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세종대왕도 그라인더로 다듬었죠 - 38년 주물인생 박상규

광화문 세종대왕도 그라인더로 다듬었죠 
 
38년 주물인생 박상규





내가 바로 주물업계 대통령
 
조형 예술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기도 이천의 ‘공간미술’ 작업장과 ‘박상규’ 이름 석자는 대통령 이름처럼 유명하다. 2009년 제작된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은 그의 손에서 탄생 되었다. 그리고 부식현상이 심했던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여기서 치료 받아 다시금 늠름한 모습으로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국회의 부조물, 완도의 장보고 동상 등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국내의 금속 조형물은 모두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공간미술의 대표 박상규 장인이 지금까지 만든 조형물은 무려 1만점이 넘어 선다. 대한민국의 중요한 동상제작과 보수를 맡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나라 주물공장 중에서 제대로 합법적인 곳이 드물어요. 그런데 세종대왕상 제작 같은 일은 정부에서 하는 일이니 아무래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업체가 선정되어야 했겠죠. 국민 세금이 쓰이니까요. 무허가인 노점상 같은 작업장에서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동상제작을 맡길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저도 세종대왕상을 제작할 때 더욱 많은 신경을 쓰고 좋은 재료를 최대한 아낌없이 넣어서 만들었어요. 청동을 만들 때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듭니다. 그런데 주석이 값비싼 재료입니다. 구리보다 훨씬 비싸요. 구리가 톤당 6천 달러 정도면 주석은 2만 달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주석은 조금 넣고 대신 값싼 아연을 넣은 후 청동상이라고 우기기도 해요. 구리에 주석 조금 넣고 아연 많이 넣으면 사실상 청동이 아닌 황동인 것이죠. 청동은 1,000년을 버틸 수 있지만 황동은 그렇게 오래 못가요. 그래서 만들어진 지 40년이 지난 이순신 장군상은 붕괴위험이 있을 정도로 부식현상이 나타났구요.”
그가 말하길 청동으로 제작된 이순신 장군의 투구와 얼굴은 보존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팔은 부식상태가 심해 잘라내어 교체를 해야했다. 이순신 장군상의 경우 1968년에 제작되었는데 당시 구리가 모자라 탄피를 녹여 썼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탄피는 황동이기에 제작한지 40년이 지나자 부식현상이 심해진 것이다. 이순신 장군상은 팔 뿐만 아니라 가슴이나 몸통도 청동이 아니었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흔적이라고 생각해 교체보다는 보수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다. 


 
국내 주물 기술력 세계최고 자부해
 
박상규씨가 운영하는 주물 작업장 공간미술의 기술력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 물론 홍콩, 영국, 중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온다. 뛰어난 품질의 동상을 제한된 비용으로 빨리 제작가능 하기에 인기가 높다.
“저희는 다른 나라 업체와 비교해 불량이 적게 일어나죠. 불량이 적게 일어난다는 것은 기술력이 좋다는 의미구요. 그 기술력은 경험에서 비롯되는 종합적인 것입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면을 고려해서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것이거든요. 보통 동상을 제작할 때 조각 조각 나누어 주물작업을 합니다. 퍼즐처럼요. 그리고 용접으로 조각을 하나로 붙이고 다듬는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용접자국이 나면 안되잖아요. 이음새가 표시나도 안되고요. 전부 수작업이라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하면 불량이 납니다. 한번 용접한 것을 다시 떼어내어 붙일 수는 없고요. 주물작업을 했는데 크기가 맞지 않는다든가 용접이 잘 못된 경우 불량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 해당 조각을 다시 제작해야 하죠. 재료비는 어느정도 회수할 수 있어요. 금속은 다시 녹이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인건비와 시간, 다른 부수적인 비용은 회수할 수 없어요. 다른 곳 보다 불량이 적게 일어나니 인건비도 줄어들고 제작 기간도 줄어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겨나죠.”
단순히 불량이 적게 일어나서 유명한 것이 아니다. 주물이 어려워 남들은 엄두를 못내는 재료로 대형 조형물 작업이 가능하다. 주물작업 중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은 스테인리스 같은 철이다. 철이 녹는점은 1,530도로 가장 높고 강도도 높다. 그만큼 다루기 힘들어 불량이 일어나기 쉬운 재료다. 외국에서는 스테인리스로 대형 조형물을 제작하는 곳은 없다. 그래서 영국 벨파스트 항구에 전시된 높이 12m의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해마상도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이곳처럼 스테인리스로 대형 조형물을 제작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이 처럼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공간미술이다. 


