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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CULTURE

[EXHIBITION] 청계천박물관 공구상가전

 

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 


청계천박물관 기계공구상가전 

 

-서울시 기획, 12월 10일 ~ 4월 10일 전시… 공구인 관람 추천 
-기계공구상가 공구인의 놀라운 성과 알려

 

 

지난 12월 10일부터 서울 청계천박물관에서는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일상 속 물건에서부터 최첨단기계까지 만들어내는 청계천 소상공인의 힘과 지혜를 기록한 전시다. 공구인이라면 친숙한 청계천 공구거리의 놀라운 성과 기록 현장을 방문해 보았다.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알려주는 박물관

 

청계천박물관은 서울 청계천 일대의 역사를 주목하고 기록·전시하는 청계천 전문 박물관이다. 이곳의 상설전시실에서는 서울 청계천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청계천박물관은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서울 청계천과 사람을 중심으로 한 생활문화를 조사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번에 마련된 기획전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 : 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는 2021년도에 발간한 보고서 ‘청계천 기획연구2 : 청계천기계공구상가’를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해당전시를 기획한 박현민 학예사를 만나 기획전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청계천박물관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 2005년 9월에 개관했습니다. 청계천의 역사 및 생활·문화· 생태에 관련된 내용을 전시하고 있죠. 서울역사박물관은 2010년에 청계천의 상공업 활동, 상인과 기술자, 상점과 작업장에 대한 사회문화사적 기록인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도심 속 상공인 마을’을 발간한 바 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현재 청계천은 도심 재정비 사업이 가시화 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한 이주와 철거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청계천 지역이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오고 어쩌면 과거부터 이어온 지금의 모습이 사라질 수도 있죠. 이 시점에서 저희 청계천박물관은 충분한 조사와 더불어 기록의 시간을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 기획 전시를 마련했습니다.” 
청계천박물관이 준비한 기획 전시 기계공구상가는 서울 종로구와 중구의 청계천로 3, 4가 ‘장사동’, ‘입정동’, ‘산림동’ 지역의 상공업과 그 종사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전시 구성은 <청계천 기계공구상가>, <공정工程 정밀하게 빈틈없이 완벽하게>, <청계천 제작연대기>, <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 <청계천 사람들> 5개 주제로 나뉘어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공구인에게는 친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선 단어들이 들어간 간판들이 연출되어 있다. 마치 청계천 공구상가를 거니는 느낌이다. 

 

박현민 학예사 

 

재개발이 현실화로 10년 전과 달라져

 

서울 청계천 공구골목은 ‘탱크부터 인공위성까지 한 번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떠돈다. 한국 공구제작 및 유통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서 깊은 공간이 청계천이다. 청계천박물관이 청계천 지역 기계공구상가를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박물관은 청계천이 흐르는 길의 주변부 변화와 생활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는데요. 지천조사의 경우 청계천이 어디서 시작되는가와 같은 물길조사를 했고 그 이후 청계천과 관련된 도시생활문화조사의 일환으로 기계공구상가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청계천 공구상가 지역은 도심의 산업생태계가 조성된 곳이라 매우 특별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10년 전인 2010년에 한 번 조사가 이루어졌을 때는 재개발이 언급만 되고 있었던 반면 지금은 재개발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어요. 그리고 연구 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입정동에서 장사동으로 장사동에서 산림동으로 상인분들, 자영업자분들이 청계천 내에서 이동이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청계천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간 것이죠. 물론 변화도 있습니다. 재개발로 인해 물리적인 변화가 현실적으로 벌어지고 있고요. 지게꾼이나 이런 업종분들이 예전에는 계셨거든요. 물건을 지게로 지어서 배송해주시는 분들이요. 이제는 그분들이 사라지셨죠. 물건을 전달 할 때 이제는 퀵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직접전달 하는 방식이 되면서 그런 직업군 자체가 사라지게 된 거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10년 만에 청계천을 다시 찾은 조사단은 기존의 상공업자 및 업체들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된 내용을 보고서로 만든 것이 청계천 기획연구보고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다. 청계천박물관의 기획전시도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청계천 공구상가의 제작능력에 주목

 

서울 청계천에 기계공구상가의 싹이 튼 것은 6.25전쟁을 전후한 때이다. 물자가 부족한 시절 미군부대의 밀수품은 좋은 공구 및 원자재가 되었다. 청계천은 비교적 미군부대와 가까워 시장의 형성이 쉬웠다. 1950~60년대에는 주로 구역의 외곽에서 상거래가 이루어졌고 안쪽에는 일반 가정집이 많았던 것으로 조사된다. 영업점과 주거지가 혼재하다 청계천 복개공사(1958-1977)와 세운상가군 건립(1967)의 영향으로 골목 안으로도 전기 전자부품상과 영세한 기계 공구 공장, 공구유통상이 밀집하게 된다. 이후 1970~80년대에 지금과 같은 상공업 클러스터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기획전시에서는 청계천 지역 역사와 함께 생산능력 부문을 주목했습니다. 소비자가 요구하면 소량으로 생산해서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진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특별하거든요. 이런 주문 제작 생산, 그리고 유통이 한 번에 되는 곳은 청계천 지역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에서는 영세 공업자들을 주목했습니다. 예를 들어 청계천에 조명 가게가 왜 이렇게 많을까 살펴보면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는 작은 공장이 매우 가까이 있어서입니다. 이런 청계천 지역의 제조능력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되었다고 판단했죠. 공구 유통하는 분들도 공구를 직접 주문 제작하거나 기존의 제품을 개량해 바로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이 가능했고요. 그래서 전시에 있어 제조능력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가공, 가공, 후가공 과정을 거친다. 청계천 골목의 간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빠우’, ‘밀링’, ‘시보리’ 등과 같은 용어는 가공단계의 공정들을 말한다. 선반 밀링, 용접, 빠우(연마), 칠 착색의 작업자들이 모인 청계천에서는 다양한 기계 공구들이 제작되었고 동시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공구골목도 형성되었다.

