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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공구거리 둘레길 ⑪ 이리역 폭발사고 아픔 딛고 성장 – 전북 익산 평화동 공구거리

 

이리역 폭발사고 아픔 딛고 성장


전북 익산 평화동 공구거리

 

 

일제강점기 수탈한 쌀의 수송을 위해 부설된 호남선의 중심에 위치한 익산시. 이후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며 공구상들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 이후 시행된 익산 국가산업단지 개발은 익산 평화동 공구거리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호남지역 철도교통의 중심지 익산


전라북도 익산시는 명실상부 호남지역 철도교통의 중심지다. 익산역(舊 이리역)은 호남, 전라, 장항선 운행 계통의 KTX, SRT, ITX-새마을, 무궁화호의 필수 정차역이며, 동시에 전주를 거쳐 여수까지 내려가는 전라선이 시작되는 역이자 천안으로부터 이어진 장항선이 끝나는 역이기도 하다. 호남고속선 개통 이후 용산역까지 KTX소요시간은 평균 1시간 15분 정도에 불과할 만큼, 호남의 핵심 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2026년으로 계획된 장항선 고속화가 완료되면 현재 홍성역까지 부설된 서해선KTX가 익산역까지 연장될 전망이기도 하다.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현장 모습


익산시는 본래 작은 촌락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김제평야에서 수탈한 쌀의 수송을 위해 호남선을 부설하고 역을 세움으로써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6.25이후 익산역 근처 창인동과 중앙동 인근에 각종 철물점과 공구상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교통 발달 도시의 숙명과도 같이, 익산역 근처에는 홍등가와 판자촌이 넓게 자리잡으며 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옛 이리역 전경

 

폭발사고 아픔이 성장 디딤돌


1977년 11월 11일 저녁 아홉 시 15분.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던 한국화약(現 한화)의 화물열차가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고성능 폭발물 40톤을 싣고 이리역에 정차하던 중 초대형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철도역 직원들의 뇌물 요구, 금지된 화차 내부 출입, 총포 화약류 취급 면허가 없던 열차 호송원 등 온갖 악습과 인재가 얽히고 설켜 벌어진 이 사고로 인해 59명이 사망하고 1343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역 반경 500m이내의 건물들이 대부분 파괴되어 이재민 1647세대 7800여 명이 발생했을 정도로 그때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폭발사고 중 최대 규모의 피해였다.
하지만 이 사고는 역설적이게도 익산시의 발전에 한층 힘을 실어 주었다. 우선 폭발 사고로 인해 역 인근의 홍등가와 판자촌이 사라져 버렸으며,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이리역 폭발사고를 국가적 재난으로 선포하고 익산시의 재건을 위해 막대한 금액의 지원을 시행한 것이다.

 

 

권위주의시대, 지방도시의 재난과 재건


사고가 발생한 1977년은 박정희 정권이 막바지로 가던 시절의 한복판이었다. 정치적 반대세력의 압박이 점차 무거워지는 시기였고 정권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심상치 않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와도 같은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이리역 폭발사고는 발생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자신다운 방식으로 사고를 수습했다. 시설복구에 109억 1천1백만원, 이리역 주변 정화사업에 20억 8천9백만원을 투입하고 국가산업단지 건설과 재개발지구 개발사업은 별도로 추진하는 지원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실제로 이 사고 이후 익산시(이리시)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새롭게 변모했는데 도시를 가로지르는 간선도로와 신 역사, 아파트와 산업단지 등 오랜 지역발전의 과제를 성취했다. 당시 익산시는 도시발전을 30여년 앞당겼다는 자축과 환영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산업단지 개발과 함께 성장한 익산 공구상


공구상의 성장은 건축시장의 발전, 공단의 생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건설된 익산 제2산업단지에는 낮은 임대료와 각종 혜택으로 각종 대기업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의 대형 벤더업체인 HL만도, 남양자재, 쌍방울 등은 물론 제1산업단지에 마련된 수출자유지역에도 많은 기업들이 입주했다. 국내 뿐 아니라 당시 서독 등 외국 기업들도 여럿 익산 공단에 들어왔다.

 

철도 교통의 요지 익산을 표현하는 벽화


익산역 근처의 공구상들도 그와 함께 호황을 누렸다. 공구상 간의 활발해전 경쟁과 함께 하나 둘씩 대형 공구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공구상 직원으로 있던 이들도 독립해 자신의 매장을 차려 나갔다. 그리고 김제, 완주, 부안, 군산 등 타 지역의 사람들 가운데 익산으로 건너와 공구상을 차린 이들도 여럿이었다.

 

 

원활해진 교통으로 조성된 평화동 공구거리


공구상들이 여럿이었던 익산역 근처 중앙동 창인동은 시간의 흐름과 도시 발전에 따라 구도심화되어갔다. 양장점과 양복점, 금은방이 즐비하던 익산의 최대 번화가였던 중앙동(영정통거리)의 상가들은 8~90년대 무렵 비어갔다. 그즈음 익산역으로부터 1km정도 떨어진 평화동 일대로 공구상들이 이전하기 시작했다. 호남선 전라선이 지나는 철로 아래로 지하차도가 뚫리면서 평화동을 가로지르는 평동로의 차량 이동이 원활해진 덕분이다. 공구상 운영에 원활한 교통이 중요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후 평동로 일대 500m를 둘러싸고 많은 공구상 철물점과 공업소가 들어서며 평화동 공구거리가 조성되었다. 현재 평화동 공구거리에는 공구상 30여 업체 및 공업사 등 관련 업종 포함 약 50여 업체가 들어서 있다.

