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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로모

 

천재 수학자들의 분필 한국에서 제작 수출하죠

 

하고로모 신형석 대표 

 

 

2022년 7월, 수학자들 사이에 최고 권위의 상이자 수학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의 수상자로 한국계 허준이 교수가 발표되었다. 이런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를 비롯해 세계 최고의 수학자, 교육자들이 입을 모아 찬양하는 분필이 바로 ‘하고로모’다.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필기구

 

하고로모는 교육자를 위한 최고의 분필임을 자부한다.


분필을 만든 나라는 스코틀랜드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제임스 필란(James Pillans 1778 - 1864)이 분필과 칠판을 발명한 이후 전세계로 퍼져 교육, 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세계 최고의 분필을 만드는 나라는 한국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하고로모의 전통을 한국에서 이어나가는 신형석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하고로모


“분필 같은 경우 산업분야에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제철소 같은 곳에서 제련되어서 나오는 철괴나 철판은 매우 뜨겁거든요. 뜨거운 철판에 글씨를 쓸 수 있는 필기구가 분필입니다. 탄산칼슘으로 만들어진 분필은 고온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고 탄산칼슘이라는 것이 제품에 영향을 끼치지도 않으니까요. 조선소나 건축현장은 물론 기갑부대에서도 분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분필이 잘 써지고 또 잘 지워지잖아요. 하고로모가 위치한 경기도 포천에는 기갑부대가 많은데 탱크나 장갑차 정비나 차량에 표시를 할 때도 분필이 사용되더군요.”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과 같은 교육현장과 더불어 산업현장에도 사용하는 분필은 무척 안전한 제품이다. 식품첨가물이나 칼슘영양제로도 사용되는 탄산칼슘이 분필의 주요재료이기 때문. 분필을 사용하면서 나오는 가루가 손을 쉽게 더럽힌다고 하지만 하고로모의 분필은 그런 일도 거의 없다. 얇은 에나멜층과 같은 특수코팅이 있어 손이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강도도 뛰어나기에 일반 분필과 달리 쉽게 부러지지 않아 긴 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하고로모는 한국계 최초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사용하는 분필이다.

 

천재 수학자들이 사랑하는 분필


하고로모의 분필은 한국은 물론 전세계 교육자, 수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분필로 소문난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분필보다 서너배 비싸지만 부드러운 필기감과 함께 긴 시간 사용 가능해 오히려 가성비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점성이 높은 반죽으로 제작했고 일반 분필보다 두꺼운 지름을 가졌거든요. 하고로모 분필 전용홀더를 사용하면 떨어뜨리거나 던지지 않는 이상 부러지는 일은 없습니다. 분필은 써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지워지는 것도 중요한데요. 적은 힘으로도 쉽게 지워져서 교육자나 수학자분들이 특히 좋아하시죠. 저도 처음 이 분필을 접했을 때 그 사용감에 놀랐죠. 또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선명하게 글씨나 숫자를 쓸 수 있습니다. 저희가 생산하는 형광 분필의 경우 2~300명이 듣는 대형 강의 뒷자리에도 글씨가 선명하게 잘 보이거든요. 국내의 경우 학원 강사분들 대부분은 저희 하고로모 분필을 씁니다. 더불어 학교 선생님들도 저희 제품을 많이 사용하시고요. 그런데 국내 시장은 전체 매출의 일부일 뿐입니다. 국내보다 해외 시장에서 더욱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죠.”
신승범, 설민석, 김용옥과 같은 국내 유명 강사는 물론 전세계 유명 수학자들이 찾는 제품이 하고로모다. 프린스턴대학 수학교수 ‘허준이’, 스탠포드대학 수학교수 ‘브라이언 콘래드’, 워싱턴대학 수학교수 ‘맥스 리블리쉬’, 미시간대학 수학교수 ‘웨이 호’를 비롯한 유명 수학자들은 오직 하고로모 분필만 찾아 애용한다.

 

신형석 대표는 타카야스 와타나베 사장으로부터 기존 설비를 물려받아 하고로모 분필을 제작한다.
 

 

때로는 디지털보다 빛나는 아날로그


분필이 발명된지 200년이 지나면서 교육 현장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화이트보드와 마카펜, 태블릿을 이용해 학습하고 교육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백묵이라는 분필도 있는데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으며 싸인펜처럼 진하게 칠판에 써지는 분필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고전적인 칠판과 분필이 더욱 교육에 효과적이고 안전하며 친환경적이라고 한다.

