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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자산키우는 법] 1000억 자산의 시작 매월 모은 10만원

 

신흥폴리테크 지승하 대표의 자산키우기 비법 공개 - 1부

 

1000억 자산의 시작 매월 모은 10만원

 

우선 내가 가진 자산 1000억 원은 부채도 자산이라는 회계원칙에 입각한 금액으로 산출한 것이니 오해 없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내가 살 집은 0순위로 결정하고, 내 사업장 투자에는 망설이거나 깊이 고민하지 않아야 한다. 가능한 모든 투자는 땅(토지)을 밟고 있는 건물을 매입하는 게 좋다. 나는 이 투자 원칙을 지켜 자산이 늘었다. 앞으로 서술 할 나의 경험이 앞날을 고민하는 젊은 공구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방 빼’라는 말 한마디에 투자 공부


“집이 팔렸으니 방 빼세요.”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큰 계기는 방을 빼 달라는 집주인의 한마디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첫째 딸을 안고 이사를 하며, 나는 내 가족의 보금자리를 가장 먼저 장만하겠다고 결심했다. 내 집 장만을 위해 부동산 서적과 경제지를 닥치는 대로 탐독했고, 월급 15만 원으로 선매 청약 통장을 만들어 내 집 장만을 이뤄냈다. 이후 사업체 매장의 월세가 아까워 내 매장을 사들였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것처럼 1억을 모으기까지는 힘들었다. 하지만 1억을 모으니 10억은 시간문제였다. 매출도 마찬가지다. 입사 때 연 매출 1억을 달성하니 9년 만에 연 매출 10억이 되더라. 다니던 회사를 인수 받은 이후 2021년에는 매출 120억, 그리고 지금 현재 나의 총자산은 1000억에 이르렀다. 

 

계란이 닭이 되고 닭은 다시 알을 낳고


나는 효율적인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키워냈다. 마치 계란을 얻어 닭을 키워내는 것과 같다. 계란 같은 종자돈에 힘을 얻어 대출을 받아 살찐 닭과 같은 부동산을 구매했다. 시간이 흐르자 자산 담보 가치 상승으로 회사의 신용등급까지 상승했다. 신용등급이 상승하자 저렴한 금리를 받을 수 있었고 다시 대출을 받아 자금 활용의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남의 집 살이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얻은 지혜로 부동산을 늘렸다. 그리고 자본 구조를 터득하여 절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회사도 자산도 재무적으로 아주 튼튼한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우선 월급의 2/3를 저축한다


군 제대 후, 1983년. 나의 첫 직장은 영등포에 위치한 작은 공구상 ‘신흥사’였다. 그때 나는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어떤 난관이 있을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닌 현재였고, 나는 모든 에너지를 '지금, 여기'에 쏟았다. 당시 공구상 직원으로 받은 나의 급여는 15만 원이었는데, 생활비 5만 원을 제외한 10만 원을 매달 저금했다. 통장을 보며 나는 성공할 때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소비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지금 현재 일군 1000억대 자산은 그 10만 원에서 시작되었다.

 

부동산 투자는 쉬운 것이 아니다. 전문가와 함께 여러가지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며 수익성을 찾아야 한다.

 

직원으로 일해도 주인처럼 일하자


1980년대 당시 서울 영등포 상가는 청계천 상가와 더불어, 6.25전쟁 후 자연스레 형성된 대한민국 산업용재 유통업의 모태였다. 나는 군에서 하던 습관대로 5시 30분에 기상해 6시 30분에 출근해 매장을 쓸고 닦았다. 주변 상가 사람들은 신흥사에 명물이 왔다며 온 관심을 쏟았다. 당시의 나는 한 달 휴일 2번, 격주로 일요일에만 쉬었다. 당시 점포 월세는 60만 원이었는데, 하루 월세가 2만 원이라는 생각에 나는 쉬는 것도 아까워 일요일에도 출근했다.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절이라 산업 현장 일요일 가동이 많았고, 운이 좋으면 휴일에도 몇 백 만원 매상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신흥사 사장님이셨던 권기두 대표님은 이런 내 모습을 무척 사랑해 주셨다. 일하는 것도 습관이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장의 모습은 사원 일 때 만들어 진다. 주인처럼 일하는 직원은 자의든 타의든 결국 사장이 된다.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나는 소매 손님이 적은 금액의 물건을 구매해도 언제나 차나 커피를 타서 대접해드리곤 했다. 그러자 손님들은 고마운 마음에 매상을 더 올려 주곤 했다. 내가 외근을 시작한 이후에도 소매 손님들은 매장에 들르면 항상 나를 찾았다. 점포에 오신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던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준 것이다. 나는 그때, 어떤 일이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인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인간관계는 기본적으로 Give and Ttake다. Give and Take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도 포함된다. 성공은 분명,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와 상대에게 Give, 무언가를 베푸는 것에서 시작된다.

 

거래처 1곳은 곧 100곳의 거래처


일 년 정도 내근을 하다가 외근을 시작했다. 영업 없는 성공은 없다. 나는 매일 매상을 올릴 방법을 고민했고 납품 업체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1980년대 영업 일을 하던 시절, 나는 9인승 봉고 2대를 폐차시킬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었다. 당시에는 개인은 물론 회사 한 부서에 차량이 한 대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내 봉고차는 납품만이 아니라 거래처 직원들의 버스처럼 사용되었다. 나는 거래처 직원들의 일이라면 문상, 돌잔치, 결혼식, 회갑 등 전국 어디라도 달려갔다. 내 부모님 묘에 벌초는 못 가도 거래처 직원들의 벌초를 했고, 가을 시제 때는 떡시루들 메고 거래처 직원 조상 산소에 절을 올렸다. 나는 거래처 하나를 지키면 백 개의 거래처가 생긴다는 생각으로 늘 최선을 다했다. 

 

1000억의 자산이 있어도 이따금 거래처에서 급히 찾는 제품이라면 직접 준비하기도 한다.(좌) 신흥사를 모태로 하는 신흥폴리테크의 주력 판매상품은 고무벨트다.(우)

 

직원이었던 내가 물려받은 ‘신흥사’


성과를 내려면 노력과 시간을 지불해야 하고, 더 큰 성과를 원하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지불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가 타인과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어 살지 않는 한,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상대를 변화시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과정의 반복이다. 영업이라 부르든, 설득이라 부르든. 면접이라 부르든 결국 다 같은 맥락의 일이다. 중요한 건 한 번의 판매가 아니다.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신흥사에 입사한 지 10년이 되었을 때, 권기두 사장님은 은퇴를 하시며 내게 신흥사와 거래처를 모두 물려주셨다. 가족도 아닌 일개 직원이었던 내게 회사를 물려주신 이유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믿고 신뢰하여 자신의 사업체와 거래처를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대 중반에 이를 때 까지 나는 분명 평범한, 어찌 보면 가난했던 공구상 직원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공구상 신흥사를 발판 삼아 본격적으로 투자하여 자산을 불릴 수 있었다.

 

 -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