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과 계약 미국시장 본격 진출 - 코릴

글로벌 기업과 계약 미국시장 본격 진출 - 코릴





코릴은 대만, 일본, 러시아, 유럽 등에 자사 브랜드를 수출하는 한편, 국내 조선소, 중공업, 발전소, 항만 및 공항에 사용되는 케이블 릴을 생산, 납품하고 있다. 특장차 릴과 호스 릴 분야에서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업계 선두주자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용 릴 전문기업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제품력을 인정받고 있는 코릴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기업 G사와 계약을 맺고 미국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있다. 현재 16개 아이템부터 시작해 수백 개 품목으로 늘어난 상황. G사와의 첫 인연은 5년 전이다. 당시 G사는 중국기업과 동시에 견적을 받은 후 20~30% 저렴한 중국업체를 선택했었다.
“몇 년 안에 다시 우리에게 올 것이란 생각을 했죠. 15년간 해외전시회란 전시회는 다 다녔어요. 국내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해외시장에서의 잠재성도 확신했으니까요. 해외 43개국과 거래하고 있는데, 동종업계 제품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중국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노하우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오현규 대표의 이런 확신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 업체들을 방문해보면 들어가다 만 호스가 얽혀 있는 릴들이 창고에 가득 쌓여있는 걸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제품의 질도 문제지만 사후 서비스도 문제인 것. 기업을 경영해오면서 사용자의 입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겪는 등 어렵고 힘들게 지나온 과정이 있었기에 코릴의 기술력과 노하우는 아무나 쉽게 따라오지 못한다고 자부한다. 유저들도 코릴에 대해 만점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미국기업의 경우 모든 문서가 텍스트화 되어 있고 대충 일하는 걸 못 봤어요. 문서만으로 평가하거나 단순 테스트로 점검을 완료하는 게 아니라 기술자가 각 스펙에 대해 하나하나 분석하고 체크하더라고요. 포장의 단위, 방법도 다르고요. 제품의 품격이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IMF 당시 실질적 성장기회 잡아
 
여느 기업처럼 코릴에게도 어려운 시기는 있었다. 바로 IMF 외환위기다. 
“당시 어음을 발행할 때인데, 저희가 거래하던 특약점에서 부도를 맞았어요. 다행이도 제 철칙이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어음을 할인하는 거였는데, 당시 중앙회 어음공제기금에 들면 10배씩 할인해 줬죠. 더 큰 장점은 부도를 맞았을 때 도산방지 대출까지 해준다는 겁니다. 무담보, 무이자로요. 그래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어요. 마침 삼성자동차 태동기이기도 해서 전국 정비공장 라인을 저희가 다 했어요. 그렇게 살아남게 된 겁니다.” 
IMF 이후에는 어음이나 수표가 사라지고, 현금거래로 바뀌며 오히려 기업환경이 나아졌다. 적정인원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일하면 되었다고 당시를 회상하는 오 대표. 기아, 현대, 삼성자동차 등 정비공장마다 다 거래했다. 환율이 뛰니까 수입이 막히면서 수입대체품으로서 코릴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말 바쁘게 
1년을 보내며 자사 공장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실질적으로 부도를 맞고 악성채권 때문에 어려웠지만,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어 급성장의 계기가 된 것이다. 
“코릴의 경우 400여 가지 품목을 취급합니다. 생산라인이 길어야 하고, 부피산업이기 때문에 장소가 좁으면 사업하기 힘들어요. 당시 부동산가격이 하락했을 때 부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 실질적인 성장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동시에 좋은 기회들도 찾아왔고요.”


