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질서 바꾸고, 제조사 힘겨루기 그만 해야” 유재근 협회장
오는 9월이면 협회창립 40주년이 된다.
1975년 8월, 종로구 장사동 250-1에 공구인들이 모여 뜻을 모았고,
그들의 발자취가 이어져 한국 산업발전의 토대가 됐다.
협회 윤리헌장 첫째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국가경제 발전과 기업성장을 지원하고 협조한다.’ 오늘날 세계 산업시장을 이끄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숨은 공로자들,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소중한 가치를 조명하는 한국산업용재협회 유재근 회장을 만났다.


“유통사는 유통질서 바꾸고,

제조사는 힘겨루기 그만 해야”


(사)한국산업용재협회 유재근 회장






협회장, 말로만 중재하는 역할 아니야

한국산업용재협회는 오랜 공구유통 역사를 지닌 서울 청계천에서 태동해 산업공구계의 건전한 발전과 회원의 자주적 경제활동 및 지위향상을 그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총 7개 지회 등에 4,000여 회원사를 두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공구유통 중심체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질서는 물론 대기업과 종소상공인들 간의 동반성장과 갑을구조 개선에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회장은 21기에 이어 연임에 성공한 22기 유재근 회장. 대 국가 대 사회적 측면에서 공구업계 최일선의 대변인인 셈이다. 근풍파워툴이라는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초기엔 업계 전반에 두드러진 인물이 아니었으나 2000년대 후반 서울지회장을 맡으며 업계 내 호감도가 상승했다. 사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는 점, 다른 업종과 교류하며 배울 것을 찾는 점 등으로 인해 ‘자신의 사업에 머물지 않고 업계를 위해 일할 적임자’로 낙점을 받았다. 취임하자마자 MRO와 카드 수수료 갈등을 과제로 받아 곤혹을 치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를 끝까지 잡고 해결하는 모습마저 보였다. 이에 대해 그는 “다들 사업하시는 분들이니 주장이 강하시다. 중재하려면 모두 이해가 될 때까지 설명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 자신부터 공부를 엄청 해야 하더라”며 웃어보였다.
“말을 아끼고 이쪽저쪽 의견을 다 들어보고 다른 업계 좋은 점을 배워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해결을 하는 것이지, 바로 대놓고 멋진 말을 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세상에 없는것 같아요.”
협회장다운, 연륜이 묻어나는 고수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협회장 5년을 넘기고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그간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저대로는 욕심 안 부리고 눈치 안보고 열심히 했습니다. 세상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가슴 뜨거운 현장도 봤습니다. LG서브원 반대 궐기대회를 하러 창원에 갔을 때, 수십 평생 일하던 우리 공구인들이 바닥에 앉아 생존을 외치는데 정말 제 가슴과 두 눈에 불이 납디다. 그때 서울지회장을 할 때였는데, 많은 선배들을 두고 연단에 올라가 연설을 했습니다. 난 같이 먹고 같이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 앞 생각하지 않고 우리업계를 위해 제가 가진 능력으로는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돈만 번다고 좋은 게 아니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도 재산이잖아요. 회원사들 덕분에 이만큼 왔고, 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협회와는 어떻게 인연이 되셨습니까?

“김동연 고문님께서 서울지회장을 할 때 중부 총무역할을 했습니다. 월간지 나오면 나눠주고요. 그러다 김 고문님께서 회장이 되면서 제가 상임이사를 했는데, 나이에 비해 이른 셈이었죠. 나중에 최영수 회장님께서 협회장을 하실 때 전 서울 지회장을 했고, 이후 다시 협회장직을 권유받았습니다. 물론 주변에서 아무리 권해도 저 하기 싫으면 안했을 테지만, 당시 제가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MRO문제, 바로 그거죠. 대기업들의 횡포를 보면서 한번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업보다 협회 일에 성격 더 맞아
사업체 근풍파워툴은 지금 잘 되고 있습니까?

“(웃음) 조그만 해요. 더 잘 해야 하는데 맘처럼 쉽지는 않더라고요. 솔직히 나는, 사업보다 이 일(협회장 일)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게 더 보람되고 신납니다. 세상 돌아가는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내 인격도 키워요. 아무래도 내 사업 하나만을 보고 일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을 위해 일할 때 나도 모르는 힘이 나는 것 같습니다.”

그간 협회장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해결한 일이 있다면요?

“회장직을 맡자마자 MRO문제가 대두돼 다른 중소상공인 단체들과 연대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2010년과 2011년 6월에 중소기업중앙회 회의실에서 서브원, 아이마켓, 엔투비, KeP 등과 사업조정 실무회의를 가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땐 대기업을 상대로 우리가 정말 해내겠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작은 기업들이 뭉치니까 그게 또 어마어마한 힘이 되더라고요. 일을 해나가면서 자신감도 얻었고 꼭 해보자 싶었죠. 사실, 대기업과의 조정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거리 캠페인과 간담회 등의 여론 조성과정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간의 노력으로 대기업이 계열사 간 거래만 하고 공구유통은 하지 않는 걸로 결론이 났잖아요? 삼성은 매각을 결정하고 SK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습니다. 대기업의 도덕성과 사회적 합의라는 부분에 호소한 결과죠.”