 
계양 그라인더를 비롯해 모든 공구 사용
 
주물작업을 할 때 사용되는 공구를 물어보니 모든 공구가 사용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수공구부터 전동공구, 안전보호구까지 모두 사용되지만 그중 특히 많이 사용되고 소모가 많은 것이 전동 그라인더다.
“주로 다듬고 광내고 할 때 그라인더를 많이 사용해요. 용접도 많이 하고요. 작품을 만들 때 필요한 공구는 모두 사용해서 제작 합니다. 스패너, 망치, 드라이버 같은 수공구는 기본으로 사용하고요. 처음에는 이천 시내의 공구상에서 공구를 구매해서 사용했어요. 그런데 저희 공간미술이 자리잡은 위치가 경기도 이천 외각 중에 외각이거든요. 거리문제 시간문제로 근래에는 가까운 건재상에서 공구를 구매해 사용합니다. 요즘은 건재상에서도 공구를 취급 하더라고요. 가격 맞춰서 공구를 구매하고 있어요. 안전화, 장갑, 보안경, 안면보호대 안쓰면 안되잖아요. 안전보호구도 필요에 맞춰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간미술에서 사용하는 전동그라인더는 주로 계양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초창기 때부터 계양 제품을 사용해 작업자들 손에 익숙해져서 다른 회사 제품은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한 달에 수십 대의 그라인더를 폐기처분할 정도로 많은 양의 그라인더가 소모되고 있었다. 긴 시간 표면을 다듬는데 사용되다 모터가 타버리거나 고장이 나서 폐기처분된 그라인더가 창고에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라인더를 많이 사용하는데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그라인더가 있으면 좋겠어요. 연속으로 몇 시간을 강한 힘으로 누르며 사용해도 문제없는 그라인더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그라인더는 시중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주물작업은 공구제작과 비슷해
 
박상규 장인이 주물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시절부터다. 열다섯 살 많은 사촌형이 서울에서 주물 작업장을 운영하여 10대 때부터 잔심부름을 하며 주물작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공고에 진학해서도 주물반에 들어갔고 고교 졸업 후 주물관련 여러 회사를 다니다 사촌형님의 주물 작업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사촌형님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회사도 어려워지고 해서 저도 전국의 다른 작업장을 전전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주위의 권고로 창업을 했어요. 2000년에 김포에서 작업장을 차리고 아내랑 같이 일을 했죠. 가진 돈 없이 시작해 힘들었어요. 재료비 미리 달라고 해서 재료사서 만들어 납품하고 하루 4시간 잔 적이 없었어요. 납기 맞추려고 아내가 참 많이 고생했죠.”
전국의 교수와 작가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려면 박상규에게 가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 그에 맞춰 일감이 늘어났다. 가내수공업 같은 공장이 조금씩 기업체의 모습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2008년 그는 이천시 설성면으로 작업장을 옮기게 된다. 5,000평 규모의 부지에 일반, 정밀, 스테인리스부 등 부서를 갖춘 작업장을 갖추었다. 거기다 공간미술이 들어서는 입구에는 전국의 교수 작가들로부터 받은 동상 수 십점이 전시되어 있다.    
“회사 키우는데 노하우가 있나요.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 되는 거죠. 공구제작과 비슷해요. 품질이 좋아야하고. 고객이 원하는 가격에 충분한 성능이 나와야 하고요. 더불어 주물에서는 작품을 의뢰한 사람이 선을 좋아하는지 각을 좋아하는지 알아야하고 작가의 성향에 맞춰 작업을 해줘야 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물건을 조형물로 만들면 만드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작품도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그런 점을 잡아내는 것, 소비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강점이죠. 또 그러려면 고객만큼 조형물을 보는 눈이 높아야겠죠.”

 
광화문 광장 가도 보이는 것은 동상뿐 
 
근래 대한민국은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청와대를 벗어나 시민 곁에 가까이 하는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 중심에 자신이 제작하고 수리한 세종대왕상과 이순신 장군상이 있어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물어보니 그의 눈에는 그저 동상만 보인다고 한다. 
“제 눈에는 동상만 보입니다. 제가 만들고 보수한 동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가 되는지 살펴보게 되죠. 제작을 한 이후 몇 년간은 저희가 유지보수를 맡아 진행했습니다. 동상 유지보수는 그냥 세제로 청소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이 다른 곳은 200만원이면 된다는데 제작한 곳이 제안하는 유지보수 비용은 왜 이렇게 비싸냐고 되묻더라고요. 안타까웠습니다. 동상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적절한 유지보수를 하지 않으면 처음 제작했던 그 모습을 잃어버려요. 세월이 가면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데 세종대왕상은 섬세하고 세밀하게 작업을 한 동상입니다. 수염, 책장, 옷 주름 하나하나 세밀하게 표현하고 제작해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비용문제로 비전문가에게 세척만 맡기니 조금 있으면 세종대왕상이 조금씩 어두워질 거예요. 안타깝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동상이나 조형물을 수리하는데 인색해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훌륭한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그 바탕엔 우리 같은 기초업체가 바탕이 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세종대왕상을 제작한 사람으로서 새롭게 취임한 광화문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저는 항상 과거는 잊고 살아갑니다.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만 몰두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보고 나아가야죠. 그리고 생각만한다고 현실이 바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개선해나가면서 주위를 살펴보며 나아가면 잘 되더라고요. 어느 대통령이나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습니다만 저희 같은 중소기업의 현실을 생각하는 정책을 펼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_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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