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산업이라 함은 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 등 6개 분야를 아우르는 말이다. 지금까지 자동차와 조선 등 한국제품의 경쟁력은 세계에서 손꼽혀왔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력의 배경은 바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에 있다.
“특히 한국의 용접기술은 조선, 철강, 중공업, 자동차 등 주력산업분야의 성장과 함께 그 기술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해 왔어요. 다양한 신기술을 가지고 일부분에선 독보적 기술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품질 경쟁력의 핵심이며,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경험과 시행착오로 얻은 숙련된 기술 영역인 것이죠.”
최기갑 이사장은 이렇게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뿌리산업의 중요한 한 축인 용접산업이 3D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용접조합 회원사가 156개 업체예요. 저 역시 용접기자재 업체인 한토를 경영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국내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용접 관련업계가 침체기를 겪고 있어 많은 회원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죠. 하향세가 계속되고,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어 주변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요.”
한국 용접산업은 세계에서 3~4번째로 손꼽힌다. 그러나 최근 설비와 시스템 개선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지속가능성에 대해 걱정도 앞선다.
“용접산업규모가 어마어마해요. 우리나라는 23만톤, 일본은 29만톤, 미국은 40여만톤 정도 사용됩니다. 특히 부산에서 반경 100km 내 지역이 용접산업 클러스터로 조성되어 있어요. 부산, 포항, 거제, 울산, 창원 등 자동차, 철강, 조선산업이 다 몰려 있는 거죠. 외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집적화되어 있는 시스템에 비해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안타까울 뿐이죠.”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대한민국 용접산업의 미래
글로벌 경쟁력 갖춘 용접기술인 양성이 해답!
현실이 그리 밝진 않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보는 이유는
바로 글로벌 인재육성에 있다. 최 이사장은 용접산업의
지속가능성이 바로 교육에 있다고 믿는다.
“2005년 태풍 카타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했을 때 시추장비 피해가 컸죠. 수리할 당시 용접작업을 한국인이 한 거 아세요? 한 달 걸리는 어려운 작업을 16일 만에 해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미 용접을 잘 할 수 있는 기질을 갖췄다고 봐요. 손재주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용접기술인들 중에는 한국인이 많다. 특히 미국용접협회(American Welding Society, 이하 AWS)가 인증하는 자격증에 영어로 의사소통만 가능하다면 세계 어디든 진출할 수 있다. 용접조합은 현재 AWS의 공식 에이전트로서, AWS의 Certification Test(CWI, CWS, CWE, CWEng)가 가능하다. 특히 용접검사관 자격시험은 용접 기술과 용접에 의한 제품을 검사할 용접검사관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AWS가 인증하는 자격제도다. 미국을 비롯한 각 선진국에서는 자국으로 수출되는 선박이나 각종 철구조물에 대하여 CWI 자격증 소지자의 검사인증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용접조합의 CWI(용접검사관), CWS(용접감독관) 자격교육 및 시험을 통해 지금까지 1,500~2,000명의 전문가를 배출해 왔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용접기술자격증이 외국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아요. 반면 미국에 직접 가서 AWS가 인정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비용이 엄청나죠. 배 등 용접공정에 의한 제품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CWI 자격취득 인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검사관 자격증은 단순 대행으로 가능하지만 용접기술사 자격증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용접협회에서 요구하는 규모의 시설이 필요한 것. 용접조합은 세계에서 통용되는 용접기술인자격증 대행을 위한 용접전문교육센터 설립을 목표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내 용접전문교육센터 설립이 꿈
“고급 인력을 양성해야 돼요. 젊은 청년들 위주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물론 세계에서 인정받는 용접기술인을 키워야 합니다. 교육지수를 10으로 봤을 때 지금 우리나라는 2~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봐요. 그만큼 제대로 된 교육이 중요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주최하고 용접조합이 주관하는 행사로 전국용접기능경기대회가 있다. 올해 21번째 맞이한 이 행사를 통해 용접 꿈나무들이 신기술을 습득하고 기술경쟁력을 강화하기를 기대한다.
“기능대회에 가보면 우리 학생들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요. 보는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세계 대회에서도 상을 많이 받고요. 잘하는 애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올림픽 국가대표 같은 사람만 교육시킬 게 아니라 미래용접 기술인들의 층을 두텁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1등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 외 고급 기능인들을 많이 키우자는 것. A급, B급, C급 등 단계별 클래스를 통해 고급 용접기술을 익힐 수 있는 커리큘럼을 확립하자는 얘기다.
