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종합기계공구 - 이동우 대표

 

전동공구 수리로 시작 40년간 공구골목 지킴이

대구 대우종합기계공구 이동우 대표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저절로 발전하는 것은 없다. 성공을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은 필수다. 대우종합기계공구 이동우 대표는 노력으로 성공을 이룬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16살 때부터 시작한 공구골목 생활


대구의 대표 공구골목인 북성로 공구골목. 바로 그곳에서 어린 나이 16살 때부터 공구일을 시작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대우종합기계공구 이동우 대표다. 평범한 아이라면 다들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놀기 바빴을 그 나이에 이 대표는 나이 차 열한 살 나는 큰형의 공구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시작했다기보단 일을 배웠다. 형의 가게는 전동공구, 그 중에서도 특수 모터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공구 수리점이었다. 당시 70년대 후반 80년대에는 ‘특수 모터’이런 식으로 단일 품목을 수리하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그렇게 형님의 가게에서 십 몇 년 동안 근무하며 형에게서 전동공구 수리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기술을 배워 익히길 십여 년. 1991년도에 이동우 대표는 형의 가게에서 나와 자신만의 가게를 차렸다. ‘대우전동’이라는 간판을 단 자신의 가게에서 그는 몸에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전동공구 수리를 시작했다. 역시 북성로에서다.
“열 여섯살 때부터 여기 북성로에 왔으니까 지금 한 40년 정도 됐네. 처음에는 형님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내 가게를 내서 지금까지 해 왔는데, 어이구야 그렇게 공구 일을 하는 동안 강산이 네 번 바뀌었네. 그게 딱 이 골목에서다, 이 골목.”

 

 

번화했던 과거의 북성로… 지금과는 달라


대표의 인생이 담겨 있는 북성로 공구골목의 과거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추억한다. 당시만 해도 대구에 공구골목은 북성로가 유일했다. 지금은 유통단지며 산업단지며 곳곳으로 나뉘어져 있는 공구거리. 당시 북성로에는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또 시기적으로도 다들 바쁘게 돈 많이 벌던 시기였다. 오죽했으면 북성로 지나다니는 개들은 입에 만 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했을까. 몇 년 째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장면이다. 
이동우 대표가 처음 대우전동의 문을 열었을 당시, 가게 면적은 고작해야 네 평, 그야말로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그 네 평 가게에서 공구 수리와 함께 전동 공구, 그리고 기계의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하며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이동우 대표는 노력으로 낚아챘다.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열어 밤 늦은 시간까지 전동공구, 특수 모터를 수리했다. 당시에는 모터 수리에 필요한 부품들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터에 새 코일을 직접 감았다.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했다. 지금처럼 각각의 부품이 다 나오는 것과는 역시 다른 시절이었다.
“내가 지금 우리 가게를 이만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열심히 했기 때문인 것 같아. 그 때는 여섯시 반에 문 열어서 밤 열두시까지 했었지 매일같이. 직원들은 수리를 열 시까지 하고 퇴근했는데 그렇게 수리를 마치면 나는 임대하는 공구를 배달했던 거야. 그렇게 배달까지 갖다 주고 집에 오면 열두시 한시. 초창기에는 그랬어.”
과거 불 붙었던 전동공구·기계 임대사업
당시 90년대만 하더라도 공구 임대하는 집이 별로 없었다. 대표가 임대하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도 따라하는 집이 몇몇 생겼을 만큼 임대 수입은 짭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성능 좋기로 유명했던 히타치65해머드릴 같은 경우에는 구입하려면 당시에도 70만원을 호가했다. 하지만 3만 원이면 임대가 가능했다. 또한 그때만 해도 호황기로 한참 건설 붐이 일어나 전동공구나 기계의 임대 수요가 꽤 컸던 때였다.
“요즘은 중국산이 나와버리니까 히타치 해머드릴을 잘 안 쓰지만 그때만 해도 히타치가 최고였지. 또 지금은 옛날만큼 기계도 많이 안 써. 또 그때는 시기적으로 부수고 짓고 부수고 짓고 그랬으니까. 요즘은 안 그러지.”
지금의 상황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건설 경기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의 활성화로 공구골목에서 젊은 고객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대표는 오늘도 예전처럼 새벽부터 가게 문을 연다.

 

 

끝없는 노력으로 지금의 가게 이뤄내


대표의 변치 않는 원칙과 노력으로 매장 규모는 네 평에서 열 평으로, 지금은 열 평에서 50평이 넘을 만큼 넓어졌다. 판매도 안심 궤도에 올라섰고 공구 임대는 물론 완벽한 A/S를 갖춰, ‘전동공구 수리는 대우공구’라는 입소문이 돈지도 한참이다. 현재 A/S팀에는 20년 이상의 베테랑 기술자 3명이 고객들을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동공구·기계 수리를 위주로 운영하던 동아전동에서 가게의 이름을 동아종합기계공구로 바꾸면서 본격적인 공구 판매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닥쳐온 IMF사태로 매달 결재일이 다가오면 그때마다 어려운 수금으로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더욱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우선으로 여겼던 탓에 자금 회전은 더욱 어려웠고 몇 차례 부도어음을 떼이기도 했다. 그래도 당장 눈앞의 것만을 따지다 보면 이익보다 더 중요한 ‘신용’을 잃게 된다고 굳게 믿었다. 이후 대표가 지금까지 어음이나 가계수표를 일절 발행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음이나 가계수표에 재미를 붙이다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낭비벽이 심해져 고객들에게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은 사업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어.”

 

 

가족 경영으로 탄탄한 공구상을 꾸리다


대우종합기계공구는 한 번에 확 크게 성장한 적도, 그렇다고 폭삭 가라앉았던 적도 없다. 다만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조금씩 조금씩 성장을 계속해 왔다. 지금도 주된 수입원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구 수리와 임대료가 주(主)다. 각종 로라(땅 고르는 기계)며 고압세척기, 연삭기와 전동드릴 등을 임대/수리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의 대우종합공구가 과거와 달라졌다 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가족이 공구상 경영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현재 딸과 아들이 이동우 대표와 함께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빠와 일한 지 딸은 벌써 4년 차, 아들은 이제 1년 차다.
“아이들이 함께 하다 보니까 예전이랑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그래도 젊은 아이 둘이 있으니까 가게 분위기도 좀 사는 것 같고. 또 예전에는 시도도 못했을 일도 할 수 있고.”
지금 가게 안에 진열된 수천 수만 개의 공구에는 하나같이 전부 가격표가 붙어 있다. 아들이 처음 공구상에 와 시작했던 일이다. 아들이 가격표를 붙이자는 말을 꺼내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었다고 이동우 대표는 말한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고 다만 경기가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대표. 욕심 없어보이는 웃는 표정으로, 그저 현상 유지만 하면 감사하다는 이 대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글 · 사진 _ 이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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