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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탐방

경북 예천 대안철물건재

 

“라떼는 말이야~”

 

젊은 2세들에게 전하는 그 시절 철물장사 ‘찐’ 고생담

 

경북 예천 대안철물건재 안천식 대표

 

 

 

 

“요즘 2세들은 고생이라는 걸 몰라요. 고생은 무슨 고생 다 그냥 받아서 하는 거지.”
올해 나이 70. 대안철물 안천식 대표는 한창 일하던 그 시절 그 때를 떠올리면 요즘의 젊은 공구상들 그리고 2세들에게 해줄 말이 많다. 경북 예천군 풍양 전통시장에 위치한 매장에서 그와 나눈 인생 이야기.

 

 

17세에 부친 철물점에서 일 시작…고생고생하며 일해 온지 54년째


우리 아버지가 6.25사변 전부터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어요. 그렇게 장사하다 전쟁이 난 바람에 청도까지 파난 갔다가 휴전이 돼서 다시 여기로 돌아왔죠. 중학교 졸업하고 형 누나들은 다들 대구로 유학을 갔는데 저는 공부에 취미가 없어서 인근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영 아닌 것 같아 자퇴하고 아버지의 철물건재상으로 왔어요. 그 때, 열일곱살 때부터 지금까지 54년간 철물점 일을 해 온 거예요.
아버지 매장에서 10년쯤 일을 배웠을 때, 내가 스물다섯 나이에 결혼하고 1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스물여섯에 철물점 대표가 됐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 매장 같은 멀쩡한 건물도 아니었고 조그만 초가집이었죠. 그 초가집에서 장사를 하라고 어머니가 나를 독립시키더라고요. 정말 거의 아무 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여기 예천군 풍양면, 인구 3천명 밖에 안 되는 이곳에서 그래도 이만한 규모의 매장으로 키워 낸 거예요.
저 말고도 우리 또래 세대들은 다들 고생 많이 했어요. 뼈를 깎다시피 하는 어려움 속에서들 일을 해 왔죠. 우리 아들 세대들은 앞 세대가 다 차려놓은 밥상 가져다 준 걸 그냥 먹기만 하면 돼요. 지금도 일은 많고 바쁘겠죠. 그래도 윗 세대 앞에서 자기들 고생한단 소리를 하질 못하는 거예요. 지금 사람들 눈으로 봐서는 철물점 공구상 바쁘고 일 많아 보이죠. 새벽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영업 하지, 휴일에도 쉬질 않지…. 그래도요, 우리 세대들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고생도 아니에요.

 

 

예천에서 대구 왕복 8시간 거리…손발 얼어도 먹고 살려면 다녀올 수밖에


일을 시작했던 50년 전 무렵만 해도 자동차라는 게 없었어요. 부잣집 도정공장 하는 집에만 한 대 있고. 처음엔 자전거를 타고 양은그릇 싣고 옆 동네 행상을 가서 고물 받아오고 시멘트 같은 것들도 배달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큰 도시에 가 공구들을 구입해서 싣고 왔지. 그렇게 대구를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다녔어요. 가는 데 네 시간, 오는 데 네 시간씩 걸리면서. 그 당시 길도 다 비포장길이었죠. 일찍 출발할 때는 이른 새벽에 별 보고 출발하고 네 시간 가서 대구에 도착하면 거기서 아침을 먹어요. 물건을 싣고 돌아왔다가 점심 먹기 전에 다시 대구로 출발해요. 그렇게 밤 열 시에서 열한 시에 일을 마쳤어요. 하루 두 번 다녀오는 건 쉬웠죠.
겨울철 눈이 와서 잔뜩 쌓여있더라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 하는 거예요. 미끄러워서 오토바이가 제대로 가지도 못하고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다녔어요. 추위 때문에 손발이 얼어서 언 손가락 발가락을 가지대 삶은 물이며 콩 삶은 물이며 고추대 삶은 물 같은 데 담가 녹이기도 하고 오만 약을 다 썼어요. 안 그랬으면 동상 걸린 손가락을 잘라내야 했으니까. 요즘은 옷도 좋고 양말이며 신발이도 좋으니까 고생도 없지. 우리 때는 손가락 한두 개씩 없는 사람들 많았어요. 다 먹고 살려고 그랬던 거죠. 여기 근교 상주 문경 예천 안동 이런 곳에서 장사하던 공구상 철물점들은 저처럼 전부 다 대구에 가서 물건을 떼 왔어요. 요즘은 배송을 해 주지만 그 당시는 전부 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든지 차를 끌고 가서 물건을 챙겨 왔던 거예요.