“최근 독일전시회에 갔었는데, 젊은 여성이 시연하는 걸 봤어요. 용접은 손으로만 하는 게 아니에요. 손과 머리가 잘 조합돼야 하는 기술입니다.”
용접에도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본 데이터를 알아야 고급 인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용접업계에는 세계 최고 권위자들이 많아요. 바로 그만의 노하우를 갖춘 거죠. 마이스터를 키워야 해요. 기성세대들이 힘들게 몸으로 부딪혀 그 자리에 섰다면, 이제 다음 세대들은 교육으로 실현가능합니다. 손과 머리, 기술과 아이디어가 동시에 실현되는 고급 기능인을 키우는 것, 바로 교육센터 설립으로 가능하다고 믿어요.”
미래 꿈나무를 키우기 위한 지원 지속
용접조합은 교육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한편, 소년원 및 공고 지원사업 등도 진행 중이다.
“소년원에 먹거리와 용접봉, 용접기자재를 지원하고 있어요. 가끔 강의도 하는데, 그 아이들에게도 용접기술을 가지라고 권해요. 공부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전해주고 싶어요.”
또 지원이 부족한 공고 34개교에 용접봉 500kg씩 지원하고 있다. 그 정도면 1년간 충분히 쓸 양이다. 용접은 바로 손맛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이 없다.
“교육현장에서 필요한 부분은 따로 있어요. 용접은 직접 해봐야 하거든요. 직접 익히는 감각은 어릴 때부터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원이 필요한 거고요. 또 한 가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교육이 연계돼야 합니다. 군대 다녀와서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전문기술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필요한 거죠. 그렇게 되면 용접업체에 취업도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어요. 업체에서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또 젊은 용접인들도 고임금에 안정된 직장이 보장된다면 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 겁니다.”
최 이사장은 무엇보다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경계한다. 부가가치를 높여 교육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고급용접을 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원체계가 잘 되어 있는 미국이나 독일, 일본이 부러워요. 교육사업은 분명 정부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 누구든 해야 하는 사업이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수준이 낮은 기술에 만족할 게 아니라 고급기술을 가르쳐서 지속가능한 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디서든 인정받는 기술자로, 또 크게 보면 국위를 선양하는 애국자가 되는 길이죠.”
요즘 청년들이 비전도 없이 무조건 공무원, 교사만 쫓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남은 3년의 임기동안 세계수준의 용접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그 토대를 닦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일본이 한때 조선산업 분야 세계 최고였지만 최근 20년간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지금은 우리나라가 최고죠. 그러나 교육시스템으로 본다면 그 반대입니다. 일본이 투자해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많은 기술자들이 양성되고 있어요. 한국의 기술자들 역시 일본으로 많이 진출해 있고요. 부산에 살면서 설계만 해주고, 2주에 한번 일본에 가서 일하고 오는 식으로, 한국에 있으면서 일본기업에 취업해 있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아직은 우리나라 기술이 더 뛰어나지만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그동안 키워놓은 우리 인재들이 일본은 물론 싱가포르, 중국 등 해외로 많이 나가고 있는 형편이에요.”
제18회 한국국제용접절단기술전시회 개최 무산
용접조합은 한국 용접산업 및 용접기술의 발전과 회원사의 신제품 소개 및 국내외 판로와 시장개척을 위해 지난 1989년부터 ‘한국국제용접절단기술전시회’를 매 2년마다 개최해 왔다. 그러나 최근 용접산업과 가장 큰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산업을 비롯해 자동차, 금속조립 산업 등의 유례없는 극심한 불황과 구조조정 여파로 대다수 회원사들의 매출액이 많게는 70%에서 적게는 30%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
이러한 전반적인 경기 침체와 함께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중소제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여러 가지 정책들도 부정적인 이유가 된다.
“이미 해외 바이어 80명에게 초대를 마친 상황이었어요. 600부스 규모로 기획을 하고, 국고지원금도 받고, 항공료와 숙식, 견학프로그램까지 다 세팅해놨는데, 정작 전시회 참가업체가 반이 안 되더라고요. 매출이 70%까지 줄어든 회사에 가서 뭐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되면 전시회에 출품한 회원사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겠더라고요. 긴급이사회를 통해 취소결정을 내리면서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괴로웠죠. 앞으로는 해외 전시회 위주로 참가하고, 다른 전시회와 연계해서 추진하려고 합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우리 용접업계의 건투를 빌며, 업계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고급 인력을 양성하고자 쉼없이 뛰고 있는 용접조합의 오늘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