 
못하더라도 일단 부딪혀 해결, ‘현장 해결사’로 소통
 
코릴은 주문생산도 있지만 스탠다드 제품을 포함, 다품목 생산을 지향한다. 부설연구소 직원만 해도 7명, 제품기획에서부터 설계, 도면승인, 생산까지 포괄한다. 주문생산의 경우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지기 때문에 맞춤형으로 제작,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철저한 품질관리는 물론 생산 및 사후관리까지 디테일하게 살핀다. 
사업초기인 91년에만 해도 제품을 팔아서 수리해주려고 지방에 나가자면, 몇 대를 더 팔아야 비용이 나왔다. 그러나 오 대표는 고객신뢰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지금까지 임해왔다. 
“신뢰는 고객에게 받아야 되는 거지, 그냥 나오는 게 아닙니다. 부산, 목포, 어디든 쫓아갔죠. 한번은 브라질 상파울루 현대자동차 건설라인에 제품을 납품했는데, 저희 잘못으로 생산라인 전선이 끊어져버린 거예요. 우리 실수를 인정하고 작업자가 바로 비행기타고 중남미로 날아갔습니다. 바로 조치해주느라 저녁도 못 먹었다는 직원이 안쓰러워 비즈니스석으로 돌아오라고 했었죠. 우리의 실수였지만 바로 가서 해결해 드리니까 ‘코릴이 하니까 문제가 없구나’란 말이 나오더라고요. 잘해도 칭찬, 못해도 잘 대응하니 돌아오는 건 또 칭찬이더라고요.”
어떤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절대 피하지 않고 정면 대응해서 방법을 찾는 것. 그게 바로 오 대표의 인생철학이자 경영철학이다. 
90년대 후반, 포항제철이나 광양제철 등 제철사업소와 항만 등에는 당시 쉽사리 범접할 수 없던 대형기계들이 일본, 미국, 이탈리아에서 들여와 가동되고 있었다. 부품을 교환해야 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수입이 쉽지 않았던 것. 그때 의뢰가 들어왔고 도전했다. 그러면서 전기, 전자 쪽으로 기술의 폭도 넓혔다. 주문생산방식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접근해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를 해결하고, 유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내면서 27년의 시간이 지났다. 코릴은 이제 ‘현장의 해결사’로 통한다. 
“시행착오가 있는 부분들까지도 피하지 않고 직접 대응하면서 더 신뢰를 얻게 됐죠. 전혀 생소한 부분은 가서 솔직히 못한다고 했어요. 오히려 기술적인 도움을 받으며 일을 해결했죠. 그러나 한 번이라도 해 본 일이라면 두 번째는 놓치지 않았어요. 창업 2년차에 불과했던 1992년에는 부산 한 신발공장의 대형 금형 스팀기계에도 겁 없이 덤볐었죠. 그때 간이 커진 게 아닌가 합니다.(웃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릴로 승부
 
코릴은 1991년 1월 설립됐다. 인천 계산동 아파트 작은 방에서 직원 3명을 데리고 시작했다. 당시는 공장 하나 얻는 것도 힘들었다. 다른 업체에 셋방살이도 하며 그렇게 회사를 키워갔다. 이제는 90명 넘는 직원을 두고,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릴 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학 입시에 낙방한 후 국비지원을 받는 직업훈련원에서 기술을 배웠어요. 설계, 기계, 전기, 용접 등 3년 과정을 1년 만에 배우고 자격증도 땄죠. 제 적성에 맞았을 뿐만 아니라 그게 코릴의 기반이 됐습니다. 코릴의 시작은 원래 ‘3국산업’이었어요. 에어릴, 전선릴로 시작했는데, ‘앞으로 제3국에 수출할 수 있겠다’란 생각에 그렇게 지었죠. 뭔가 도전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자 숫자 ‘3’을 활용한 부분이 주효했어요. 한편으론, 국내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니까 수출도 잘 하는 기업이겠구나란 인식도 주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3국을 브랜드명으로, 코릴은 기업명으로 쓰고 있어요.”
 
