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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PEOPLE] 여성 용접 기능장 이선숙

 

주부에서 용접기능장으로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연 그녀

 

용접기능장 이선숙

 

 

 

 

아이가 있는 40대 여성.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경력단절녀라고 불리곤 하는 이들이 다시 사회로 진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선숙 씨는 그저 용접이 좋아 불혹의 나이에 용접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은 모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선숙 기능장 집 거실에 놓인 공구들. 거실이 아니라 차라리 작업실 같다.

 

 

인형보다 전화기 조립이 재미있던 그녀

 
애초부터 남다른 그녀였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는 인형놀이나 주방놀이보다 전화기 같은 기계를 분해해 보고 그걸 또 다시 조립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어디 전화기 뿐이랴 각종 로봇 조립은 물론 고장난 자전거도 자기가 직접 수리하곤 했단다. 그런 일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어린시절의 자신을 묘사해 보라는 질문에 이선숙씨는 ‘선머슴아’라고 대답했다.


“신기하잖아요. 전화기로 먼 데 있는 사람과 목소리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게. 머리로는 알겠지만 그래도 직접 뜯어서 보는 것만 못하잖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남동생 준다고 산 과학상자도 제가 가지고 놀았죠. 아빠가 뭔갈 분해할 때는 유심히 봤어요. 그랬다가 다시 조립할 때 ‘아빠 그거 아니라 이거 넣어야 되는데’하고 말하곤 했죠.”


얌전히 지내는 것보다 각종 망가진 물건들을 고치고 수리하는 데 더 관심있었던 그녀는 결혼 후 아이를 키울 무렵에도 보통은 남편들이 하곤 하는 아이들 레고만들기나 글라이더 만들기 같은 것들도 남편 대신 자신이 직접 하곤 했다.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용접에 관심 생기다

 
이선숙씨의 첫 직장은 나이 스무 살 무렵 들어갔던 무전기 만드는 회사였다. 회사에서는 반도체에 칩 붙이는 일을 했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며 야간에는 국비로 캐드(CAD)를 배우러 다녔다. 처음엔 캐드가 뭔지도 몰랐지만 ‘컴퓨터로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라는 말에 관심이 끌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6개월 교육을 받아 캐드 기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캐드 능력을 살려 익산의 작은 소각로 제작회사로 직장을 옮겨 일을 하다 기계의 설비 보전과 설비 제작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용접까지 접하게 됐다.


“기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사장님이 용접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TIG용접이 1톤 무게까지 버틴다고 하는 거예요. 제대로 된 용접 한 방이 1톤을 버틴다는 소리에 매력을 느꼈죠.”


용접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지만 용접 관련된 설비 일을 하는 남편은 절대 반대했다. 어떤 남편이 자기 와이프가 용접 배운다는데 OK를 하겠냐면서. 하지만 꿈에 불타오른 그녀는 남편 몰래 덜컥 강의에 등록해버렸다. 한국폴리텍대학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선숙 기능장이 가르치는 산업설비과 학생들과의 회식자리 모습

 

 

지역인재교육 거쳐 용접기능장 자격증 취득

 
2016년 한국폴리텍대한 익산캠퍼스 산학협력처에서 모집한 지역산업맞춤 인력양성 과정을 수강했다.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그곳에서 선반, 밀링, 전기, 전자, PLC, 용접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그녀의 열정을 알아본 학과장의 용접을 더 깊이 배워보란 제안에, 수강을 마친 다음 해엔 폴리텍대학 산업설비과에 정식으로 입학해 용접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정말 주변의 반대가 많았죠. 40대 주부가 용접을 배운다고 하니까요. 남편 출장갔을 때 몰래 원서 접수하고 용접을 배웠는데 영상통화하다가 걸렸어요. 알곤용접은 살짝만 불을 쬐도 살이 빨갛게 타거든요. 남편 본인이 용접사니까 한번에 알아보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이선숙씨가 용접을 배운다는 사실에 남편의 반응은 쌔-하기만 했다. 용접에 대해 뭘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남편은 물론 주변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야말로 ‘독하게’ 용접기능장 공부를 했다. 한여름 아침 아홉시 반에 학교에 나와 야간반 끝나는 시간인 저녁 아홉시 반까지. 입고 있던 작업복이 땀으로 하얗게 절 때까지 매일 그렇게 연습을 했다. 연습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 하루가 개운하게 마무리되는 기분이 또 쏠쏠해 더 열심히 했고 결국 용접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푹 빠진 용접의 매력… 지금은 후배 교육도

 
이선숙씨는 용접을 마무리하고 나면 생기는 비드(녹아 붙은 금속의 모습)가 그렇게 예쁠 수 없단다. 제대로 용접해 비드가 예쁘게 나오면 그것만큼 뿌듯한 게 또 없다고. 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금속들을 붙일 수 있다는 매력. 아마 그런 것들이 자신이 용접에 빠지게 된 계기일 거라 말한다.
지금 남편은 이선숙씨가 물어보지 않아도 오히려 자기가 먼저 용접에 대해 알려준다. 용접 전문가인 남편과 용접기능장 그녀. 집에는 둘의 공구뿐 아니라 전자융합공학과에 재학중인 아들의 공구까지 한가득이다.


“제 남편은 물론이고 아들도 공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남편은 공구상에 가서 용접 관련 신제품 공구가 보이면 무조건 사 와요. 가격이 얼마든 뭔 상관이야. 저희 집 거실은 거실이 아니라 작업실이에요.”


용접기능장 취득 후 다양한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회사에 다니던 그녀는 지금 잠시 퇴사를 하고 자신이 공부했던 모교 폴리텍대한 익산캠퍼스에서 외래 강사로 활동 중이다. 학생들은 10대부터 5~60대까지 다양하다. 그런 후배들에게 자기가 가진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 그럴 수 있는 것도 이선숙 기능장은 참 뿌듯하다.

 

취득한 용접기능장 자격증

 

 

겨우 절반 산 인생… 꿈을 가져라


10년 후의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묻는 질문에 이선숙 기능장은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 강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전기용접부터 TIG용접, Co2용접까지 제가 가르쳐서 자격증 따고 취업하는 후배들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앞으로는 정교수가 돼 학생들에거 더 적극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요.”


이선숙씨는 과거의 자신처럼 경력이 단절된 40대 여성들에게도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주변을 살펴보면 미래 준비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정말 많다면서. 또한 찾아보면 자신이 교육받았던 폴리텍대학처럼 무료로 배울 수 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요즘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잖아요. 나이 40이면 겨우 절반 산 거예요. 남은 반절을 위해 2~3년 투자하는 것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노력해 보세요. 자기 인생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요.”

 

 

글·사진 _ 이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