어 가기를요.
정화임 : 이제는 가게를 넓히고 돈 더 벌고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지금까지는 일만 해 왔으니까 이제는 나한테 관심을 더 갖고 싶어요. 나를 찾고 싶어서 영진전문대학교 경영회계전공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공부가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여섯 과목 중에 세 개를 A+ 받았어요. 2년 과정을 마치고 그 후에도 뭔가 다른 공부를 하고 싶어요. 한글 국어 공부를 좀 더 해서 다문화가정 엄마들에게 한글 교육도 해주고 싶고요. 요즘 그런 여러 생각들을 하고 있답니다. 30년 넘게 공구상 일만 해 왔는데 이제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