    


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 만든 청계천

 

송호준 작가의 인공위성 

 

청계천 기계공구상가 전시는 청계천에서 붕어빵틀 같이 일상적인 물품부터 인공위성 같은 첨단 시제품까지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최첨단의 실험적인 작품을 만든 것으로는 송호준 작가의 인공위성 이 있다. ‘붕어빵틀’과 ‘인공위성’은 청계천 기계공구상가의 넓은 제작 스펙트럼을 보여주는데 박현민 학예사는 전시된 붕어빵틀의 경우 박물관이 청계천 주물제작업체에 직접 의뢰해 제작한 것이라 말한다. 
“풀빵 장사는 1950년대에도 있었고 붕어빵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붕어빵의 경우 먼저 석고집에서 석고틀을 뜨고 거기에 주물공정을 더해서 완성되지요. 인공위성 같은 경우 2013년 송호준 작가가 실험적인 작품 인공위성 를 카자흐스탄에서 우주로 날려 성공했는데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인공위성 주요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청계천이었다고 합니다. 청계천은 인공위성 부품을 만들 정도로 정밀하게 재료를 깎거나 다듬는 작업이 가능한 곳이죠. 이처럼 소량으로 어떤 공구나 부속을 주문 제작 받는 곳이 청계천 기계공구상가입니다.” 
전시에서는 폭넓은 청계천의 제작능력과 함께 청계천 사람들을 주목한다. 기계공구상가의 1세대 제작 기술자 중에는 북에서 온 피난민이 많았고, 2세대 기술자들은 1960~70년대에 지방에서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기획전시는 이들을 급변하는 1980~90년대 한국 산업화의 주역으로 소개한다. 

 

서울 올림픽 엠블럼 배지 금형틀 발견

 

전시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점을 물으니 박현민 학예사는 청계천의 명성에 비해 보여 줄 수 있는 전시물의 부족함을 꼽았다. 사실 물건을 제작하는 사람과 유통하는 사람 모두 제품의 경우 팔면 끝이지 소장할 필요성은 없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도 창고 속 굴러다니는 고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전시물 발견은 어려운 일이다. 기획전시를 준비하면서 늘 느끼는 시간과 공간의 부족도 아쉬웠다고. 그러나 학예사의 시선으로 전시하면서 역사적 물건을 발견했으니 바로 제24회 서울 올림픽 엠블럼 배지 제작용 금형이다. 

 

서울 올림픽 엠블럼 배지 금형틀


“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제작된 올림픽 엠블럼이 새겨진 배지는 박물관이 소장하던 유물로 존재했어요. 그런데 청계천의 광신공업사에서 배지 제작에 활용했던 금형을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죠. 물론 모든 엠블럼 배지를 광신공업사에서만 만든 것은 아닐 겁니다. 당시 여러 곳에 주문해서 제작했겠죠. 그러나 올림픽 기념 배지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물품이고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배지와 엠블럼 배지는 1988년 당시 외국배지 3, 4개와 교환되었을 정도로 인기였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서울올림픽은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런 엠블럼을 제작하는데 사용된 금형틀을 발견한 것은 전시에 있어 참 좋은 일이었죠.” 
박현민 학예사는 기획전시를 할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직접 조사한 보고서 내용을 전시에 다 담을 수 없어 아쉽다고. 실제로 조사 보고서와 기획전시는 결을 달리하는 분야다. 공구유통업에 대한 조사를 했어도 기획전시에는 묘사하기 어려운 이유가 유물, 영상자료, 사진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그나마 청계천 지역 공구유통 원로의 구술 자료를 보고서에 남긴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청계천의 변화를 마주한 기계공구상가

 

현재 청계천은 재개발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제조업체 중 몇몇 업종은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청계천을 떠나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청계천 기계공구상가의 역사는 정부의 이주 이전 요구와 끊임없이 대립하는 동시에 서울산업의 압축 성장과 함께한 역사다. 
“앞서 말했듯 여러 가지 작업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 청계천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도심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 곳이죠. 이곳만의 그런 독특한 에너지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의 라디오는 굉장한 첨단기기였거든요. 당시 6.25전쟁을 막 끝낸 한국에서 라디오를 만들고 부품을 구할 수 있었던 곳, 중고부품을 모아서 완전한 라디오를 만들 수 있었던 곳은 청계천뿐이었어요. 과거의 청계천은 첨단기술력이 들어간 전자 부품, 첨단 기계 공구를 구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반면 정부는 1960년대부터 청계천의 업체들을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는 것을 추진했습니다. 인구과밀 문제, 보다 쾌적한 도시 환경을 생각하면 주물공장 같은 곳은 도시 외곽에 이전해 주길 원했죠.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청계천 기계공구상인들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기계공구 제조 및 유통 상인들은 청계천의 재개발 이후에도 새로운 모습으로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6.25전쟁 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 청계천에서 모인 각종 기계, 전자, 공구들은 다시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청계천 장인들이 만든 88올림픽 배지는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고, 어느 청년의 인공위성을 향한 상상력은 이곳이 가진 기술로 현실이 되어 우주로 날아갈 수 있었다. 청계천박물관 기획전 <청계천 기계공구상가 : 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는 4월 10일까지 전시된다. 관람 시간은 평일 및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많은 공구인들이 관심이 기대된다. 

 

글·사진 _ 한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