 

 

종일 서서 장사해 다리가 띵띵 붓기도…그래도 번 돈 헤아리는 재미 있었어


지금 여기가 풍양시장이라고 전통시장인데, 예전에 장날이면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니 피가 아래로 몰려서 다리가 띵띵 붓는 게 예사였어요.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앉아서 손님을 맞으면 안 돼요. 항상 나가 서서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거지. 앉아서 응대하면 절대 안 돼. 손님이 한 명이 오든 두 명이 오든 곧장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서 있어야 해요. 
그때는 진짜 고생 많았어요. 가게에만 붙어있다가는 돈을 벌 수 없었으니까 오토바이에 갖가지 물건 싣고 각 지역 오일장을 찾아다니는 거예요. 찾아가서 조그맣게 자리 펼치고 삽이며 괭이 낫, 낫 가는 숫돌 이런 것들을 팔았죠. 그냥 여기 풍양시장에서만 팔면 두 개 팔 것, 다섯 지역 장을 가면 열 개 팔 수 있잖아요. 그렇게 돈을 벌었죠. 토요일 일요일 빼고 일주일 5일 중에 인근에 장이 서지 않는 날이 하루는 있어요. 그런 날에는 대구에 가는 거예요. 하루 그렇게 대구 도매하는 집에서 물건 사 가져와서 오일장 다니고 삼일장 다니고. 그렇게 장사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때를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들도 있죠. 제일 좋았던 건 장일 보고 집에 돌아와 따듯한 이불 속에서 우리 와이프랑 같이 벌어온 돈 헤아리던 재미. 많이 벌어서 좋았던 게 아니고 그냥 작은 돈이라도 내가 벌어온 돈을 만진다는 그 재미가 있잖아요. 봄에는 호미며 삽이 많이 팔리니까 호미 판 돈 헤아리는 재미, 추수할 때는 낫으로 벼를 베니까 많이 팔리는 낫 판 돈 세는 재미. 없던 사람이 돈이 생기니까 그 재미가 얼마나 좋아. 그렇게 장사해 와서 우리 자식들 서울로 학교 보내고 그랬던 거죠.

 

 

나뿐 아니라 우리 세대 다 고생했어…요즘 사람들 잔돈푼 귀한 줄 몰라


그때는 나만 그렇게 고생했던 게 아니고 우리 세대들 가운데 고생 안한 사람 없어요. 그렇게 고생한 사람들의 자식들, 지금 다 잘 살아요. 우리 아들도 여기 근처에서 농장을 크게 해요. 내가 투자해서 지어준 거죠. 서울에서 대학 축산학과를 나와서 지금 한우를 500두 이상 키워요. 원래는 철물점을 물려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자기는 장사는 하기 싫대. 하기 싫다는데 어쩔 수 있나요. 대신 서울에서 옷 쇼핑몰 하는 딸이랑 사위를 내려오라고 했어요. 내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 도저히 체력도 딸리고 무거운 것 들지도 못하니까 부른 거죠. 그래서 3년 전에 사위한테 대안철물을 물려 줬어요.
우리 사위는 체격도 좋고 힘도 좋아서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해요.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장사도 해 봤던 사람이니까 잘 해요.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 게 있죠. 예를 들어 작은 물건 하나, 천 원짜리 물건 하나가 빠져서 굴러다니고 밟히고 그런 게 보이면 우리들은 탁탁 털고 재포장해서 그것부터 먼저 팔거든요. 그런데 얘들은 차가 밟고 사람이 밟아도 작고 저렴한 거다 보니까 신경을 안 쓰고 결국엔 망가져서 버리고 말아요.
보면 돈이랑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 큰 돈은 고민하다 쓰면서 작은 돈은 쉽게 쓰잖아요. 물건도 비싼 물건은 신경 써 관리하는데 작고 저렴한 건 하찮게 생각하고. 작은 게 모여 돈이 된다는 걸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 나이든 세대들은 작은 돈일수록 계산을 먼저 해요. 물 한 병, 하드 한 개, 빵 한 개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돼요. 우리 사위랑 아들에게 항상 얘기를 해요. 잔돈의 소중함을 알라고. 잔돈푼 함부로 쓰는 사람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어요. 

 