 


“화이트 보드와 마카펜도 있고 전자칠판도 있지만 많은 수학자들이 분필을 사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를 단계별로 작성하고 풀이하는데 칠판에 분필로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거든요. 또 보드마카펜을 1시간 가량 쓰다보면 마카펜 냄새를 1시간 맡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마카펜은 분필과 달리 겉보기에 얼마나 사용했는지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죠. 저희도 물백묵이라는 제품을 제작하는데요. 물백묵은 관리가 어렵습니다. 글씨를 쓴 이후에 물에 적신 천으로 칠판에 쓴 글씨를 지우는데 여름에 사용하다보면 천에서 곰팡이 냄새가 납니다. 반면 하고로모 형광분필을 처음 만났을 때 그 품질과 성능에 크게 놀랐습니다. 가루가 잘 날리지 않으면서 선명하게 잘 써지고 지워지는 것도 편하고 제품 강도도 단단해서 오래 사용할 수도 있었고요. 처음에는 국내의 분필 제조 공장에 하고로모와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냐고 물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물어 물어 하고로모 일본 제조공장을 찾아 제품을 수입하기 시작했죠.”
하고로모 분필은 일본에서 시작해 현재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다. 1932년 일본의 와타나베 시로(渡部四郎)씨가 일본 초크 제조소(日本チョーク製造所)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해 2016년까지 이어왔다.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3대 사장인 와타나베 타카야스에 이르러 폐업을 결정하게 된다. 휠체어를 사용 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데다 가업을 물려받을 자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고의 분필을 생산하던 하고로모를 인수해 한국으로 이전 생산을 시작한 사람이 신형석 대표다.

 

 

재수학원 인기강사에서 분필 제작자로


신형석 대표는 본래 강남의 유명 재수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인기 수학강사였다. 보다 훌륭한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좋은 교재와 더불어 가르치는데 편리한 분필이 필요하다. 16년 전 일본 재수학원을 견학했을 때 발견한 하고로모 분필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2009년 우연히 발견한 하고로모 분필의 성능에 반한 저는 물어 물어 나고야에 위치한 공장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와타나베 타카야스 사장님을 만나고 제품을 한국으로 수입하고 싶다 사정했었죠. 일본어를 전혀 못해 통역을 대동했는데 와타나베 사장님은 한국을 1년에 서너차례 방문할 정도로 좋아하시는 일본분이셨어요. 사장님 일을 도와주시던 따님이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했을 정도로 친한파였고요. 10년간 그렇게 하고로모 분필을 수입 판매하면서 신뢰를 쌓았습니다. 한국에서 하고로모 분필을 알리고 판매하는 저를 사장님도 좋게 봐주셨고요. 일본의 비즈니스는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10년간 그렇게 본업은 학원강사 부업은 무역업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좋은 호텔을 잡아 주시면서 부르시더니 제게 건강상의 이유로 폐업 한다고 하셨죠. 일본의 다른 제조사를 통해 하고로모 분필을 수입할 수 있도록 노력도 하셨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요. 제대로 된 분필을 만들려면 제대로 된 설비가 있어야 하고 또 노력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다른 업체들은 그저 하고로모 분필 제작기법만을 알고 싶어 하더군요.”
최고의 분필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던 그는 농담 삼아 제가 한번 하고로모 분필을 제작해볼까요 하는 질문을 건낸다. 답답한 마음에 농담 같은 빈말이었지만 그 말을 내뱉은 신형석 대표는 밤잠을 설친다. 세계 최고의 분필을 제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하고로모, 이제는 일본산 아닌 한국산


일본이나 한국이나 제조업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하고로모 분필은 다른 분필에 비해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하고 또 복잡한 공정을 가해야 한다. 생산단가가 높고 그만큼 높은 가격을 가진 분필이다. 나름 유명 수학강사로 고액 연봉을 받는 그가 갑자기 제조업에 뛰어든다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후회했습니다. 집 담보를 비롯해 전재산을 투자해야 했고 그 자금도 부족해서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야 했거든요. 그렇다고 제대로 된 분필이 바로 생산되는 것도 아니었고요. 물론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죠. 분필 제작에 필요한 생산설비를 거의 헐값에 와타나베 사장님으로부터 인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단, 하고로모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조건을 내걸으셨죠. 그런 마음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이름을 붙일 생각도 이유도 없었어요. 하고로모 역사와 이름에 맞는 최고의 분필을 생산하고 싶었죠. 그러기 위해서는 원재료도 중요한데 한국에서 생산되는 원재료를 써보니 완전히 다른 제품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탄산칼슘이 조개껍질에서 추출되는 것인데 저희는 굴껍질 등 다양한 원재료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 사용합니다. 물 이외에는 달라진 것 없는 원재료와 공정기법을 그대로 사용해 경기도 포천에서 제작하죠. 일본 나고야에서 경기도 포천으로 공장 설비를 이전시키고 예전 그대로의 분필을 만드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그래도 하고로모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분필을 한국에서 생산해 의미를 지켜나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일본 수입제품이었던 하고로모 분필이 한국에서 제작되면서 국내의 학교, 관공서에도 납품 할 수 있었고 하고로모의 분필 성능에 반한 전국의 선생님, 강사, 학자들은 하고로모만을 찾고 있다. 전세계의 수학자들이 반해 찾는다는 하고로모 분필 이름의 의미는 날개옷이다. 한국 국적의 하고로모 분필은 이름 그대로 날개 달린 듯 전세계로 판매되고 있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