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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대전 성도상사 테크노점

 

공구 아닌 예술작품을 팔아요

 

대전 성도상사 테크노점

 

 

(왼쪽부터) 막둥이 김수아 사원, 성도상사 2세 정소윤씨, 근무한지 13년 차인 백명선 차장.

 

 

성도상사 테크노점은 조금 특이하다. 주택가나 혹은 공단 인근이 아닌, 각종 연구소와 IT기업들이 즐비한 테크노밸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 그보다 더 특별한 점은, 이곳에선 공구가 아닌 ‘작품’을 판다는 것.

 

정소윤씨가 제작한 달력.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디자인했다.

 

여기는 작품이 있는 공구상


대전시 유성구 대덕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성도상사 테크노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곧장 커다란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굽어 휜 소나무 줄기의 흑백사진이 담긴 액자.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故조임환 작가의 작품이다. 한 바퀴 매장을 둘러보면 그 외에도 액자에 담긴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성도상사 테크노점의 운영을 맡고 있는 박태숙 대표의 수집품들이다. 명품 ‘빽’ 사는 것보다 작품 사는 걸 더 좋아한다는 대표. 매장에 걸린 작품 가운데는 소형차 한 대 가격을 호가하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걸려 있는 예술 작품들만 작품일까? 천만의 말씀. 성도상사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들이 다 작품이다.
“저희는 여기 공구상에서 공구를 파는 게 아니라 작품을 판매하는 거예요. 그 중에서도 저희가 디자인 특허를 받은 공구세트 케이스. 이건 정말 작품이죠. 한 가지 공구를 구입한 손님은 분명 다른 제품도 필요로 하거든요. 그것들을 한데 모아서 세트로 구성한 제품이에요. 마치 007가방 같지 않나요?”
여러 브랜드의 공구들이 마치 제 자리인 양 딱 맞게 들어차 있는 공구세트와 공구함은 굳이 필요가 없더라도 하나쯤 보유하고 싶은 제품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로 하는 공구들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그렇다. 

 

성도상사 테크노점의 마스코트 반려견 다미

 

다섯 명의 직원 중 넷이 여성


현재 성도상사 테크노점의 직원은 박태숙 대표 포함 다섯. 그 중 넷이 여성이다. 일반적인 공구상의 직원 성비와는 정반대. 다들 멀티플레이어처럼 고객 응대부터 제품 배송까지 매장의 모든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매장에 없는 또 한 명의 여직원은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여직원이 많은 성도상사는 테크노밸리라는 그 위치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매장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고객들의 대부분은 연구소나 IT기업, 벤처기업들. 연구에 필요한 각종 공구들과 기자재 등을 주로 납품한다. 우락부락한 철재 공구들보다는 좀 더 작고 섬세한 연구 자재들과 하나하나 포장도 필요한 상품들은 꼼꼼하고 섬세한 여성 직원들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고, 성도상사 2세 정소윤씨는 말한다.
테크노점이 아닌 성도상사 본점은 대전 대화동 공구단지에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본점을 운영중인 정구홍 대표는 항상 넓고 깨끗하고 밝은 매장을 꿈꿨다. 그리고 5년 전 테크노점의 문을 열었다.
“애초에 테크노점을 차린 이유가 그런 업체들을 대상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어요. 처음 여기 문 열었을 땐 주변에 공구상이 한 곳도 없었죠. 말하자면 블루오션 같았달까요? 지금은 한두 군데 생겼어요. 처음엔 연구소나 기업의 실험실을 꾸며주고 실험실에 필요한 것들을 우리가 수입해서 갖춰줄 목적으로 차렸어요. 그런 제품들은 공구 유통회사에서 받는 게 아니라 과학기자재 유통사로부터 받아요. 직접 제조사로부터 공급받기도 하고요. 연구소 등에서 많이 찾는 제품들이 뭔지 판단해서 들여오는 거죠.”
취재를 하는 와중에도 여러 손님들이 매장을 찾았다. 개중에는 정장을 차려입고 방문한 학자 느낌의 손님들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찾는 공구상


1년 전쯤부터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2세 정소윤씨는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한 첼리스트다. 처음엔 육아휴직 간 직원을 대신해 그저 일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매장에 온 소윤씨는 곧 일에 재미를 느껴 공구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곧이어 꿈을 하나 갖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쉽게 찾는 공구상을 만들어 보자!’가 바로 그 꿈이다.
“솔직히 공구는 남자들 위주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공구에 관심 있는 여성분들도 많거든요. 가게에 구입하러 오시는 손님들만 봐도 그렇고요. 또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공구에 관심 가진 여자 친구들도 많아요. 그래서 저희 매장을 남녀노소 누구나 정말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공구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부드러운 일러스트의 달력 마케팅


그런 공구상을 만들기 위해 소윤씨가 진행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바로 달력 만들기다. 기존 업체에서 제작해 나눠주는 달력들에는 항상 제품 사진이나 풍경 사진 등 딱딱한 사진들로만 구성되기 마련. 하지만 공구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공구 일러스트를 그려 달력으로 제작했다. 처음엔 반응을 보려 50부만 제작했던 달력을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100부 추가 제작했다. 거기에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명 ‘철물공주’ 일러스트 스티커까지 만들어 제품 소포장지 위에 붙였다.
“공구업계 쪽에서는 이런 감성적인 걸 찾기 힘들어서 그런지 다들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또 달력을 드리면 그냥 가져가기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공구를 구입해 가시기도 하고요. 작년엔 150부만 찍었었는데 올해 겨울엔 좀 더 많이 찍어 볼 생각이에요.”

 

성도상사에서 디자인특허를 출원한 공구세트 중 하나. 스마토 등 여러 브랜드의 공구가 들어있다.


손님 오지 않아도 내가 즐기는 매장으로


공구상은 다른 업종에 비해 하루 근무 시간이 길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오랜 시간 근무해야 하는 공간이 즐겁지 않다면 직원들에게는 참으로 힘든 일일 것이다.
성도상사 테크노점 박태숙 대표는 매장을 공구상이 아니라 차 마시러 들르는 공구카페라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직원에게도 그리고 손님들에게도. 그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테크노점 한켠에는 커피머신과 찾아온 손님들이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바(bar)가 있다. 
“저희 집은 손님이 오지 않아도 별 부담 없어요. 그냥 카페처럼 내가 즐기는 공간인 거죠. 무조건 돈만 벌자? 벌자면 벌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아요. 직원들도 일하는 긴 시간동안 작은 즐거움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도 마시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겠죠.”
매장의 마스코트, 귀여운 웰시코기 다미도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를 높이는 일등 공신 중 하나다.

겉에서 보기에는 다른 매장과 별반 차이나지 않아도 안으로 들어와 보면 새로운 매력이 눈에 들어오는 공구상. ‘그 집 가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장. 성도상사 테크노점의 모든 직원들은 그런 공간을 추구하며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