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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이레

 

물류 자동화와 AS 발판으로 신규 브랜드 발굴 할 것

 

㈜경진이레 장재석 상무

 

 

 

 

경진이레는 대한민국 임업의 기계화를 이끌어온 기업이다. 1984년, 경진이레는 스웨덴의 허스크바나(SWEDEN Husqvarna) 한국 총대리점 계약을 맺는다. 이후 엔진톱 등 다양한 임업기계장비를 국내에 선보이며 성장했다. 경진이레 2세 경영인 장재석 상무를 만나 경진이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청계천 공구가게로 시작한 경진이레


대부분의 공구인들은 엔진톱하면 ‘허스크바나’라는 브랜드를 떠올린다. 그리고 허스크바나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주)경진이레의 손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사이즈의 엔진톱부터 각종 정원 공구, 제설기를 유통하면서 경진이레는 조경분야 공구업계의 선두주자로 인정받는다. 이런 경진이레의 2세 경영인은 장호성 대표의 장남 장재석 상무. 장재석 상무로부터 과거 경진이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경진이레의 초창기 모습은 청계천에 위치한 작은 가게였습니다. 이름도 ‘경진기공사’였어요. 직원도 많지 않았죠. 어릴 때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청계천에 자주 놀러가곤 했습니다. 토요일에 학교를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청계천에 들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와 동생이 일을 마치신 아버지와 함께 청계천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죠. 그때는 공구업계가 지금에 비해 모두 영세했습니다. 지금은 저 어릴 때와 비교하면 공구업계가 많이 성장 했지요. 제가 1980년생이니 만 4살되던 해인 1984년에 아버지께서 스웨덴의 허스크바나 본사와 한국 총대리점 계약을 성사 시키셨어요. 경진이레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 사건입니다.”
경진이레 장호성 대표가 허스크바나로부터 한국 총대리점 계약을 맺은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당시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장호성 대표는 통역사를 구해 스웨덴으로 출발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발 직전 통역을 맡은 사람에게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진다. 결국 장호성 대표는 갖은 고생 끝에 국제미아가 될 뻔한 위기를 극복하며 40시간 만에 스웨덴에 도착한다. 그의 사연을 들은 허스크바나는 장호성 대표의 열정에 감동해 경진이레와 한국 총대리점 계약을 맺는다. 

 

다수의 인원이 근무하는 경진이레의 서비스 센터는 규모가 크다

 

공구단지에서 일하며 업계에 입문 


경진이레는 2000년 5월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신사옥으로 이전을 한다. 이후 가데나, 그린웍스, 파워웍스, 카스텔 가든, 에어리언 등 보다 다양한 브랜드 및 모델을 취급하며 더욱 성장한다. 장재석 상무가 경진이레에 입사한 것은 2009년부터다. 첫 사회생활은 경진이레가 아닌 다른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였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부친의 권유로 공구업에 입문하게 된다.
“경진이레가 기업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도 늘어나고 관리해야 하는 공간도 커지는 중이었거든요. 장남으로 흰머리가 늘어나는 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처음에는 구로중앙유통단지에서 엔진 브랜드의 여러 제품을 알리고 판매하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일이 힘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없이 좁은 계단에서 무거운 물건을 꺼내오는 것이 일상이었죠. 사원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경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중앙대학원에서 MBA 공부도 해야 했고요. 그렇게 유통단지에서 일하다보니 공구업과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2년 정도 중앙유통단지에 근무하고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경진이레 본사에서 일을 시작했죠. 5년 정도 본사에서 물류일을 배웠고, 본사가 보유한 매장의 소매업무도 2년 정도 했습니다. 지금은 거래처를 돌며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경진이레도 주 5일 52시간을 지키지만 불과 몇 년 전에는 하루에 10시간이상을 근무하고 토요일도 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재석 상무가 현장에서 일하며 알게 된 것은 함께 땀 흘린 직원들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비롯해 직원들이 다 함께 고생하며 성장시킨 경진이레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2세인 자신이 사람들에게 나태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를 이해해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해보니 아버지는 정말 노력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실 그 전에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았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함께 일하다보니 알게 되었죠. 지금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처음 공구업에 입문했을 때 원망스러운 감정을 가지기도 했어요. 아버님께서 저한테 특히 엄하셨거든요. 당시 20대 후반이던 저는 퇴근 후에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매주 월요일은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아버지는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셨죠.”
장재석 상무가 30대초반에 청계천에 위치한 거래처를 뛰어다니며 물건을 배달할 때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라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거래처에 배달한 물건을 쌓아 두는데 누군가 자신의 등을 두들겼다. 뒤돌아보니 방긋 미소 지어주며 격려해주시는 사람은 어느새 머리가 희끗해지신 아버지 장호성 대표였다. 지금 현재 장재석 상무는 40대 초반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아버지인 장호성 대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정말 사람은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으면서 어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이 9살인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으면서도 또  바르게 성장하길 바라거든요. 사랑만 주고 싶지만 때로는 엄하게 대해야 하는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제 가족을 바라보니 회사가 잘 되어야 모두가 잘 되는 거더라고요. 또 경진이레  임직원분들, 대리점 사장님, 고객분들께도 믿음을 주고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제 자신도 성장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진이레 장호성 대표와 장재석 상무가 전시회에서 나란히 섰다


대형 물류센터와 AS로 새롭게 성장


2015년 11월 경진이레는 충남 천안에 대형 물류센터를 공개했다. 경진이레 물류센터의 특징은 대형화와 시스템화다. 기존 창고와 달리 대형 철제 선반을 설치해 입고와 출고 모두 지게차를 이용한 자동화를 이루었다. 물류센터 부지에 공간적인 여유가 충분해 자리 잡게 된 대형 서비스 센터에도 눈길이 간다. 총 5명의 서비스 센터 직원이 제품 고장에 적극적인 대응을 한다. 보통 수입해서 판매되는 제품의 경우 AS는 외주를 통해 운영된다. 하지만 경진이레는 다르다. 책임감을 가지고 제품에 대한 AS를 직접해 고객의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다. 허스크바나, 가데나, 그린웍스, 파워웍스 등 경진이레의 모든 제품을 수리하고 있다. 장재석 상무에게 경진이레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코로나가 끝나면 신규 브랜드를 더욱 발굴하고 싶습니다. 여러 대리점 사장님들과 경진이레가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제2의 허스크바나, 그린웍스, 가데나 같은 신규 브랜드가 더 필요합니다. 물론 기존 브랜드를 잘 판매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겠죠. 기존 브랜드도 판매 잘하면서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를 기반으로 대리점과 관계를 맺어온 경진이레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아버지와 제가 100프로 똑같을 수는 없지요. 지켜야 할 회사 방침을 유지하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입혀 이끌어 보고 싶습니다. 이제 공구업은 온라인와 함께 오프라인 모두 잘해야 합니다. 경진이레와 거래하는 대리점 사장님들께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마리 토끼를 다 잘 잡으실 수 있도록 저희가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재석 상무는 영업에 큰 재능을 보인다. 거래처 사장님을 만나 물건 판매 계획 세우고, 새로운 물건을 알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고. 경험과 관록이 가득 찬 장호성 대표와 함께 열정이 충만한 장재석 상무가 활약하는 경진이레의 미래는 밝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