 

 

2세 전환 중… 공단입주 기업 지원 필요해


다른 공구거리의 공구상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익산 평화동 공구거리도 대부분 2세 운영으로 전환 중이다. 평화동의 대형 공구상들 가운데도 2세에 이어 3세가 운영하는 업체도 있다. 판매 대상은 공단의 공장 쪽 납품과 각종 건설업체 판매가 70% 정도, 일반 소매가 30% 정도를 차지한다.

 


익산시는 지난 2022년 전라북도 특별조정교부금 포함, 총 사업비 5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평화동 공구거리 예쁜간판 꾸미기 사업’을 진행했다. 사업 진행으로 공구거리 간판은 깔끔하게 새단장되었다. 하지만 평화동 공구거리 상인들은 간판 개선도 좋지만 그보다 산업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에 대한 시의 지원을 더욱 강하게 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익산시 1공단과 2공단은 거의 비어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대형 업체로는 익산에 본사를 둔 하림, 만도, 삼양식품, 오리온 정도뿐이다. 1공단의 수출자유지역은 현재 텅 빈 상태다.
지금도 인근 군산, 김제, 부안 등지에서 공구 구입을 위해 찾는 익산 평화동 공구거리. 앞으로 확정된 서해선KTX연장과 코스트코 개점으로 더욱 성장할 익산시와 함께, 2세 운영 전환중인 평화동 공구거리에도 과거의 영화가 되찾아오길 기대한다.

 

중앙로에서 바라본 익산역 모습

 


 

 

익산에서 50년 장사한 대흥볼트공구 조창현 대표가 말하는

평화동 공구거리 발전 필요사항

 

 

거리 상징물… 도로 주차문제 해결


재작년 시에서 공구상 거리를 위한 사업이라고 간판 정리를 했는데 별로 의미 없는 사업인 것 같습니다. 지금 평화동 공구거리 상인들은 거리를 상징하는 상징물 건립을 원하고 있죠. 평화동 공구거리를 자주 방문하며 공구를 구입해 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구거리가 알려져야 상권이 더 살아나지 않겠어요. 
또 여러 가지 사업을 도와주는 방안들을 찾는 것이 활성화될 방안일 텐데, 그 가운데 무엇보다 주차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랍니다. 공구 구입하러 오는 사람들은 다들 자동차 타고 오는데 가게 앞에 잠깐 주차했다고 주차딱지 끊으면 누가 오겠어요. 지금은 주차 시간이 좀 완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속 시원하게 해결되진 않았습니다.

 

공단 입주 기업 지원이 필요해


그리고 무엇보다 익산 공단에 입주해 있는 공장과 기업들을 위한 사업을 펼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공단이 살아야 공구거리가 사는 거니까요. 1공단같은 데도 큰 공장들은 다 떠났어요. 빈 자리에 누굴 위한 주차장인지 모를 주차장만 만들었고요. 사라진 수출단지 땅은 시에서 개인에게 팔았죠. 지금 평화동 공구시장 사람들이 거래하는 업체들은 중소 공장들 뿐이에요. 대기업 유치를 위해서도 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봅니다.

 


 

익산 평화동에 오셨다면 꼭 들르세요!

근처 가볼 만한 곳

 

아이들과 함께하는 역사배움터 
항일독립운동기념관

 

 

항일의병부터 만세운동까지, 익산지역 선열들의 호국정신을 알아볼 수 있는 기념관. 익산 남부시장 인근 옛 일본인 농장 자리에 자리잡은 이 시설은, 작지만 알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역사 공부를 싲가한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좋은 기념관이다. 익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볼 만 하다.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로4길 59

 


 

익산 근대의 역사를 한눈에
근대역사관

 

 

익산의 100여년 근대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역사관. 건물 자체가 등록문화재 제180호인 익산 구 삼산의원을 기증받아 복원한 건물로, 근대 초기 건축물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삼산의원은 독립운동가인 김병수 선생이 의원을 개원했던 건물이다. 고전건축양식이 근대건축양식으로 바뀌는 과도기적 건축을 보여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로 12-141

 


 

근대와 현대의 아름다운 만남 
문화예술의거리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에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체험하고 향유할 수 있는 여러 곳의 예술공방이 위치해 있다. 목공소, 미술, 음악, 캘리그래피 등 여러 종류의 공방을 방문해 각종 작품들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거리의 벽화나 각종 시설물들을 근대 느낌이 나도록 꾸며놓아 현재의 일상 속에서 근대의 모습을 맛볼 수 있게 꾸며둔 것 역시 특징이다.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 1가

 


 

글·사진 _ 이대훈 / 자료참고 _ 익산시 홈페이지, 디지털익산문화대전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