소재의 정직성, AEO인증으로 수출에 탄력
 
“자동에어릴이나 워터릴의 경우 호스가 생명입니다. 에어호스는 유연성이 있어야 잘 풀리고, 또 잘 말아집니다. 저희가 제작하기 전에 국내제품도 써보고, 대만제품도 써봤어요. 가격이 천차만별인데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경화돼서 갈라지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 직접 생산을  시작했는데, 소재만큼은 오리지널 폴리우레탄으로 고집하고 있어요.”
때로 업자들이 재생을 쓰라고 가져오기도 하고, 한때 써보기도 했다는 오 대표. 그런데 이물질이 있거나 끊어지는 등 생산성이 떨어지는 걸 경험했다. 제때 공급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하자도 자주 발생했다. 보상은 당연히 받지 못했다. 이것이 원자재값이 더 들더라도 소재만큼은 오리지널로 고집하는 이유다. 
코릴의 강점은 특허 7건, 실용신안 18개, 디자인권 13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ISO, CE인증은 물론 AEO(Authorized Economic Operator) 인증 획득에 있다. 특히 AEO는 통관절차가 간소화되어 항만에서 해당 기업으로 바로 납품되는 것을 뜻한다. 
“제조업체라면 미국시장을 확보하는 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AEO를 획득하게 되면 미국시장 개척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매출을 올리는 데 주효하게 작용하게 되죠. 앞으로 FTA 체결국가가 늘어나게 되면 더 필요하겠죠.”
AEO인증 획득은 물론 미국 시장 본격 진출로 새로운 성장가도를 맞고 있는 코릴에게도 큰 고민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UL인증이에요. 미국의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전기제품 안전인증인데, 이게 비용이 꽤 들어요. 물론 우리 정부에서 해외인증 지원을 많이 해주고는 있어요. 그러나 UL인증의 경우 제품 하나에 속한 부품 하나하나 다 인증을 따로 받아야 됩니다. 부품 하나당 천만원이 넘고 또 인증 유지를 위해 분기별 금액을 별도로 지불해야 합니다. 대기업에서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에겐 쉽지 않죠. UL인증을 받은 제품은 가격이 높아져 경쟁력도 낮아지게 됩니다. 미국 전기시장은 대만과 중국제품이 점령하고 있어요. 제품의 우수성은 우리가 훨씬 우수한데, 대부분 UL인증이 없어서 수출이 제한되는 거죠. 최근 경기도가 공유시장경제국을 신설했더라고요. 기업들이 각 부품에 대해 인증을 받을 필요 없이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겠지요. 요즘 전 어디가나 UL인증과 관련해 하소연하고 다닙니다.(웃음)”

 
항상 10년 후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이제는 성장보다 관리에 포인트를 둔다. 개발도 개발이지만 될 제품, 안될 제품을 구분해보자는 생각이다. 
“저희는 대기업 1차 벤더로서 간접수출도 많지만 자체 브랜드 수출물량도 꽤 됩니다. 스탠다드화, 전문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생명력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추진 중입니다.” 
‘항상 10년 후 미래를 생각하는 기업’은 코릴의 경영철학을 대변하는 기업 슬로건. 이처럼 늘 앞서 행하며 길을 만들고 있다. 
“요즘 스마트 팩토리라 해서 4차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 역시 고민이 돼서 독일, 일본도 가봤어요. 각 부서 책임자들을 도요타 혁신기법과정에 보내기도 했고요. 다녀오더니 생산혁신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더라고요. 그러나 쉽지 않았어요. 저희는 다품종 생산이기 때문에 컨베어라인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반자동기계 중간 투입을 통해 균일한 생산시스템을 만들자는 원칙을 세웠어요. 무조건 따라가는 게 아니라 현장에 맞는 방법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렇게 향후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캠핑용 전선릴과 홈유리 샤워릴 등 안전하고 유용한 가정용 제품도 선보이며, 미래 릴 시장을 탄탄히 다져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오 대표의 고향 남원 애향장을 받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열심이다.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남원의 참미쌀을 제공받아 구내식당에서 활용하는 한편, 지역학생 장학금 지원에도 앞장선다. 인천비전기업협회장으로서 중소기업 간 협력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뛰고 있다. 최근엔 인천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해 이웃과 나누는 삶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정부 지원제도 활용, 다른 사람 조언도 중요시
 
정부수행과제나 브랜드사업 등 중소기업청의 지원제도가 기업경영에 큰 힘이 되는 것을 경험해 온 오 대표. 정부가 내놓는 많은 지원제도와 정보를 확인하고 기업에 맞는 부분은 잘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저도 엔지니어고 또 사장이 기술을 모르면 조직이 흐트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제조업체 사장들이 엔지니어 근성을 버려야 해요. 내 말만 옳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걱정어린 충고의 말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직원들도 계속 함께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저희 회사엔 올해 정년이 되는 직원이 있는데, 정년 이후에도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한 요즘 능력 있는 직원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생산, 영업노하우 등은 아까울 따름이다. 정부에서도 정년퇴직 후 계속 근무할 경우를 위해 지원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일자리가 없다고 일자리를 확충한다고 하는데, 저희는 아르바이트생 구하기도 힘들어요. 외국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죠. 일하는 데 건강상의 아무 문제가 없다면 나이가 무슨 이유가 되겠어요? 여러 가지 경제정책들이 난무하는데, 정치하는 분들이 ‘일일사장’ 체험이라도 해보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희들의 고충을 잘 알고 또 현실에 맞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겠죠. 살아가다 보면 예외가 너무 많아요. 너무 내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서로를 돌아보면 참 좋겠습니다.”
 
글·사진_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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