MRO와의 협상은 현재 어느 정도까지 와있습니까?

“처음에 협상을 할 때는 대기업을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기 위해 현실보다 낮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서브원은 연매출 5,000억 이상, KeP는 3,000억 이상 거래선에만 거래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상향 조정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KeP를 연매출 1,500억으로 제한했더니 한 달에 130억 이상 거래선에만 거래하라는 얘긴데, 대기업이다보니 웬만한 데는 다 거래를 할 수 있게 됐어요. 현실적으로 약하다 싶어 상향조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측에서 바로 받아들일까요?

“물론 당장은 안받아들이죠. 그러나 여론을 조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가 절충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으로 갈 겁니다. 그래야 중소상공인이 살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이 외에도 중소상공인들의 카드수수료를 1.5%까지 낮추는 일을 계속적으로 해왔다. 그 대상이 기존에는 연매출 3억 이하였던 것을 올해부터는 10억 이하로 조정토록 할 계획이다. 카드가맹점 수수료는 업종에 따라서 1.5~4.5%의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이 비율은 각 업종마다 다르다.
카드수수료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수수료율이 턱없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1.8%, 유럽연합이 1.1%인데 비해 우리나라 영세 가맹점의 경우는 3.6%에 달한다. 다음 문제는 업종별로 차등을 두고 있는 것인데 이 차등요율이 사회적 합의와는 반대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골프장의 카드수수료는 1.5%, 대형마트와 코스트코도 1%대인데, 오히려 영세한 중소상공인이나 소매점이 3%를 넘고 있어 보편적 이해와는 대치되는 모습이다. 이는 카드사 자체가 대기업이고 계열사간 거래에 이점을 두는 구조 때문이다. 유 회장은 공구시장 역시 소매점이 확대되는 시점에서 카드수수료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공구시장이 지금 가격파괴로 이익이 안 나서 난리에요. 그런데 카드 한번 휙 긋는데  몇 초 걸리죠? 3초? 그 단 3초 만에 카드사는 앉아서 2.5% 수수료를 먹어요. 말이 되요? 우리는 가게세 내고 물건 떼오고, 추우나 더우나 가게 나와 그 고생을 하는데, 카드사는 앉아서 이득 챙기고, 없는 이익에 카드사 수수료까지 줘야한다는 것, 이거 너무 하잖아요? 꼭 해결해야 합니다.”
유 회장은 현재 남은 자신의 임기 중 해결할 과제로 가장 먼저 이 카드수수료를 꼽고 있다. 그런 만큼 회원사들의 관심과 정책입안을 위한 힘을 모아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야기를 돌려 그 자신에 대한 것을 들어보고자 했다. 늘 협회장으로서 소상공인 문제에 앞장 서는 그지만, 개인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에어타카 수입으로 청계천 인생 시작
공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그런 거 묻지 마요.(웃음) 최영수 회장님은 자전거라도 있어서 행상이라도 했지, 나는 그럴 자전거도 없었어요. 우리집은 정말 가난 그 자체. 여기까지만 말할래.”
 

그래도 공구상을 하게 된 얘기는 듣고 싶습니다.

“고향이 경기도 광주입니다. 서울로 올라와서 안국동에 있던 무역회사에서 오퍼 일을 배웠어요. 한 3년 해보니까 재미가 있더라고요. 83년도에 청계천에 수입상을 차렸습니다. 그때는 아이템을 다 개발했어요. 당시 에어타카를 수입했는데, 처음엔 시장 개척한다고 가구공장 같은 데 들고 다니면서 팔았어요. 그걸로 돈을 꽤 벌었어요.”

계속 승승장구하셨습니까?

“웬걸. IMF 때 일명 피를 봤어요. 수입을 하니까 환율이 두 배로 올라버리니 두 배로 갚아줘야 하잖아요. 은행에 6억 차입했다가 12억 갚으려니 어려울 수밖에요. 그때 어음 할인해가며 결제대금을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가게 심정을 알게 된 거죠.”

80-90년대 청계천 모습은 어땠습니까?

“80년대는 경기가 좋았어요. 당시 공구업하던 사람들은 다 돈도 많고 공부도 많이 한 분들이라서 사회에서 우러러보는 계층이었어요. 대기업 근무하다 나와서 베아링공구업을 하는 식이었죠. 이후엔 그 공구상에 일하시던 분들이 나와서 창업을 했던 시기가 있었고, 요즘은 2세 경영자들이며 유학파들이 이 업종에 많이 생겨납니다. 이렇게 우리업계에 묘한 사이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십수 년 전 모습으로 앞으로의 공구업을 예상하면 안된다 봐요. 사람이 바뀌면 업계 모습도 바뀌게 되니까요.”
 