쉽게 돈 벌려 하면 안 돼…급성장한 업체는 90%가 엎어져


그런데 우리 사위가 자주 하는 말이 ‘사업 범위를 키우고 싶다, 가게를 확장하고 싶다’ 그런 말들이에요. 그게 다 뭐예요 돈 아니에요 돈. 여윳돈이 있어야 확장을 하든 뭘 하든 할 텐데 재정이 튼튼하지도 않으면서 앞서 나가서 사업을 늘리고 매장을 확장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돈이라는 것의 가치가 너무 떨어진 것 같아요. 몇 백만 원은 둘째 치고 몇 억 원도 쉽게 생각한다니까요. 또 너무 쉽게 돈을 벌려고 하고. 예를 들어 연말에 덤핑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면 그걸 사자고 하는 거예요. 싼 가격에 많이 살 수 있으니까요. 그래, 싸게 사는 건 좋다. 그런데 한 달에 한 개 팔리는 걸 싸다고 한 번에 열 개 사버리면 일 년 동안 팔아야 한다. 그 일 년에 다른 물건 열 바퀴를 돌리면 마진 더 나올 텐데 싸다고 한 번에 많이 살 필요는 없다는 거죠.
욕심을 부려야 돈을 버는 건 맞아요. 그런데 저희 사위는 이제 철물점 장사를 한지 3년밖에 안 된 상황이거든요. 돈이라는 건 한꺼번에 벌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벌어도 기초를 탄탄하게 다진 사람이 벌 수 있는 거지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한 업체들은 90%가 다 엎어져 버려요. 철물점도 10년 20년 해서 경험도 쌓고 돈도 여유가 있을 때 건물을 넓히든 뭐든 생각해야 하는 거겠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 그래도 철물공구업은 망하지 않아


요즘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죠. 공구 유통회사도 큰 곳이 있지만 요즘은 쿠팡도 있고 또 소규모 온라인 공구상들이 얼마나 많아요. 셀 수도 없죠. 우리 사위가 의류 인터넷 쇼핑몰도 하던 애다 보니까 인터넷을 잘 만져요. 그래서 쿠팡 같은 곳에서 물건을 들여오기도 하고, 또 소비자들이 찾는 물건이 있다면 인터넷으로 금방 구입해서 배송지를 손님 쪽으로 해 놓기도 하고. 중간 마진만 좀 챙기고.
그런데 아무리 시대가 빠르게 변하더라도 철물공구건재상은 할 만한 일이라 생각해요. 생선 가게, 옷 가게 같은 업종을 보면 옷은 유행을 따라야 하고 생선은 싱싱한 때에만 팔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업종은 상하고 버리는 게 하나도 없어요. 더 팔리고 덜 팔리고 그 뿐이죠. 대신 마진도 폭리도 없고 고정 마진으로 가긴 하지만. 그래도 보면 전국에 철물점 공구상 가운데 망한 집 한 집도 없어요. 다니면서 봐요. 옷 장사 생선 장사 술 장사 식당 이런 가게 망한 집은 수도 없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 업종은 절대 그렇지 않죠.
또 철물 건자재같은 물건들은 시간이 흘러 왔어도 예전이랑 비교해서 변화가 별로 없어요. 사람이 사는 데 언제든 꼭 필요한 물건이고. 그러다 보니 시대가 변하더라도 사라질 수 없는 업종이라고 생각해요.

 

 

생각이 넓은 젊은 세대 공구인들… 그래도 급히 삼키면 급체해


자기들이 하려는 걸 아직은 내가 많이 말리고 있지만, 그래도 보면 우리 딸 사위처럼 젊은 세대들은 우리 나이든 세대보다 시야가 훨씬 더 넓은 것 같아요. 생각도 다르고. 저는 처음 10가지를 가지고 장사해서 지금까지도 10가지로 끝났어요. 그런데 젊은 쟤들은 내가 10개를 주면 100개로 벌려 놓고 보고 있어요. 우리 사위도 제 나름대로 목표를 가지고 뭐든 해보려고 해요. 예전 하던 경험을 살려서 인터넷 매장도 꾸리려고 하고. 지금 여기가 작은 시골이다 보니 더 팔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죠. 공구 매입도 꾸준히 해 오던 곳에서도 하긴 하지만 새로운 업체들도 개발을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판매 품목도 조금씩 늘리고 있고.

 


하지만 중요한 건 기초부터 탄탄히 나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단계적으로 키워야 단단해지는 거지. 시골에서 농사짓는 것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적게 벌더라도 조금씩 모아 가며 장사하는 사람들은 망할래야 망할 수 없어요. 아이들에게 늘 하는 소리가 그거예요. 너무 허황된 꿈을 가지지 마라 첫술에 배부르려면 무조건 탈이 난다 작게 씹어 삼켜야지 한꺼번에 넘기면 급체한다. 우리 사위같은 젊은 공구인들이라면 꼭 이 말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왕 시작한 공구와 함께하는 인생, 고달프더라도 아버지 세대들의 노력과 인내를 떠올리며 버텨 내길 기원드립니다.

 


 

70세 안천식 대표가 젊은 공구인에게 전하는 메시지

 

1.  잔돈푼의 소중함을 알아야 부자가 된다.
2.  장사하는 사람은 앉아서 손님을 맞아선 안 된다.
3.  가만히 있지 말고 판매처를 찾아 돌아다녀라.
4.  첫술에 배부르려면 탈이 난다. 돈도 마찬가지다.
5.  짧은 시간 급성장하면 90% 망한다. 차근차근 해라.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