돈은 벌어도 까치밥은 남겨둬라
공구업계를 봐오시면서 이건 좀 바꿔야겠다 싶은 건 없습니까?

“제조사들이 유통업계를 흔드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싶어요. 리베이트를 주고 골프여행을 시켜주고, 이거 문제 있죠. 제조사와 유통사 간의 유통구조를 바꾸는 데 힘써야지 파워싸움을 하면 안됩니다. 장사는 자기만의 복안이 있어야 하는데, 다 싸게 주고 가격 파괴되고 전문성 없어지면 골치 아파집니다. 우리 유통사들도 리베이트만 바라보고, 골프 초대 기다리는 행위는 없어져야 합니다. 제조사도 이런 것으로 유통사를 흔드는 걸 자제해야 합니다.”

제조사와는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시고요, 유통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건 또 뭐가 있을까요?

“유통질서죠. 대기업 MRO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보니 바로 우리업계 내 유통질서 문제가 또 남았습니다. 대도매 중도매 소매가 있다면 각자 유통질서를 지켜줘야 일자리도 창출되고 먹거리가 생기는데, 대도매에서 읍면단위 소매점까지 직거래를 해버리니까 중도매가 할 일이 없어져요. 대기업에서 하던 쌍끌이 방식을 우리 대도매상들이 하는 건 아닌가 해요. 우리업계 빅4에게 ‘돈은 벌어도 까치밥은 남겨둬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카드 수수료든 MRO든 이슈파이팅을 하려면 뒷받침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혹은 정부를 상대로 일을 할 때 업계에서 어떻게 해주면 좋겠다 생각하시는지요?

“다들 공감하고 원하면서 각자 장사하기에 바빠 거리로, 간담회장으로 못나옵니다. 사실 요즘 불경기로 작은 가게는 종업원을 못 두는 경우도 많아서요, 사장이 나오기 힘들 겁니다. 그래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옮겨주셨으면 좋겠어요. 토론회 등이 있을 때 늘 잘 도와주는 서울지회 서경지회 서울서부지회 등에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공구만한 직업 있나? 최고 중의 최고
잘되고 있어서 배울만한 다른 협회가 있습니까?

“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 카포스에요. 그들은 공동구매를 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액이나 카워셔액을 100만개 씩 공동구매해서 5% 마진을 남기는 방식을 도입했어요. 슈퍼마켓 조합인 나들가게도 라면을 공동구매해서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라면 제조사에서 슈퍼마켓 조합을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이제는 역으로 따라다니는 격이 됐어요. 우리업계에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까 말한 제조사와의 힘 관계도 풀 수 있고요. 이 공동구매는 내가 21기 때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라면이나 부동액처럼 우리 공구업이 최종사용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회원사들은 대도매 중도매 소매 등으로 다양한데, 소매만을 위한 공동구매를 하면 중도매나 대도매가 좋아하지 않죠. 우리업계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회원들의 형태가 다양해 적용하기 힘든 점이 있지만, 이 공동구매는 분명 어떤 식으로든 우리업계에서 시도해볼만한 사업방식이라 봅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같이 살자는 생각만 형성되면 해볼만합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계획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카드 수수료 문제 마무리 짓고, 또 하나는 산업용재 회관을 건립하는 일입니다, 지금 종자돈을 10억 모아뒀는데, 40여년 세월 동안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돈입니다. 여기에 큰 업체 기부를 받아서 회관을 건립하려 합니다. 제 임기 내에 회관 건립이 가능하도록 바탕을 만들 생각입니다. 공구인들의 자부심 아니겠습니까.”

공구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어쨌든 35년 공구인생이신데.

“제가 공구로 큰돈은 못 벌었지만 직업으로는 참 좋다고 생각해요. 옷장사는 유행을 타고 얼음장사는 계절을 탑니다. 하지만 공구는 그에 비해 위험부담이 적고 유행도 없어요. 이렇게 좋은 업종은 없다, 자신해요. 자식이 할 수만 있다면 물려줄 수 있고, 유행을 타지 않아 공구에 대한 공부를 해가며 전념할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업계에 하시고 싶은 말씀은?

“얼마 전 김동길 교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인생은 용서라 하대요. 죽을 때 용서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미리 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던데, 정말 공감합니다. 요즘 곳곳에 돈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잡음이 나는데, 뭐든 이해하고 흘려보내고 포용해야 합니다. 우리업계도 서로를 포용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회장으로 기록되고 싶으신가요?

“욕먹지 않는 회장(웃음). 다시 보니 그 사람 정직하게 최선을 다했네, 라고 생각되는 회장. 내 능력대로는 사심 없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좋은 변화가 더 많아지길 바라고, 분명 우리 공구업계도 더 발전하리라 봅니다.”


글 _ 서상희·사진 _ 박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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